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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늙은 총각과 고달픈 소의 스케치
이 시의 주인공은 달구지를 모는 사람이다. 그는 나이 40이 되도록 아직 장가도 들지 못한 채 산속에서 벌목을 하고 목재를 실어내는 일을 숙명처럼 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달구지 모는 아이’라는 칭호를 아직 면하지 못한 것이다.
작품의 현재는 주인공이 진창길에서 목재를 운반하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열 발짝 후유 다섯 발짝 후유[竟日十步五步間]”하는 작업조건에다가 배는 고픈데 밥이 없다. 그럼에도 “사람은 굶어도 그만이지만 / 소야 주리면 꺼꾸러질 텐데………[兒不食尙可 牛飢恐失足]”라고 소를 우선 걱정한다. 이처럼 기아의 고통을 표현하면서 자기 몸보다 소를 소중히 여기는 일하는 사람의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에게 달구지 모는 일은 일종의 부역인데, 그에게는 숙명적 고역이다. 작품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10년이나 터벅터벅 달구지를 끄는 소에다 견주고 있다. “사람은 처자도 못 거느리고 소는 새끼도 낳질 못하고[兒身無子牛無犢]”라는 대목에서 고역의 비인도적 성격이 뚜렷하게 된다. 여기서 백성들이 진 고역이 그들의 삶을 무참하게 짓밟았던 사정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역은 아무래도 벗어나기 어려운 체제적 굴레였으니, 시인은 현실적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한 나머지 늙은 총각과 고달픈 소의 행복을 되찾는 날을 가상적인 소망으로 처리하고 말았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1권, 창비, 2020년,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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