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장
執大象, 天下往. 집대상, 천하왕. |
큰 모습을 잡고 있으면 천하가 움직인다. |
往而不害, 安平太. 왕이불해, 안태평. |
움직여도 해가 없으니, 편안하고, 평등하고, 안락하다. |
樂與餌, 악여이, |
아름다운 음악과 맛있는 음식은 |
過客止. 과객지. |
지나가는 손을 멈추게 하지만, |
道之出口, 도지출구, |
도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
淡乎其無味. 담호기무미. |
도무지 담담하여 맛이 없다. |
視之不足見, 시지부족견, |
그것을 보아도 보이기엔 족하지 아니하고, |
聽之不足聞, 청지부족문, |
그것을 들어도 들리기엔 족하지 아니하고, |
用之不足旣. 용지부족기. |
그것을 써도 쓰이는데 궁함이 없다. |
1. 고층대에 속하는 판본으로 가슴을 뛰게 하는 장(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平太)
내가 어렸을 때 이 장을 읽으면 왠지 가슴이 뻐근하게 솟구쳐 치솟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내 일생 ‘선비’로서의 자긍심을 항상 불러 일으켜준 장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일찍 나에게 이러한 깨달음을 주신 노자선생님께 감사한다. 우리는 너무도 추상적 가치에 대한 믿음이 없다. 우리는 너무도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고, 보이지 않는 것의 묘용(妙用)에 대한 통찰이 없다. 보이는 것보단 보이지 않는 것이 항상 더 본질적이고 더 귀한 것이요 더 강력한 것이다.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해서 초월적인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항상 보이는 것과 더불어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내가 어렸을 때, 청운의 꿈을 달래고 있을 때, 천하를 호령하고 싶었을 때, 이 노자의 한 말씀이 얼마나 그 통렬하게 나의 폐부를 쑤셨겠는가? 보이지 않는 큰 추상적 가치[大象]를 잡아라! 그리하면 천하(天下)가 움직일 것이다! 옳다! 작은 일에 구애 받고, 보이는 작은 이해관계에 얽매여 살지 말자! 대상(大象)만 잡으면[執] 천하(天下)가 움직일 것이 아닌가? 뭐가 무서우랴! 나는 대상(大象)만 잡고 있으면 천하(天下)가 움직일 텐데.
대상(大象)이 무엇인가? 지혜를 얻자! 독서를 하자! 공부를 쌓자! 그래서 가장 큰 상(象)을 내 가슴에 품자! 내 어찌 일일이 천하(天下)를 경략할 필요가 있으라! 불출호 지천하(不出戶, 知天下)! 문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天下)를 다 알 수 있는데! 저 서역의 지혜의 서(書), 『금강반야바라밀경』은 말한다. 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 상을 취하지 말라. 있는 그대로 움직이지 말라!
이 장은 백본(帛本)과 간본(簡本)에 모두 다 들어있다. 그런데 문자(文字)의 출입(出入)이 별로 없다. 왕본(王本)의 안정성을 나타내 준다. 그리고 이장은 노자사상의 고층대에 속하는 것이다.
2. 추상적 가치를 잡으면 천하가 움직인다
‘집대상 천하왕(執大象, 天下往)’은 전통적으로 두가지 해석방식이 있다.
그 하나는 ‘대상(大象)을 잡고 있으면 천하(天下)가 간다’는 뜻으로 내가 새긴 방식인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왕주(王注)에 의거한 것이다. ‘천하(天下)가 간다’는 것은 보통 ‘천하(天下)가 귀순한다’는 식으로 정치적 맥락으로 해석한다. 심지어 ‘상(象)’에 ‘법령(法令)’의 뜻까지 내포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象)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보는 것은 전체 문맥에 어긋날 뿐 아니라 문장의 맥아리가 없어진다.
또 한 방식은 ‘대상(大象)을 잡고 천하(天下)에 간다’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음 구절은 ‘가도 해치는 자 없나니, 편안하고 평등하고 안락하다’ 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두 방식을 짬뽕하여, ‘대상(大象)을 잡고 천하(天下)와 더불어 움직인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천하(天下)와 더불어 움직이니 어떠한 방해가 있으랴!
執大象, 天下往 |
대상(大象)을 잡고 있으면 천하(天下)가 간다 |
대상(大象)을 잡고 천하(天下)에 간다 | |
대상(大象)을 잡고 천하(天下)와 더불어 움직인다 |
왕필은 말한다.
여기 말하는 ‘큰 모습’이란 하늘의 추상적 가치의 근원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서늘하지도 않다. 그래서 만물을 능히 포통(苞通)할 수 있는 것이래서, 범하고 상하게 될 바가 없다. 임금이 그것을 잡으면 곧 천하가 움직이게 될 것이다.
大象, 天象之母也. 不寒不溫不凉, 故能包統萬物, 無所犯傷. 主若執之, 則天下往也.
왕필은 치자(治者)의 입장에서 이것을 해석했지만, 나는 모든 군자(君子)가 배워야할 삶의 자세로 해석했다. 대상(大象)은 분명 추상적 가치다. 그런데 대상(大象)을 잡으면 천하(天下)가 움직인다! 이 한마디처럼 가슴을 설레이게 만드는 강력한 언사가 또 어디 있으리오!
‘왕불해(往不害)’에 대하여 왕필은 다음의 주석을 달았다.
형체가 없고 표시도 나지 않는다. 치우침도 없고 또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만물이 움직여도 해방을 받을 바가 없다.
無形無識, 不偏不彰, 故萬物得住而不害妨也.
3.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樂與餌, 過客止.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
아름다운 음악[樂]과 맛있는 음식[餌]은 지나가는 손을 멈추게 한다. 그런데 도(道)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도무지 담담하여 맛이 없다. 아름다운 음악과 맛있는 음식의 감각적 자극에 대비시켜 도(道)가 담담하여 맛이 없다고 말하는 그 발상이 참으로 기발하다. 옛사람들이 추상적 가치를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지시키는 그 언어적 상상력에 다시 한번 경탄을 금할 길 없다.
우리는 너무도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길거리에 지나가다가 휴지 하나를 줍는 행동도, 내가 휴지를 주음으로써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이로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신념이 없이는 그러한 행동이 성립할 수가 없다. 인(人)은 보이지만, 인(人)의 간(間)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보이는 인(人)은 보이지 않는 인(人)의 간(間)에 의해서만 존립(存立)하는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전체의 그물을 볼 수 있는 지혜가 노자가 가르치고자 하는 도(道)의 지혜인 것이다.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 그것, 그것이 무엇이었든가? 그대 이름 도(道)여! 그대의 자태를 드리우라! 필은 말한다.
이 단은 도의 깊고 큼을 형용하고 있다. 사람들이 도의 말됨을 들으면, 그것은 좋은 음악과 맛있는 음식이 때에 응하여 사람의 마음을 감열시키는 것만 같지 못하다.
言道之深大. 人聞道之言, 乃更不如樂與餌, 應時感悅人心也.
음악과 음식은 지나가는 손의 발걸음도 멈추게 할 수 있지만, 도가 입에서 나오는 모습은 도무지 담담하여 맛이 없다. 보아도 보이지 않으니 그것은 눈을 즐겁게 할 수 없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니 귀를 즐겁게 할 수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이 속이 텅 비어있어 아무리 퍼내 써도 다함이 없다.
樂與餌則能令過客止, 而道之出言淡然無味. 視之不足見, 則不足以悅其目, 聽之不足聞, 則不足以娛其耳. 若無所中然, 乃用之不可窮極也.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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