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한(愛閑)을 그치지 않을 때 한한(閑閑)이 된다
애한정기(愛閑亭記)
이정구(李廷龜)
槐灘上流, 地僻而佳, 有翠壁澄潭長松脩竹之勝. 吾老友朴益卿, 築室而居之, 名其亭曰愛閑, 求記於薦紳間. 五峯李相公, 首爲文若詩, 易其名曰閑閑, 其意蓋以吾自閑之, 曰愛則猶外也. 益卿袖以示余, 若有不解者然, 曰: “亭名何居? 願聞子之說.” 余就而繹之.
夫所謂閑者, 無事而自適之謂. 人必自閑而後人閑之, 役志於閑, 非眞閑也. 物之閑者, 莫鷗若也, 飛鳴飮啄, 自適其性, 非有意於閑, 而見者閑之. 夫豈自知其閑哉? 此五峯之言所以發也.
雖然, 閑公物也, 惟愛者能有之. 苟不愛焉, 則雖處煙霞水石之間, 其心猶役役也. 彼狗苟蠅營, 昏夜乞哀, 乾沒勢利, 卯酉束縛者, 固不知閑之爲何事, 奚暇於愛乎?
益卿世家京洛, 初非無意於仕宦者, 今乃謝紛華而樂寛閑, 一室蕭然, 不知老之將至. 朝於旭而閑, 夕於月而閑, 花於春而閑, 雪於冬而閑, 琴焉而愛其趣, 釣焉而愛其適. 行吟詩臥看書, 登高望遠, 臨水觀魚, 隨所遇而皆閑, 則名之以愛, 不亦宜乎? 愛之不已, 終至於不自知其閑, 則閑閑之意, 亦在其中矣. 斯固一而二, 二而一者也, 益卿何擇焉?
乃若湖山之勝, 余未嘗寄目, 竊就君所命八景者而爲之詠. 『月沙先生集』 卷之三十七
해석
槐灘上流, 地僻而佳, 有翠壁澄潭長松脩竹之勝.
괴탄(槐灘)【충북 괴산군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지르는 괴산군 최대의 하천이다.】의 상류는 땅이 외딴 곳이지만 아름다워 비취색 절벽과 맑은 연못과 긴 소나무와 뻗은 대나무의 명승지다.
吾老友朴益卿, 築室而居之, 名其亭曰愛閑, 求記於薦紳間.
나의 옛 벗인 박익경(朴益卿)이 집을 짓고 살면서 정자를 애한(愛閑)이라 이름 짓고 지체가 높은 분들에게 기문을 구했다.
五峯李相公, 首爲文若詩, 易其名曰閑閑, 其意蓋以吾自閑之, 曰愛則猶外也.
오봉(五峯) 이상공은 첫째로 문과 시를 짓고 ‘한한(閑閑)’으로 이름을 바꿨으니 의도는 아마도 ‘내 스스로의 그것을 한가로워야 하는 거지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오히려 외면시하는 것이다’라는 것이리라.
益卿袖以示余, 若有不解者然, 曰: “亭名何居? 願聞子之說.” 余就而繹之.
익경이 소매에서 나에게 보여주고 이해하지 못하는 듯이 “정자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리오? 그대의 설명을 듣길 원하네.”라고 하니 내가 나가서 해석해줬다.
夫所謂閑者, 無事而自適之謂.
대체로 이른바 한가함이란 일삼은 것 없이 자적함을 말한다.
人必自閑而後人閑之, 役志於閑, 非眞閑也.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한가로운 후에야 남들이 그를 한가롭다 여기지 뜻을 한가로움에 힘쓰는 건 참된 한가로움이 아니다.
物之閑者, 莫鷗若也, 飛鳴飮啄, 自適其性, 非有意於閑, 而見者閑之.
생물의 한가로운 것 중 갈매기 같은 게 없으니 날고 울고 마시고 쪼음이 스스로 본성에 따르되 한가로움에 의도한 게 아니지만 보는 이들은 한가롭다 한다.
夫豈自知其閑哉? 此五峯之言所以發也.
대체로 어찌 스스로 한가하다는 걸 알리오? 이것이 오봉의 말이 발설된 이유다.
雖然, 閑公物也, 惟愛者能有之.
비록 그렇더라도 한가로움은 공적인 사물로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
苟不愛焉, 則雖處煙霞水石之間, 其心猶役役也.
만일 사랑하지 않는다면 비록 안개 낀 노을이나 물과 바위 사이에 있더라도 마음은 오히려 시달리게 된다.
彼狗苟蠅營, 昏夜乞哀, 乾沒勢利, 卯酉束縛者, 固不知閑之爲何事, 奚暇於愛乎?
저 구차한 개와 앵앵거리는 파리처럼 어둔 밤에 애걸하며 권세와 이익을 빼앗아가고[乾沒] 관청【묘유(卯酉)는 관청에 출근하여 직무에 종사하는 것을 말한다. 관리들이 묘시(卯時)에 출근하여 유시(酉時)에 퇴근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4년 4월 18일 기사에, “각사(各司)의 관원은 묘시에 출사하여 유시에 퇴근하고, 해가 짧을 때에는 진시에 출사하여 신시에 퇴근하는 것이 법전에 실려 있습니다.” 하였다.】에 묶인 이들은 진실로 한가로움이 어떤 일이 되는 줄 모르는데 어찌 사랑할 겨를이 있으랴?
益卿世家京洛, 初非無意於仕宦者, 今乃謝紛華而樂寛閑, 一室蕭然, 不知老之將至.
익경은 대대로 서울에 살며 처음엔 벼슬에 뜻이 없진 않았지만 지금은 바쁘고 화려함을 사양하고 넉넉하고 한가로움을 즐겨 한 집안이 조용해서 늙음이 장차 이르는 줄도 몰랐다.
朝於旭而閑, 夕於月而閑, 花於春而閑, 雪於冬而閑, 琴焉而愛其趣, 釣焉而愛其適.
해 뜨는 아침에도 한가하고 달 뜨는 저녁에도 한가하며 봄철에 꽃피어도 한가하고 겨울철에 눈 내려도 한가해 거문고 타며 그 정취를 사랑하고 낚으며 자적함을 사랑했다.
行吟詩臥看書, 登高望遠, 臨水觀魚, 隨所遇而皆閑, 則名之以愛, 不亦宜乎?
다니며 시를 읊조리고 누워선 책을 보며 높이 올라 멀리 바라보고 물에 다달아 물고기 보며 만나는 것에 따라 모두 한가하다면 이름 짓길 ‘애(愛)’라 함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愛之不已, 終至於不自知其閑, 則閑閑之意, 亦在其中矣.
사랑함을 그치지 않아 마침내 스스로 한가로움을 모르는 경지에 이른다면 ‘한한(閑閑)’의 뜻이 또한 그 가운데 있으리라.
斯固一而二, 二而一者也, 益卿何擇焉?
이것은 진실로 하나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니 익경은 무얼 선택하려나?
乃若湖山之勝, 余未嘗寄目, 竊就君所命八景者而爲之詠. 『月沙先生集』 卷之三十七
호수와 산의 명승지 같은 경우는 내가 일찍이 눈으로 보질 못해 은근히 그대가 명한 팔경(八景)에 나아가 그걸 짓고 읊조리겠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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