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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21세기 - 간서 본문

고전/노자

노자와 21세기 - 간서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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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서(間序)

 

 

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 23

 

드센 광풍[飄風]은 한 아침을 마칠 수 없고, 거센 소나기[驟雨]는 한 나절을 끝낼 수 없다. 그러나 광풍 후에도 산들바람은 불게 마련이요, 소나기 후에도 보슬비는 내리게 마련이다. 하느적 거리는 미풍은 곰팡이를 쫓아내고, 흐느적 거리는 보슬비는 새 생명을 움트게 한다. 분명 표풍이었고 취우였다. 그러나 갈 길은 아직도 멀다.

 

예수는 자신의 십자가를 어떠한 역사적 효능으로 생각하질 않았다. 자신의 십자가의 결과론이나 그것이 가져올 혁명적 변화를 예측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아니다. 한 가닥의 소망이라도 그것이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묵묵히 십자가에 오른 것이다.

 

나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나의 언어는 나 개인의 언어만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언어를 공유하는 착종(錯綜)된 언어공동체의 기나긴 축적으로 형성된 지혜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나는 나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이 보다 참된 삶을 갈망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제도 이전의 사태다. 제도적 개혁만이 우리시대의 진정한 개혁이라는 생각은 망상이다. 제도적 개혁 그 자체가 언어공동체적인 자각의 기반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나는 그러한 자각을 불러일으키는데 나의 신념을 실천에 옮겼을 뿐이다. 나는 승리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승리를 승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승리라는 사회적 결과에 대한 하등의 기준도 나의 내면에는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자(莊子)의 말대로, 말은 뜻을 전달키 위한 것이다. 그러나 말은 결코 뜻을 다 전달할 수 없다. 말로써 말을 형량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황소궁둥이에는 쇠파리가 들끓는다. 그러나 그것은 황소의 생명력이다. 황소가 죽음이라면 그의 궁둥이에는 구더기만 드글거릴 것이다. 쇠파리들이 황소의 앞길을 막는다고 앵앵대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다. 가끔 꼬리를 휘젓는 일은 있을지언정 쇠파리 때문에 앞길을 그르치는 법은 없다. 오늘도 황소는 묵묵히 자기 갈 길을 갈 뿐이다.

 

이천년 삼월 십일일 밤

무정재에서

 

 

 

 

인용

목차 / 서향 / 지도

노자 / 전문 / 노자한비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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