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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교컴 겨울수련회 참가기 - 1. 건빵이 교컴 겨울 수련회에 참석한 까닭? 본문

연재/배움과 삶

교컴 겨울수련회 참가기 - 1. 건빵이 교컴 겨울 수련회에 참석한 까닭?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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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빵이 교컴 겨울 수련회에 참석한 까닭?

 

 

겨울이 끝자락에 걸려 서서히 봄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체감으로 느껴지던 220일에, 고향 전주에 다시 내려간다. 이미 2월 둘째 주에 설날이 있어서 전주에 다녀왔으니, 겨우 10일 만에 다시 가는 셈이다. 이건 나에게 있어선 아주 서프라이즈하고, 언빌리버블한 일이다.

 

 

유독 올 겨울엔 한파가 많이 찾아왔고, 남부지방엔 폭설이 내렸다. 설 다음 날 전주에 폭설이 오던 날에.

 

 

 

대화에도 맛이 있다

 

서울에 둥지를 틀었고 친구들도 거의 대부분이 서울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집 안 행사가 있을 때나 전주에 갈 뿐, 웬만하면 내려가진 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 날은 내려간 것이니, 당연히 그곳에 숨겨 놓은 애인이 있거나, ‘황금 두꺼비가 있거나 하다고 생각할 만하다. 나도 그런 이유 때문에 내려간 것이라면 오죽 좋겠냐만은, 슬프게도 그런 이유는 전혀 아니었다. ‘전주 사람이 전주에 간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수련회 후기의 맛깔스러움은 사라지고 그저 밍밍한 글이 될 것이기에, 장황한 이야기를 계속 하려 한다.

때는 바야흐로 2016년 새해가 밝고서 29일이 지난 금요일 밤의 열기가 가득한 번화가에서 있었던 일이다. ‘불금의 귀신이 거리를 배회하며 가슴 휑한 사람들을 집이 아닌 거리로 내몰던 밤, 나는 단재학교에서 인연을 맺은 준규쌤을 만나게 되었다. 평상시엔 지지학교에서 만나 간단하게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는데, 이때는 준규쌤이 모처럼만에 3주간 방학을 보내게 되어 중간 지점인 광화문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때 5만 년 된 나무테이블 이야기를 들은 건 행운이었고, 기숙학교 특성 상 아이들을 긴 시간동안 봐오며 느낀 이야기를 들은 건 축복이었다.

사람의 대화에도 맛이란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며 상상력이 촉발되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대화는 달콤한 대화라 할 수 있으며, 첫사랑의 아픔 같이 가슴 시린 서글픔과 스산함을 남기는 대화는 신맛 나는 대화라 할 수 있으며,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느끼게 한 후 발분하게 만드는 대화는 짠맛 나는 대화라 할 수 있으며,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지만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대화는 싱거운 대화라 할 수 있다. 단연 준규쌤과의 대화는 달콤하면서도 짠맛 나는 대화였다.

 

 

5만 년된 나무 테이블은 일반 탁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이야기가 사물의 이면의 상상을 끌어내기도 한다. 

 

 

 

전주에서 교컴 수련회가 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의 반응은?

 

긴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220일에 전주에서 모임이 있는데, 집이 전주잖아요. 그러니 건빵도 청강하는 형식으로 한 번 참여해 보는 건 어때요? 뭐 잠이야 집에서 자면 되니, 좋은 기회가 될 거 같아요라고 제안을 해주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고민하고 자시고 할 까닭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단재학교에서 4년을 보내며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어떻게든 정리하며, 다시 근본적인 물음인 교육에 대해 묻고 싶었던 까닭에 귀가 번쩍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건 작년 여름에 섬쌤이 갑자기 눈덩이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용산모임을 하자고 할 때의 그런 설렘과 흥분 같은 거였다.

그러고 보면 우연한 만남, 갑작스런 모임을 좋아하게 된 것을 보니 요즘 되게 외롭긴 한가 보다. 외로운 사람에겐 반복되는 현실의 지루함이 아닌 새로운 충격을 원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엔 내 고향 전주에서 모임을 한다지 않은가. 물론 과한 해석이지만, ‘이건 나를 위해 예비하신 어떤 뜻이 있다는 비기독교인이 기독교인처럼 생각하고픈 상황에까지 이르렀다고나 할까.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가슴 뛰게 하는 순간들.

 

 

 

외로운 사람이여, 그대 통하였느냐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라는 선언과 함께, ‘그렇기에 사람은 외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외롭다는 건 짐짓 충만한 척, 괜찮은 척 하는 가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공허함을 인정하고 끌어안는다는 것이다.

empty이야 말로 가능성이다. full은 고집을 낳지만, 빔은 무아無我를 낳는다. ‘모든 게 고통이다一切皆苦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참에서 비롯되며, 나를 고집하려는 마음我執에서 시작된다. 그걸 그대로 인정해버렸으니 외로운 그대를 위해 더 이상 외롭지 않도록 갖가지 것들을 준비했어라며 자본이 촘촘히 쳐놓은 허영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고 돌파할 수 있는 저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신영복쌤은 강의라는 책에서 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 경우, 그릇으로서의 쓰임새는 그릇 가운데를 비움으로써 생긴다. ‘없음으로써 쓰임으로 삼는 지혜. 그 여백 있는 생각. 그 유원幽遠한 경지가 부럽습니다.”라고 말한 것이지 않을까.

모든 가능성과 다양한 언어들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텅텅 비어 있는 상태의 나였기에, 준규쌤의 말에 당연히 가야죠라고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럴 때 보면 건빵은 결단력이 있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이때 상황과 상황이 맞아 떨어졌기에 그런 것일 뿐, 평소엔 그저 흐리멍덩하기만 할 뿐이다.

 

 

 

빈 공간은 가능성이고, 외로움은 관계의 전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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