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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한글역주, 제9장 사마천의 「여불위열전」을 비판함 - 청대 필원의 교정본으로 재발굴된 『여씨춘추』 본문

고전/효경

효경한글역주, 제9장 사마천의 「여불위열전」을 비판함 - 청대 필원의 교정본으로 재발굴된 『여씨춘추』

건방진방랑자 2023. 4. 1.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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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장 사마천의 여불위열전을 비판함

 

 

청대 필원(畢元)의 교정본으로 재발굴된 여씨춘추(呂氏春秋)

 

 

이제 우리가 감행해야 할 작업은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성격을 밝히는 것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는 누가 왜 썼는가?

 

중국은 선진고경 중에서 여씨춘추(呂氏春秋)처럼 저작연대가 확실하고유진팔년(維秦八年)’의 해석을 놓고 BC 239년이냐, BC 241년이야 하는 정도의 논란만 있을 뿐, 또 직접적인 집필자는 아니더라도 그 책을 편찬하게 만든 인물의 역사성이 확실한 서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책이 우리의 의식에서 소원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이 서물이 방치된 채로 있었으며 청나라 때의 고증학자가 손을 대기까지는 사람들이 거의 읽지 않았으며 따라서 별로 인용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필원(畢沅 삐 위앤, Bi Yuan, 1730~1797)의 교정본, 여씨춘추신교정(呂氏春秋新校正)(건륭 54, 1789)이야말로 여씨춘추(呂氏春秋)재발굴의 효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 그렇게 냉대를 받았을까? 그 냉대에 관한 원인을 추구하다 보면 우리는 매우 단순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책의 편찬사업을 주도한 여불위(呂不韋, ?~BC 235)란 인물에 대한 혐오감이나 천시에서 우리는 그 일차적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여불위(呂不韋)라는 인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대부분 사마천 사기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에 의존하고 있다. 사마천은 여불위(呂不韋)라는 인간의 생애와 행적을 디테일까지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우리는 그 붓길의 문학적 아름다움에 압도당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상상력의 자유를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사마천의 기술은 한() 무제(武帝) 때의 사건이며, 당시는 이미 진나라에 대한 가치관이 매우 부정적이었다. 따라서 진제국 창업의 적통을 세우는 어떠한 위업을 평가하는 사마천의 붓길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100여년 밖에는 되지 않은 사건이라서 사마천은 매우 풍부한 정보를 동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만큼 사마천의 너무도 인간적이고 너무도 드라마틱한 문학적 상상력은 정교한 날조의 날개를 달 수 있었다.

 

 

 

 

인용

목차

원문 / 呂氏春秋』 「孝行/ 五倫行實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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