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토지로부터 유리된 주체적 인간의 출현
이 시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서장에서 늙은 거지가 타령 소리와 초라한 꼴로 시인의 청각과 시각에 들어오고,
제2부 본장은 그 늙은 거지가 직접 자신의 이력 및 인생관을 술회하는 이야기로 엮이며,
제3부 종장은 늙은 거지가 퇴장하는 데서 막이 내린다.
작중의 주인공은 비록 거렁뱅이지만 그의 노랫소리는 시름겨워 애걸하는 가락이 아니며 말씨는 제법 오만하다. 바로 이런 면모가 ‘서술자=시인’에게 이상하게 비쳤으며, 그에게 관심이 돌아간 것이다. 그래서 듣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가 곧 작품의 본장을 이룬 부분이다. 그가 거지 신세로까지 영락한 과정은, 연산군의 학정이라는 특수한 시대 사정이 있긴 하지만, 역시 자영농민층 몰락의 한 전형이다. 이조 전기 사회의 중요한 모순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작중 주인공이 비록 달관의 모습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뚜렷한 자기 목소리와 자기 얼굴을 가지고 등장한다는 점이다. 거지 노릇하는 자신을 스스로 가장 불쌍하게 연출하여, 오직 그것을 밑천으로 삼는 그런 것이 아니다. 서술자는 그 면모를 “백수 노인의 의기는 어찌 저리도 헌앙한가[白首意氣何軒昂]”라고 감탄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토지로부터 유리된 농민 가운데 주체적 인간이 출현한 것이다. 시인은 이 특이한 인간 형상을 주목했던바, 그것의 시적 표현은 자연히 서사적 형식으로 귀착되었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1권, 창비, 2020년, 91쪽
1 | 새벽에 밥 빌러 찾아온 늙은 거지 |
2 | 부잣집도 갑자사화로 풍비박산이 나다 |
3 | 보무당당한 늙은 거지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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