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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의형제와 미하엘 바흐친[피사체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앵글을 찾아서] - 14. 간신히 친구가 될 뻔하다가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의형제와 미하엘 바흐친[피사체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앵글을 찾아서] - 14. 간신히 친구가 될 뻔하다가

건방진방랑자 2021. 7. 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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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간신히 친구가 될 뻔하다가

 

 

변신은 개인의 삶 전체를 좀 더 중요한 위기의 순간 속에서 그려내는 방법의 토대가 된다. 그것은 한 개인이 어떻게 과거의 자신과 달라지게 되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 엄밀한 의미에서 개인의 진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한 인간의 위기와 갱생만을 볼 뿐이다.

-바흐친, 소설의 시간 형식과 크로노토프 형식중에서

 

 

두 사람의 상처가 은밀하게 연대하는 이 순간. 이한규가 송지원으로 인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듯 송지원도 이한규의 시선 속에서 새로운 존재로 변신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 순간. 뜻밖의 사건이 터지고 만다. 국정원 후배의 연락을 받고 급히 외출하는 이한규. 그를 송지원은 조용히 미행한다. 이한규가 달려간 병원 영안실에는 송지원의 친구 손태순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손태순 살해, 누가 봐도 그림자의 끔찍한 솜씨다. “, 살고 싶다…….” 그렇게 절규하던 친구의 목소리가 지원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다. 친구를 잃은 충격으로 망연자실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아 고개 숙인 송지원을 국정원 직원이 발견한다. “, 송지원 맞지?” 국정원 직원들은 송지원을 회유하여 그림자를 체포하려 한다.

 

 

 

 

송지원의 딱한 사정을 모두 침착해주겠다고, ‘그림자만 넘겨주면 너만은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국정원 직원들의 설득. 그러나 6년 동안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조직을 버리지 않았던 송지원에게 이런 논리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당신 눈엔 내가 그런 시시한 배신자로 보여?” 송지원은 단호하고, 이한규는 그 순간 부끄러움을 느낀다. 송지원과 국정원 직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 시작되고 이한규의 눈빛에서는 안타까움과 함께 절박함이 스쳐간다. 아직 네 손목시계에 GPS가 달려 있다는 말을 해주지 못했는데…….

 

 

 

 

이한규는 국정원 후배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지원이 놔줘라. 지원이 그림자한테 사형선고 받은 애야. 지원이가 알아서 자수할 거야.” 후배는 이한규에게 항변한다. “그런 거 다 봐주면 간첩은 언제 잡습니까?” 후배의 눈빛에는 이한규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이 꿈틀거린다. 이제 이한규는 마지막 남은 국정원 후배의 신뢰까지도 잃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지원을 살려야한다는 생각뿐이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어버렸다. 다른 무엇보다도 다만 그의 안부가 중요해져버렸다.

 

 

 

 

도망친 송지원은 드디어 6년 만에 그림자와 접선에 성공하고, 그림자는 송지원의 스승이었던 통일문제연구소 지명훈 교수를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필요하다면 전원 살해해도 좋다.” 다급해진 이한규는 지원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하지만 지원은 받지 않는다. 이한규가 송지원에게 남기는 음성 메시지. “왜 전화 안 받아, 지원아! 네 손목시계에 GPS 달려있어! 그 시계 버려!” 한편 송지원은 그림자의 명령을 받고 움직여야 하는 순간, 가족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제 정말 마지막을 준비한다. 그는 오랫동안 가족들의 송환을 준비해왔던 사람에게 연락하여 가족들의 탈출을 부탁한다. “민 피디님. 저 때문에 가족들까지 위험해졌습니다. 제가 없더라도 꼭 진행시켜주세요.”

 

 

 

 

그림자의 살해 위협을 눈치 채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지명훈. 그림자는 지명훈을 추격하고 이한규는 송지원을 추격한다. 인근 건물 옥상으로 도망친 지명훈을 기어이 잡아 쓰러뜨린 그림자는 스승의 마지막 처리를 제자인 송지원에게 맡긴다. “조국이 네게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다. 마저 끝내라우.” 지명훈을 처리해야 하는 그 순간, 이한규가 나타난다. 이제 건물 옥상에는 마침내 가혹한 운명으로 얽힌 세 사람이 조우하게 된다. 그림자와 이한규는 오랜 숙적 관계였고 이한규는 그림자를 잡더라도 송지원은 반드시 풀어주려 한다. “시계부터 풀어! 왜 전화를 안 받아! 널 죽일지도 모르니까, 빨리 도망가!”

 

 

 

 

지원은 손목을 덥석 잡아 시계를 풀어 옥상 밑으로 던져버리는 이한규를, 그림자가 숨어서 몰래 지켜보고 있다. 그림자는 총구를 송지원 쪽으로 겨눈 채 이한규마저 처리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파도처럼 흔들리던 지원의 눈빛은 마침내 결정을 내린 듯 단호해진다. 그 순간 송지원의 칼은 이한규의 복부를 향해 정확하게 꽂힌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한규의 시야는 암전되고 송지원의 눈빛은 냉혹하게 번득인다. 간신히 친구가 될 뻔했던 두 사람은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차이의 늪을 건너가지 못하는 것일까.

 

 

임종 직전 바흐친은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청한다. 그것은 데카메론중에서 성자로 여겨졌으나 사실은 끔찍한 악당이었던 사람의 무덤가에서 기적이 일어난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들 중에서 우리가 바흐친을 이해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도망갈 길(loophole)은 어디엔가 항상 있다는 것, 삶은 예기치 않은 일들로 가득 찬 것, 혹은 신은 인간으로서의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이다.

-바흐친,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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