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여성성
그런데 불교는 원래 정치적 권력의 장악을 목표로 하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고해로부터의 구원과 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각성(覺醒)운동이다. 따라서 그 각성을 유도하는 대자대비의 상징체계에는 본시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이 강하다. 우리나라 민중에게 가장 아필이 된 구세보살(救世普薩)인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경우에도 그 성별을 정확히 논하기는 어려운 것이나(물론 남성으로 규정되었다), 그 불상의 표현양식을 보면 온갖 찬란한 영락(瓔珞: 꿴 보석구슬 장식)으로 몸을 휘감고 속이 비치는 샤리 속에 아련히 흘러내리는 몸매의 표현은 지극히 여성적이다.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의 섬세하기 그지없는 그 매혹적인 자태를 보라! 석굴암의 11면관음보살상 대비성자(大悲聖者)의 지엄한 자태 속에도 아주 소박한 조선의 여인, 우리가 흔히 느낄 수 있는 엄마의 모습이 들어가 있다. 『부모은중경』의 뛰어난 사실은 ‘부모’를 말하면서도 오로지 ‘엄마의 무한한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강행실도』 | 『부모은중경』 |
아버지에 대한 충효 | 엄마의 자애 |
아버지 ↑ 아들ㆍ딸 |
엄마 ↓ 아들ㆍ딸 |
국보 제120호, 용주사 범종, 명문은 다음과 같다: “성황산 갈양사 범종 한 구를 석반야가 2만 5천근을 들여 주성하였다. 금상(今上) 16년 9월 어느날 사문 염거[成皇山葛陽寺, 梵鐘一口, 釋般若鑄成, 二萬五千斤. 今上十六年九月日, 沙門廉居].”
『부모은중경』은 세존이 수많은 대중들과 함께 여행[南行]을 하다가 한 무더기의 마른 뼈[枯骨]를 보자 갑자기 오체투지를 하여 그 삭은 뼈에게 절을 하는 극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많은 대중 앞에서 놀란 아난은 세존이야말로 삼계의 큰 스승이요, 중생의 자비로운 아버지이시라서 모든 사람이 절을 올리는 분이신데 어찌하여 썩은 뼈에 절을 올리시는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묻는다. 이에 세존은 대답한다: “저 마른 뼈가 전생의 나의 부모님이 아니라고 어찌 말할 수 있으랴[此一堆枯骨, 或是我前世翁祖累世爺!”
이런 극적인 대화로써 사람을 끌어들이며 곧바로 엄마가 아기를 가진 후 열 달 동안 고생하는 모습을 그리는데, 한 달, 두 달, 세 달 … 열 달까지 그 태아의 생성모습을 그리는 언어가 오늘날의 발생학적 사유와 대차가 없으며 그 묘사기법이 매우 절실하다. 그리고 천 개의 칼로 배를 휘젓고 만 개의 칼로 심장을 찌르는 듯한 엄마의 산고를 묘사하고 곧이어 앞서 말한 어머님 은혜 십게찬송(十偈讚頌)이 설파된다.
▲ 용주사 『은중경』의 첫 판화 「여래정례(如來頂禮)」. 가운데 세존이 오체투지를 하고 있고 그 앞에 마른 뼈[고골枯骨]가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자세히 뜯어보면 단원의 표현력이 섬세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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