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병자호란의 전란에 휩쓸린 연주가의 삶을 담다
「후비파행」은 백거이의 「비파행」의 후속편이라는 의미에서 붙인 제목이다. 「비파행」은 젊은 시절 장안에서 비파로 날리다가 늙어 강호에 영락해 있는 여자를 시인이 만나 비파연주와 함께 그녀의 인생역정을 듣고 감회가 깊어 읊은 내용이다. 총 616자, 88구에 이르는 장편시로 인구에 회자해온 명작이다.
「후비파행」은 「비파행」과 비교해볼 때 공간도 다르고 시대배경도 다르고 남녀의 다름이 있지만 다 같이 비파 고수의 이야기다. 영락한 신세에 초점이 맞춰진 점에서 더욱이 동질성이 있다. 그런데 「후비파행」의 주인공 김명곤이란 악사의 인생역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이어서 「비파행」의 주인공 여자에 견주어 훨씬 복잡다단하고 가련하기도 하다. 어려서 중이 되었다가 환속을 하고, 악사가 되어 ‘국공(國工)’으로 명성을 날리더니 전락해서 떠돌던 끝에 거지 신세로 황해도 장연의 한 절에서 붙어사는 처지다. 명청 교체기라는 역사적 상황이 배경을 이루어 이 인물의 운명에 심대한 영향을 직접 미쳤던 때문이다. 1622년 요동 지역을 여진족의 누루하치가 장악하여 모문룡이 가도를 점거하고 있던 당시 김명곤은 모문룡의 비상한 애호를 받아 그의 인생에서 황금기를 누리게 되며, 병자호란이란 전란의 과정에서 그는 재산도 여자도 다 잃고 떠돌이가 되어 유랑하게 된 것이다. 동북아의 역사전환기의 혼란과 고난의 축도가 그의 삶에 그대로 전이된 모양이다.
시인은 이 늙고 불쌍한 신세의 악사 김명곤을 황해도 재령의 어느 촌가에서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시점은 분명치 않으나 작중에서 그가 유랑하는 과정에서 서울에 들른 것이 계묘년(1663)이었다. 그후로 개성의 부호 마대인에게 한동안 대우를 잘 받다가 다시 또 유랑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이 기간을 10년 안쪽으로 잡으면 1670년 무렵이 된다. 그의 비파 인생은 70년이 넘는다. 성완은 이 김명곤의 비파 인생을 백거이의 「비파행」의 틀 속에 집어넣은 것이다. 훨씬 더 복잡한 제재를 비교적 단일한 제재의 형식적 장치에 수용했다. 「비파행」의 각운까지 그대로 따라 쓰고 있다. 한시 작법상의 특수한 일이지만 지극히 어려운 작업을 해낸 성완의 창작적 기량은 실로 놀라운 바가 있다.
물론 이런 작업상에는 어려움과 함께 무리도 따랐다. 단일한 내용을 담았던 그릇에 복잡다단한 내용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운문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정들은 병서의 산문을 길게 써서 전하는 방식을 취했다. 한가지 언급해둘 점이 있다. 「후비파행」에 쓰인 운자들을 비파행과 대조해보면 전부 일치하는데 후반부로 가서 운자 하나가 빠진 것이 발견된다(鳴ㆍ傾ㆍ聽으로 이어지는 대목에서 「후비파행」에는 傾운이 들어간 짝이 보이지 않음). 이는 시인 자신의 착오 아니면 전사과정에서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작품상으로는 별문제가 아닌 것 같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405~4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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