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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유토피아 & 디스토피아(Utopia & Dystopia)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유토피아 & 디스토피아(Utopia & Dystopia)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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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 디스토피아

Utopia & Dystopia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

 

1980년대에 크게 유행했던 <! 대한민국>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경쾌한 멜로디와 아기자기한 노랫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불렀고, 국가 대항 운동 경기 같은 데서는 응원가로도 자주 쓰였다. 그러나 당시는 서슬 퍼런 군사독재의 시절, 그 노래가 그렇게 큰 인기를 끈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 노랫말에 나오는 대한민국이 현실의 대한민국과 너무도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은 사람은 아주 드물었으니까. 현실이 어려울수록 꿈은 더욱 아름다워지게 마련이다. 모어(Sir Thomas More, 1478~1535)가 유토피아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16세기의 영국도 바로 그랬다.

 

유토피아(Utopia)는 원래 ou(‘없다는 뜻의 그리스어) + topos(‘장소’) + -ia(‘나라’)를 합쳐서 만든 말로서,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같은 발음으로 멋진(eu) (topos)’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이나 재너두(Xanadu)가 그렇듯이 정말 멋진 곳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까?

 

모어의 시대에 영국은 수많은 농민들이 절대주의 정치와 중상주의 경제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영주들은 모직 산업의 원료인 양털을 얻기 위해 농토를 목장으로 형질 변경하고 농민들을 쫓아냈다. 모어는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히틀로다에우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풍자한다.

보통 양들은 온순하고 또 값싸게 기를 수 있는 가축인데, 요즘은 양들이 아주 사나워져서 사람들까지 먹어치운다는군요.”

 

현실이 암울할수록 모어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더욱 달콤하다. 우선 유토피아에는 지주가 없다. 모든 땅에는 경작자만 있을 뿐 임자가 없으므로 농민들은 마음 놓고 땅을 경작한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다. 모든 국민들은 신분, 성별, 빈부의 차이가 없고 누구나 농업에 종사한다. 일하지 않으면서 놀고 먹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누구나 부지런히 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짐승처럼 일밖에 모르지는 않는다. 남보다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돈이나 땅을 모을 수는 없고, 또 모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토피아의 국민들은 오전과 오후에 세 시간씩 하루 여섯 시간만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지적 추구에 열중하거나 자신의 취미를 즐긴다. 물론 적당한 오락 시간도 거의 의무처럼 주어진다.

 

 

모어는 500년 전에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다. 바로 공산주의 사회의 이념이 그렇지 않은가? 적어도 이념으로 보는 공산주의 사회는 인류 사회의 가장 높은 단계로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전인적인 생활을 즐긴다.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소득을 얻는, 좋게 말하면 자유 경쟁이고, 나쁘게 말하면 비인간적인 사회이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득을 얻는다.

 

구호와 이념은 훌륭했지만 20세기의 공산주의 실험은 경제적 생산력을 높이지 못하고 정치가 관료제화함으로써 결국 실패로 끝났다. 히틀로다에우스는 유토피아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두가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섯 시간의 노동이면 필수품과 안락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는 데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살아가는가를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중략)

다른 나라들에서는 성직자들이 너무 많고 또 대개 게으름뱅이들이죠. 게다가 부자들, 귀족이라 부르는 지주들, 여기에 빈둥거리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시종들, 마지막으로 온갖 핑계를 대며 놀고먹는 거지들이 있죠. 이런 걸 생각하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생산해내는 사람들의 수가 상상 외로 적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모어의 해법은 바로 평등에 있었다. 사회 내에 아무도 놀고 먹는 사람이 없이 누구나 똑같이 일한다면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는 데 필요한 경제적 생산력을 충분히 이뤄낼 수 있으리라는 게 모어의 생각이었다. 만약 20세기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모어가 말하는 것과 같은 완전한 평등 사회를 실현했다면 그들의 실험은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유토피아를 실현하지 못했고, 오히려 현실과 유토피아의 거리감만 더욱 벌려놓았다. 유토피아는 이제 상상 속에서조차 버려야 하는 걸까? 그래서 20세기의 과학소설가들은 유토피아와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는 디스토피아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20세기 초는 세계적으로 러시아혁명, 경제공황, 파시즘, 두 차례의 세계대전 등 극심한 혼란이 잇달았다. 이런 배경에서 디스토피아는 이 참담한 현실이 암울한 미래로 이어지는 과정을 묘사하는 개념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그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은 현대 사회의 자랑거리인 과학 문명이었다. 19세기까지 인간은 과학 문명이 인간의 궁극적인 해방을 가져다주리라는 낙관 무드에 젖어 있었으나 이제는 첨단의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노예화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싹텄다.

 

현대 사회의 토양에서 생겨나 과학소설의 기름으로 자랐기 때문에 디스토피아의 개념20세기에 들어 영향력 있는 매체로 떠오른 영화의 단골 소재로 이용된다. 미래를 다룬 SF 영화들은 대부분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로 미래 사회를 암울하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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