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한(愛閑)을 한한(閑閑)으로 바꾼 이유
한한정기(閑閑亭記)
이호민(李好閔)
吾友朴君益卿, 舊居吾隣西母嶽之下, 有楓崖林塘之幽. 湖西之始安郡, 是君之妻郷也, 兵火之後, 君移于始安, 則始安又山水之會也. 君就其會而又選其勝焉, 築亭開沼, 蒔花種竹, 名其亭曰愛閑. 琴於斯, 棋於斯, 觴於斯, 釣於斯.
一日, 君踵吾門而誇詡之曰: “子不自閑, 何能知人之閑耶? 旣不自閑, 可記人之閑耶?”
吾始愧而咍曰: “君名亭愛閑, 是閑爲他物, 而君知愛之也. 愛固善矣, 豈如吾自閑之爲眞閑耶? 夫閑者, 無所用心, 若有事而無事之謂也. 吾苟閑也, 則吾不自知吾閑, 人見吾之閑而愛之也. 君之名亭, 爲人而起義則可, 苟自爲也則不. 若曰閑閑, 下一閑, 謂心閑也, 上一閑, 謂閑之也, 苟閑閑也, 此其眞閑也. 閑之旣眞, 則雖居金門之邃, 處衚衕之擾, 心固自閑也, 何必就淸涼之境山水之間而爲頑閑也? 君知愛閑, 而不知自閑, 宜謂吾不知人之閑也. 雖然, 吾於君言, 知當閑其所閑者, 君亦於吾言, 知閑在我而不容愛焉, 則是互有所得也, 不其多乎哉?”
遂改之曰閑閑, 使金生柱宇書其篇而歸之, 仍賦君所命八詠詩, 以志湖山之勝槩云. 『五峯先生集』 卷之八
해석
吾友朴君益卿, 舊居吾隣西母嶽之下, 有楓崖林塘之幽.
나의 벗 박익경(朴益卿)의 옛 집은 우리 이웃 서쪽 모악산【안산(鞍山). 무악산으로도 불리며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다. 산의 생김새가 말이나 소의 등에 짐을 싣기 위해 사용한 길마와 같이 생겼다 하여 길마재라고도 하며, 모래재, 추모련이라고 불렀고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봉우재라고도 불러왔다.조선시대에는 어머니의 산이라고 해서 모악산(母岳山)이라고 불렀다.】 아래 단풍 벼랑과 수풀 연못의 그윽한 곳이다.
湖西之始安郡, 是君之妻郷也, 兵火之後, 君移于始安, 則始安又山水之會也.
호서(湖西, 충처도)의 시안군(始安郡, 괴산군)은 익경 아내의 고향으로 전쟁 후에 군이 시안군으로 이사했으니 시안군은 또한 산수가 모여드는 곳이다.
君就其會而又選其勝焉, 築亭開沼, 蒔花種竹, 名其亭曰愛閑.
익경은 모여든 곳에 나가고 또한 명승지를 뽑아 정자를 쌓고 못을 열며 꽃과 대나무를 심고서 정자를 ‘애한정(愛閑亭)’이라 이름지었다.
琴於斯, 棋於斯, 觴於斯, 釣於斯.
여기에서 가락 역주하고 바둑 두고 술잔 나누며 낚시를 했다.
一日, 君踵吾門而誇詡之曰: “子不自閑, 何能知人之閑耶? 旣不自閑, 可記人之閑耶?”
하루는 익경의 우리 집에 찾아와 그걸 “그대는 스스로 한가롭질 않으니 어찌 남의 한가로움을 알 수 있겠는가? 이미 스스로 한가롭지 않으니 남의 한가로움을 기록할 수 있겠는가?”라고 자랑했다.
吾始愧而咍曰: “君名亭愛閑, 是閑爲他物, 而君知愛之也.
내가 막 부끄러워하다가 비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정자를 애한(愛閑)이라 이름지었지만 이런 한가로움은 다른 물건이 되어 그대는 그걸 사랑하는 것이지.
愛固善矣, 豈如吾自閑之爲眞閑耶?
사랑함이 진실로 좋더라도, 어찌 나 스스로 한가로워야 참된 한가로움이 되는 걸 알겠는가?
夫閑者, 無所用心, 若有事而無事之謂也.
대체로 한가로움이란 마음 씀이 없는 것이니 일삼는 게 있으면서도 일삼는 게 없는 것 같은 걸 말한다네.
吾苟閑也, 則吾不自知吾閑, 人見吾之閑而愛之也.
내가 진실로 한가하다면 나는 스스로 나의 한가롭다는 걸 모르지만 남들은 나의 한가로움을 보고 그걸 사랑해주지.
君之名亭, 爲人而起義則可, 苟自爲也則不.
그대가 정자를 이름 지은 게 남을 위하여 의미를 일으킨 것이라면 괜찮지만 진실로 스스로 하는 것이라면 괜찮지 않아.
若曰閑閑, 下一閑, 謂心閑也, 上一閑, 謂閑之也, 苟閑閑也, 此其眞閑也.
‘한한(閑閑)’과 같은 경우의 아래 한 글자 한(閑)은 ‘마음이 한가롭다’를 말하고 윗 한 글자 한(閑)은 ‘그것을 한가롭게 한다’는 말이니 진실로 한가로움을 한가롭게 하는 것, 이것이 참된 한가함이지.
閑之旣眞, 則雖居金門之邃, 處衚衕之擾, 心固自閑也, 何必就淸涼之境山水之間而爲頑閑也?
한가로움이 이미 참되면 비록 궁궐 속에 살고 대로의 시끄러움에 산다 해도 마음은 짐짓 절로 한가로우리니 하필 청량한 곳이나 산수 사이에 나아가 한가로움을 누리겠는가?
君知愛閑, 而不知自閑, 宜謂吾不知人之閑也.
그대는 한가로움을 사랑할 줄은 알면서 스스로 한가로울 줄은 모르니 마땅히 ‘나는 남의 한가로움을 모른다’고 말해야 하지.
雖然, 吾於君言, 知當閑其所閑者, 君亦於吾言, 知閑在我而不容愛焉, 則是互有所得也, 不其多乎哉?”
비록 그렇더라도 나는 그대 말에서 마땅히 한가로울 것에 한가로워야 한다는 걸 알았고 그대는 또한 나의 말에서 한가로움이 나에게 있지 ‘애(愛)’를 용납하지 않아야 함을 알았으니 서로 얻은 게 있음이 많지 않은가.”
遂改之曰閑閑, 使金生柱宇書其篇而歸之, 仍賦君所命八詠詩, 以志湖山之勝槩云. 『五峯先生集』 卷之八
마침내 ‘한한(閑閑)’으로 고쳐 김주우(金柱宇)【김주우(金柱宇): 1598(선조 31)∼1644(인조 22). 조선 후기의 문신·서예가.】에게 편액을 쓰도록 하고 돌아왔으며 더하여 익경이 주문한 팔영시(八詠詩)를 지어 호수와 산의 명승지를 기록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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