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테레비 앞에 앉어 있는 사회 & 테레비 볼 시간도 없는 사회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사회의 문제는 정치만의 문제도 아니요, 교육만의 문제도 아니요, 경제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매스컴 전반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더 중요한 문제는 이 매스컴의 창조적 계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도덕적 구심체가 부재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는 제1의 관건은 테레비 프로그램을 만드는 당사자인 피디와 피디를 지원하는 모든 협업체계의 ‘인식의 변화’다. 인식의 변화라는 것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법과 과정과 목표에 대한 자유로운 인식의 지평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 그 자체가 어떤 고정의 틀이나 선입견에 얽매여 있지 않은 것을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제작 당사자들의 인식이 고정적 틀에 얽매어 있게 되는 가장 중요한 현실적 이유가 바로 ‘시청률’이라는 문제인 것이다. 영화가 크게 흥행이 된다고 해서 반드시 명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흥행이 안되는 영화일수록 명화라는 논리 또한 성립될 수가 없다. 진정한 명화라고 한다면 대개 어느 정도의 흥행성 또한 확보되는 것이 대체적 상리(常理)일 것이다. 그렇다면 명화란 무엇인가? 명작은 어떻게 해서 태어나는 것일까?
여기 본질적인 ‘영상론’을 논구할 자리는 아닌 것 같다. 단지 흥행만을 목표로 해서 영화를 만든다든가, 단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테레비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든가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확인하는 것으로 우리의 논의를 끝내야 할 것 같다. 시청률 경쟁의 궁극적 선(善)은 결국 보다 많은 사람을 테레비 앞에 앉히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가치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보다 많은 사람이 테레비 앞에 앉어 있는 사회일수록 좋고 건강한 사회일까? 그 사회의 성원이 바쁘게 자기 일하면서 활동하느라고 테레비 볼 시간도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일 안하고 운동 안하고 넋 없이 테레비 앞에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어느 것이 더 우리의 건강한 모습일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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