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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21세기, 방송문화의 한 전기를 위하여 - 5. 브레인코리아와 시청률 본문

고전/노자

노자와 21세기, 방송문화의 한 전기를 위하여 - 5. 브레인코리아와 시청률

건방진방랑자 2021. 5. 7.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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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브레인코리아와 시청률

 

 

나는 사회 전반적으로 테레비 시청률이 내려가는 편이 좋은 사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은 현실과 무관한 하나의 유토피아(Utopia)적 꿈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나의 이러한 꿈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청률을 내리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역설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 국가의 운영에 있어서 그 문화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 부언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문화정책의 가장 비중있는 섹터(sector)로서 우리는 교육정책을 꼽는다. 물론 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그 나라의 미래가 확보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십년지계(十年之計)는 수목(樹木, 나무를 심음)에 있고 백년지계(百年之計)는 수인(樹人, 사람을 심음)에 있다는 옛말(管子』 「權修) 그대로 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가장 고질적 병폐는 지나친 간섭에 내재한다. 초등ㆍ중ㆍ고등(primary and secondary education)학교 교육까지는 국가의 간섭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대계(大計)의 플랜을 잡는데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교육에 관한 국가의 개입이 배제된다면 그 사회는 유기적 균형성이 완전히 깨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대학교육은 거의 완벽하게 국가의 손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대학교육은 그 나름대로의 법칙이나 자유경쟁의 사회체제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운영되도록 방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학이야말로 사학이 관학을 리드해야 하며, 사학은 국가제도의 통제권 상위의 도덕성에 의하여 자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의 개입이 어느 상황에서든지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효과만을 잉태시켜 온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브레인 코리아(brain korea)’와 같은 발상 그 자체가 근원적으로 대학의 성격 자체를 잘못 이해한 데서 출발한 발상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브레인 코리아(brain korea)’에 투입할 돈을 그 일부만 건전한 테레비문화에 투입한다면, 아마도 브레인 코리아를 통해 소기했던 문화정책의 몇 배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어차피 국민을 교육시킬 수 있는 매체로서 국가정책의 효율성의 증대를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테레비만큼 강력하고 효율적인 매체는 없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의 현실이다. ‘시청률 경쟁으로 테레비 프로그램이 날로 날로 천박해지고 감각적으로 흘러가고, 또 국민의 감성구조 자체가 그러한 방향으로 같이 흘러가서 악순환의 상보적 싸이클을 형성하는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방식이 텔레비전을 시청률 경쟁에서 해방시켜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테레비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고 상대적으로 테레비 시청률을 낮추어가는 방향으로 대세(大勢)를 잡아야만 그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브레인 코리아(brain korea)’와 같은 발상은 애초에 대학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방송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했어야 했던 프로그램이었다. 대학은 이미 국가의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돈을 더 퍼넣는다고 더 아웃푸트(output)가 생겨나는 그러한 자본주의적 체제가 아니다. 교육은 철저히 비자본주의적 원칙에 의해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테레비는 통제ㆍ조절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또 자본주의적 체제 속의 한 매카니즘(mechanism)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다큐멘타리를 아무리 잘 만들어야 시청률 5%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연속방송극은 가볍게 만들어도 시청률 5%는 훌떡 넘어간다. 그런데 좋은 다큐멘타리를 만들려면 동일한 방영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제작비가 연속방송극의 100배가 넘을 수도 있다. 그럼 현실적으로 다큐멘타리 제작 피디가 100배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가? 바로 이러한 질문에 선진국의 관계자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나, 우리나라의 피디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수밖에 없다는데 바로 우리 방송문화의 고질적 병폐의 한 근원적 요소가 내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건전한 방송 펀드가 턱없이 부족하며, 일본에서 쥐

꼬리만큼 주는 펀드광고라도 나면 컴피티션(competition)에 열을 올려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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