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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운 - 소대풍요서(昭代風謠序) 본문

산문놀이터/조선

오광운 - 소대풍요서(昭代風謠序)

건방진방랑자 2021. 6. 1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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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나 방외인은 짓지 못할 국풍의 유풍을 지닌 시선집

소대풍요서(昭代風謠序)

 

오광운(吳光運)

 

 

풍은 사람을 빌려 노래가 된다

風之行於天下, 假人以鳴曰謠. 其鳴也以天, 故人之性情, 代之汙隆, 如鏡焉. 一以人而雜之, 則其天汨矣, 又何以鏡焉?

 

풍이 시대에 따라 옮겨가다

然風之行於天下, 變遷不常. 周之時, 風自岐鎬江漢之間, 漢唐之風, 萃於汧渭伊洛, 汴宋之南也, 其風亦南, 吳楚閩越彬彬. 明興, 勃碣之人, 揚聲摛藻, 秀甲於天下, 豈非王者之都, 必占天地風氣之所聚? 而人物之擩染觀感, 又非四方所可比也.

 

주나라의 풍이 다른 나라의 풍보다 우뚝한 이유

然周之風, 皆出於民俗, 故其天全, 漢以後多出於士大夫, 故其天不全. 余讀漢魏詩, 如十九首及其他古樂府無名氏諸篇, 犂然有國風言外之旨. 雖以子建風骨, 邈然不能及, 况餘子乎? 余意其出於閭巷謳謠之自然者, 方叶於風詩, 而一涉思索則失之矣.

 

풍이 우리나라로 와서 중인에게서 꽃피다

我東方與燕都, 同箕尾之分, 世所謂雲漢末派. 明風之自勃碣也, 東方固已首被矣. 今天下皆已侏離, 勃碣之風, 渡江以遷, 亭毒煽鼓於一區文物之邦, 而又求其風之所翕, 則漢京是已.

夫以華山漢水秀美冲和之氣, 開闢以來, 蟠際肹蠁, 不一泄以啓昭代之文化, 而又爲箕尾雲漢之所窮, 搢紳士不能獨當, 而委巷圭竇, 往往鍾靈焉.

 

여항인들이 풍을 지을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

且後世士大夫搰搰然用力於擧業, 尤不能全其天, 外乎此者, 不過遐荒山澤方外孤絶之語, 漠然與玉化不相關, 又烏足以爲風乎?

惟我國閭井之人, 限於國制, 科擧無所累其心, 生於京華, 又無方外孤絶之病, 得以遊閑詩社, 歌詠文化, 大者能追步古作者, 蔚然爲家數, 小者亦能嫋娜成腔調. 要之乎全其天性, 發之天機, 咨嗟詠歎, 不能自已者, 實岐鎬江漢之遺也.

 

풍이 사라진 시대에 풍을 담은 이 시집을 주목하라

有人手蔡希菴所選昭代風謠眎余, 求弁卷之文, 大抵不出於都下里巷之作也. ! 自夫陳觀採貢之法廢, 而風謠之絶於世久矣, 於今始見之, 此乃王化之端也. 烏可以出於匹庶而忽之乎?

天下之風, 自江漢而伊洛, 自伊洛而江左, 自江左而燕碣, 自燕碣而爲東方之漢京. 漢京者卽馬韓百濟據險躍馬之地, 其俗椎武, 其風叱咜, 夫孰知丕變於昭代, 而爲此文雅之俗歌謠之盛乎?

風無定聲, 民無定情, 一與敎化推移, 二南以後, 無復二南之風者, 吾不信也.

一日國家陳詩以觀民風, 赫然思復二南之隆, 則採之必自玆編始, 其所關, 夫豈淺尠也哉? 書此以備樂官之考 藥山漫稿卷之十五

 

 

 

 

 

 

해석

 

풍은 사람을 빌려 노래가 된다

 

風之行於天下, 假人以鳴曰謠.

풍이 천하에 유행하다가 사람을 빌려 울리게 하는 것을 노래[]’라 한다.

 

其鳴也以天,

천진함으로 울기 때문에

 

故人之性情, 代之汙隆, 如鏡焉.

사람의 성정과 시대의 오르내림오융(汙隆): 추함과 융성함, 즉 흥망성쇠를 말한다.이 거울처럼 분명하다.

 

一以人而雜之, 則其天汨矣,

한 번이라도 인위적인 것이 섞이게 되면 천진함이 사라지니

 

又何以鏡焉?

또한 어찌 거울처럼 비추겠는가?

 

 

 

풍이 시대에 따라 옮겨가다

 

然風之行於天下, 變遷不常.

그러나 풍이 천하에 유행함에 변천이 일정하지 않다.

 

周之時, 風自岐鎬江漢之間,

주나라 시기에 풍()은 기산과 호경기호(岐鎬): 기산(岐山)과 호경(鎬京)이란 말로, 주나라의 도읍이었던 지역 이름이다.과 양자강과 한수 사이에서 시작되어

 

漢唐之風, 萃於汧渭伊洛,

한나라와 당나라의 풍은 견수와 위수견위(汧渭) : 견수(汧水)와 위수(渭水). 견수는 위수의 지류(支流)이다. 이 일대가 모두 목축하기에 알맞은 곳이라 한다. 주 효왕이 비자(非子)에게 견·(汧渭) 일대에서 말을 키우도록 하여 크게 번식하니 비자를 진() 땅에 봉하고, ()이란 성씨를 하사하면서 주나라의 속국으로 삼아 이 나라가 발전하여 진()나라가 되었다.와 이수와 낙수이락(伊洛): 이수와 낙수 근방의 지역으로 낙양(洛陽). 동도(東都)를 뜻한다.에서 모아졌고

 

汴宋之南也, 其風亦南,

변송변송(汴宋): 당나라 시기의 지역명칭으로 지금의 개봉(카이펑)이다. 당나라 후기에 국권이 약해지자 지방 행정의 핵심지역이 되었다가 결국 송나라의 수도가 되었다. 이 남쪽으로 가니변송지남야(汴宋之南也): 변송이 남쪽으로 왔다는 내려왔다는 것은 여진족으로 인해 수도를 개봉에서 항주(항저우)로 옮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풍 또한 남으로 가서

 

吳楚閩越彬彬.

오나라와 초나라와 민나라와 월나라민월(閩越): 진한 시대(秦漢時代)에 지금의 복건성(福建省) 지방(地方)에 있던 만족(蠻族)의 나라가 반짝반짝 빛이 났다.

 

明興, 勃碣之人,

명나라가 일어남에 발해와 갈석산발갈(勃碣): 발해와 갈석산(碣石山). 하북(河北)이나 열하(熱河)에 있다고 하는 산이다. 서경』 「우공(禹貢)에 이르기를 오른쪽으로 갈석을 끼고 돌아서 황하로 들어간다.[夾右碣石 入于河]” 하였다.의 사람이

 

揚聲摛藻, 秀甲於天下,

소리를 내며 문장을 지은 것이 천하에 빼어났으니

 

豈非王者之都, 必占天地風氣之所聚?

아마도 임금의 수도가 반드시 천지 풍기가 모아진 것을 점유해서 그런 게 아니겠는가?

 

而人物之擩染觀感, 又非四方所可比也.

사람과 사물의 물들고유염(擩染): 물이 들다는 뜻으로, 어떤 영향을 받아서 그와 같게 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보고 느낀 것이 또한 사방(수도 외의 지방)에 비교할 게 아니다.

 

 

 

주나라의 풍이 다른 나라의 풍보다 우뚝한 이유

 

然周之風, 皆出於民俗, 故其天全,

그러나 주나라의 풍()은 모두 민간의 풍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천성이 온전했지만

 

漢以後多出於士大夫, 故其天不全.

한나라 이후로는 대부분이 사대부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천성이 온전치 못했다.

 

余讀漢魏詩, 如十九首及其他古樂府無名氏諸篇,

내가 한나라와 위나라의 시, 예를 들면 고시십구수십구수(十九首):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이다.나 기타 고악부 무명씨의 여러 편을 읽어보았는데

 

犂然有國風言外之旨.

분명하게 국풍의 말 밖의 뜻이 있었다.

 

雖以子建風骨, 邈然不能及,

비록 자건자건(子建): 조비의 아우인 조식(曹植)의 자이다. 중국 삼국 시대 위 무제(魏武帝)의 세째 아들이자 문제(文帝)의 아우로 그는 글을 잘하여 무제에게는 사랑을 받았으나 문제에게는 시기를 당한 나머지 처음엔 동아왕(東阿王)에 봉해졌다가 얼마 후 진왕(陳王)으로 봉해진 이후로는 벼슬에 등용될 길이 없자, 병이 나서 죽고 말았다. 삼국지(三國志)19.의 풍골로도 까마득하여 미칠 수 없는데

 

况餘子乎?

나머지 사람들은 오죽할까?

 

余意其出於閭巷謳謠之自然者, 方叶於風詩,

내가 생각하기론 민간 마을 노래에서 나와 자연스러운 것이 곧 국풍의 시에 합치되지만

 

而一涉思索則失之矣.

한 번 사색을 하게 되면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려서 그런 것이리라.

 

 

 

풍이 우리나라로 와서 중인에게서 꽃피다

 

我東方與燕都, 同箕尾之分,

우리나라는 연경과 함께 기수와 미수기미(箕尾): 하늘의 적도를 따라 남북에 있는 별들을 28개로 구획으로 구분한 별자리 중 기수(箕宿) 미수(尾宿)를 나타낸다.의 분야(같은 지역에 해당)로 동일하니

 

世所謂雲漢末派.

세상에서 말했던 은하수의 끝자락운한말파(雲漢末派): 운한(雲漢)은 은하수 말파(末派)는 끝자락이다.이란 것이다.

 

明風之自勃碣也, 東方固已首被矣.

명나라 풍이 발해와 갈석산으로부터 나왔으니 우리나라는 참으로 이미 먼저 입게 되었다.

 

今天下皆已侏離, 勃碣之風,

이미 천하는 모두 이미 오랑캐의 땅으로 발해와 갈석산의 풍은

 

渡江以遷, 亭毒煽鼓於一區文物之邦,

압록강을 건너 옮겨 한 구역인 문물의 나라에서 길러지고정독(亭毒): 길러지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亭之毒之라 하였는데, 그 주에 ()은 그 형()을 품()하는 것이요, ()은 그 질()을 이루는 뜻으로 화육(化育)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북돋워졌고

 

而又求其風之所翕, 則漢京是已.

또한 풍이 화합됨을 구하는 것이라면 서울이 바로 그곳일 뿐이다.

 

夫以華山漢水秀美冲和之氣, 開闢以來,

대체로 북한산화산(華山): 북한산을 가리킨다.과 한강의 빼어나 아름답고 넉넉한 기운으로 개벽한 이래로

 

蟠際肹蠁, 不一泄以啓昭代之文化,

성대함으로[蟠天際地]반천제지(蟠天際地): 하늘을 따라 땅에 이르러 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이다. 또한 기세가 드넓고 큼을 형용한 말이기도 하다[謂從天到地無所不在. 亦用以形容氣勢博大] 이어져서힐향(肹蠁): 울림이 사방으로 퍼짐을 나타낸다는 뜻으로 성하게 일어나는 모양을 말한다. 한 번도 태평소대(昭代): 태평 성대. 나라를 밝게 다스리어 태평한 세상.의 문화를 엶에 샌 적이 없었지만

 

而又爲箕尾雲漢之所窮, 搢紳士不能獨當,

또한 기수와 미수, 은하수의 끝자락인 까닭에 사대부들이 홀로 감당할 수 없어

 

而委巷圭竇, 往往鍾靈焉.

민간이나 한미한 집안규두(圭竇): [] 모양으로 된 문 옆의 작은 문을 말한 것으로 가난하여 보잘것없는 집을 뜻한다.에서 이따금 영기를 모았다.

 

 

 

여항인들이 풍을 지을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

 

且後世士大夫搰搰然用力於擧業, 尤不能全其天,

또한 후세의 사대부들은 열렬하게 과거 공부에만 힘을 써 더욱 천성을 온전히 하질 못했고

 

外乎此者, 不過遐荒山澤方外孤絶之語,

여기에서 벗어난 이도 아득하고 황량한 산과 연못, 재야의 외로운 말에 불과하여

 

漠然與玉化不相關, 又烏足以爲風乎?

막연히 임금의 교화와 서로 상관이 없으니 또한 어찌 풍을 지을 수 있으리오?

 

惟我國閭井之人,

오직 우리나라의 여항 사람들은

 

限於國制, 科擧無所累其心,

나라의 제도에 제한되어(중인신분이기에) 과거시험으로 마음에 얽매임도 없고

 

生於京華, 又無方外孤絶之病,

서울에서 살면서 또한 방외의 고절한 병폐도 없어서

 

得以遊閑詩社, 歌詠文化,

시 모임으로 한가로이 노닐며 문화를 읊조릴 수 있었으니

 

大者能追步古作者, 蔚然爲家數,

크게 된 사람은 옛 작품을 추숭하며 본받아 우뚝하게 일가가수(家數): 일가를 이룬 기술이나 학예, 또는 학예와 기술로 일가를 이룬 사람 / 종주(宗主)로 떠받들어지는 대가(大家)를 말한다.를 이룰 만하고

 

小者亦能嫋娜成腔調.

못한 사람은 또한 여리여리하여뇨나(嫋娜): 곱고 아리땁다. 곡조를 이룰 만하다.

 

要之乎全其天性, 發之天機,

요컨대 천성을 온전히 함으로 천기에서 발설되어

 

咨嗟詠歎, 不能自已者,

탄식하며 영탄함에 스스로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니

 

實岐鎬江漢之遺也.

실제로 기산과 호경과 양자강과 한수의 유산이다.

 

 

 

풍이 사라진 시대에 풍을 담은 이 시집을 주목하라

 

有人手蔡希菴所選昭代風謠眎余, 求弁卷之文,

어떤 사람이 희암 채팽윤채희암(蔡希菴): 채팽윤(蔡彭胤)을 가리키며 소대풍요(昭代風謠)를 편집한 사람이다.이 선집한 소대풍요를 가져와 나에게 보여주며 서문변권지문(弁卷之文): 서문(序文)을 가리킨다을 구하니

 

大抵不出於都下里巷之作也.

대체로 서울 여항의 작품을 벗어나지 않는다.

 

! 自夫陳觀採貢之法廢,

! 대체로 시를 진설(陳設)하여 민풍(民風)을 보고 채집하여 바치도록채공(採貢): 채집하여 공물로 바침 한 법이 없어지자

 

而風謠之絶於世久矣,

풍요가 세상에서 끊긴 지 오래되었는데

 

於今始見之, 此乃王化之端也.

이제 비로소 이 책을 보게 되니 이것은 곧 임금 교화의 단서다.

 

烏可以出於匹庶而忽之乎?

어찌 백성과 평민에게서 나왔다고 하여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天下之風, 自江漢而伊洛,

천하의 풍은 강한으로부터 이락으로

 

伊洛而江左, 自江左而燕碣,

이락으로부터 강좌로 강좌로부터 연갈로

 

自燕碣而爲東方之漢京.

연갈로부터 조선 서울의 풍이 되었다.

 

漢京者卽馬韓百濟據險躍馬之地,

서울이란 곧 마한 백제가 험지를 점거하고 말 달리던 땅으로

 

其俗椎武, 其風叱咜,

그 풍속은 몽둥이와 무기를 숭상했고 풍은 꾸짖는 말투였지만

 

夫孰知丕變於昭代,

대체로 누가 태평성대에 크게 변해

 

而爲此文雅之俗歌謠之盛乎?

문아한 풍속과 가요의 성대함이 될 줄 알았으리오?

 

風無定聲, 民無定情,

풍은 정해진 소리가 없고 백성은 정해진 정이 없어

 

一與敎化推移,

일제히 교화와 함께 움직이니

 

二南以後, 無復二南之風者,

시경이남(二南):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가리키며 시경 풍()의 첫 번째 편이기도 하다. 이후로 시경의 풍을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吾不信也.

나는 믿지 않는다.

 

一日國家陳詩以觀民風, 赫然思復二南之隆,

어느 날 국가의 시를 진설해 민풍을 보고서 환하게 시경의 융성함을 회복하길 생각한다면

 

則採之必自玆編始,

그것 채집하길 반드시 이 책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니

 

其所關, 夫豈淺尠也哉?

관계된 것이 어찌도 얇고도 적겠는가?

 

書此以備樂官之考 藥山漫稿卷之十五

이것을 써서 악관의 상고함에 대비하고자 한다.

 

 

인용

문학통사

한국한시사

風謠續選序: 이가환 / 홍양호

12139~40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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