9. 매일 눈앞에서 볼 수 있는데 가질 수 없다니
세계를 완전히 분해해 다시 조립해보려고 했지만 고립무원 속에서 진행되다가 결국 우주론적 ‘실패’로 끝나고만 그(벤야민)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삶과 작업은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실패한’ 20세기를 정직하게 되돌아볼 수 있는 새로운 사유의 용광로가 되어줄 것이다.
-조형준, 『아케이드 프로젝트』, 한국어판 옮긴이 서문 중에서
보시오, 그러나 만지지 마시오! 이것이 벤야민의 ‘만보객’ 혹은 ‘산책자’에게 주어진 지상명령이었다. 마음껏 바라볼 수는 있지만 결코 만져서는 안 될 무엇. 마음껏 바라볼 수 있기에 만질 수 없는 고통이 더욱 커지는 대상. ‘화폐’로 구입하여 ‘내 것’으로 소유할 수 없다면 쉽게 만져볼 수 없는 상품들. 누들스에게 더없이 소중했던 추억이 묻어 있는 고향, 브루클린의 거리 또한 그랬다. 이제는 이방인이 되어버린 그에게 고향의 추억이 묻어 있는 모든 것들은 그에게 접근금지를 요구한다. 한때 당신의 것이었다 할지라도, 이제는 다른 사람의 소유이니까. 거대한 쇼윈도의 화려한 상품처럼 변해버린 데보라야말로 누들스가 바라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 없는 대상이었다.
데보라는 평생에 걸쳐 세 번 누들스를 거절했다. 누들스가 맥스의 부름에 응해 패싸움에 휘말렸을 때, 누들스가 감옥에서 돌아와 큰 돈을 번 후 그녀에게 프러포즈했을 때, 그리고 초라한 노인이 된 누들스가 무대 뒤편 분장실로 찾아가 그녀를 만났을 때. 감옥에 다녀온 누들스가 ‘떳떳치 못한 방법’으로 큰 부자가 되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을 때, 데보라는 누들스의 절절한 사랑 고백을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듣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싸늘한 표정으로 누들스의 프러포즈를 거절한다. “난 헐리웃으로 갈 거야. 건달 사모님으로 만족할 수는 없잖아. 너도 알잖아.” 세월이 흘러 그녀는 어느덧 브로드웨이의 스타가 되었지만 무대 뒤편의 그녀는 쓸쓸하고 초라하기만 하다. 언제 ‘퇴물’로 전락하지 몰라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늙어가는, 안쓰러운 여자.
아직도 데보라를 포기하지 못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누들스의 눈에는 그녀가 여전히 아름답다. 매일 브라운관을 통해 볼 수 있지만 좀처럼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만질 수 없는 존재로 신비화되는 연예인처럼. 그녀는 누들스에게 평생 다가갈 수 없는 신비였다. 아케이드들을 통해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상품들의 스펙터클을 구경한 현대인의 마음 또한 그랬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매일 눈앞에서 볼 수 있는데 가질 수 없다니.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만져볼 수 없다니. 누들스에게 데보라 또한 그런 존재다. 그녀의 아름다운 춤은 언제나 누들스의 마음 속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지만, ‘육신’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데보라는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대상이다.
아도르노는 라디오 청취자가 채널을 돌리는 행위가 일종의 청각적 만보임을 지적했다. 우리 시대에는 텔레비전이 시각적/비보행적 만보를 제공한다. 특히 미국에서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의 포맷은 산만하고, 인상주의적이고, 관상적인 만보객의 구경과 비슷하다. 조달된 구경거리들이 시청자를 전 세계로 데려가는 것이다. 한편, 세계 여행과 관련하여 대중 관광 산업은 이제 만보를 2주나 4주로 묶어서 판매한다.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440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