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진나라 시대
1. 여불위(呂不韋)의 통일제국을 위한 큰 그림
① 여불위(呂不韋)와 자초(子楚)
1. 전국 말기의 대상인으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하여 재산을 축적한 대부호임.
2. 어느 날 조나라 수도 한단에 갔다가 인질로 와 있는 진나라 왕자로 진소왕의 둘째 아들 안국군(安國君)의 가운데 아들로 비중 없는 인물이었던 자초(子楚)를 만나게 되었고, 사귀어 둠.
② 여불위의 큰 그림
1. 자초를 등극시키기 위해 빈객과 사귈 수 있는 돈을 줬고 안국군이 사랑하는 화양부인(華陽夫人)의 입김을 빌리기로 함.
2. 화양부인은 그의 언니 말을 잘 따른다는 걸 알고 제물을 주어 자초에 대해 좋은 평을 얘기하도록 언니를 구워삶음.
3. 언니는 자식이 없는 동생 화양부인에게 자초를 후계자로 삼아야 버림 받지 않는다고 설득했고, 그대로 실시됨.
③ 통일제국의 완성
1. 화양부인이 안국군에게 가서 자초를 후계자로 삼길 요구하자 받아들여졌고, 여불위를 통해 자초(子楚)에게 후한 예물을 보냄.
2. 여불위가 총애하는 미녀를 자초가 보고 반하여 달라고 하자 임신 중인 사실을 숨기고 줌. 훗날 여기서 태어난 이가 정(政)이며, 그가 곧 진시왕이 됨.
2. 자초(子楚)의 즉위에서 세자 정(政)의 등극까지
① 자초의 즉위
1. 6년 후 진소왕(秦昭王)이 죽고 안국군이 즉위하여 효문왕(孝文王)이 되었고, 그가 즉위 3일 만에 죽자 자초가 즉위하여 장양왕(莊襄王)이 됨.
2. 장양왕은 여불위를 승상으로 삼고 문신후(文信候)로 봉했으며 10만 호를 식읍으로 줌.
3. 장양왕은 즉위 3년 만에 죽고 정(政)이 계승했으나 13살로 어렸기에, 모친 태후와 여불위가 섭정함.
② 여불위의 섭정
1. 진나라의 국력 신장 및 자신 가문의 번창을 위해 유능한 빈객을 후대했고, 『여씨춘추(呂氏春秋)』를 편찬함.
2. 정(政)의 생모와 계속해서 정을 통하다 발각되어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한 그는 그녀와의 관계를 끊을 만한 대책을 생각함.
3. 노애(嫪毐)를 들이게 하여 태후와 정을 통하게 했고 임신을 하게 되자 ‘태후의 거처를 옮겨야 한다’는 점괘를 내게하여 정(政)의 시야에서 벗어나게 함.
③ 진시황의 통치
1. 22살이 되었기에 직접 정치를 하게 됐고 태후의 불미한 소문을 뿌리 채 뽑기 위해 조사하여 노애(嫪毐)를 극형에 처함.
2. 여불위와 태후의 관계를 알게 되어 여불위를 파직시켜 촉(蜀) 땅으로 귀양 보내자, 신세를 비관한 여불위는 음독자살함.
3. 진나라의 천하대일통(天下大一統)
① 통일을 위한 초석
1. 2백 여년 동안의 전쟁으로 진나라는 세력이 강해진 반면, 여섯 나라는 국력이 약화됨.
2. 이사(李斯)ㆍ정국(鄭國)ㆍ위요(尉邀)와 같은 관리 등을 등용하여 법가 정책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군사적으로도 힘을 키움.
3. 합종책(合縱策)을 깨기 위해 내부부패를 이용하여 군주와 신하 사이를 이간질함.
4. 한(韓) 기원전 230년에, 조(趙)가 기원전 228년에, 위(魏)가 기원전 225년에, 연(燕)이 차례로 멸망됨.
② 초나라와의 마지막 전투
1. 초나라와의 전투에 젊은 장군 이신(李信)은 20만이면 충분하다 했고, 왕전(王翦)은 60만명이 필요하다고 하여 왕은 이신을 보냈다가 대패함.
2. 왕전에게 사과하고 왕전을 보내자 초군이 공격해와서 버티고 있다가 초가 동쪽으로 움직일 때 공격하여 초나라를 멸망시킴.
③ 천하대일통(天下大一統)
1. 제나라에겐 땅을 주겠단 회유책으로 쉽게 꼬드겼지만 약속은 지키지 않았고 제나라 왕을 산속에서 굶어 죽게 만듦.
2. 정(政)은 스스로를 시황제(始皇帝)라 칭하였음. 그의 나이 39세였음.
4. 진나라의 통일 직후 체제정비
① 통일되기 전까지의 상황
1. 진효공(秦孝公)은 상앙(商央)을 등용해 법질서의 개혁을 단행하고 군주제를 강화했으며 법질서를 확립시킴.
2. 전국시대 후기에 1/3의 영토를 차지했으나, 경제력은 60%에 달할 정도로 천하통일의 기초를 다짐.
3. 진시황은 법가의 인물을 등용해 국정을 보좌하게 하고 6국을 멸망시키는 전쟁을 일으켜 17년 만에 통일을 이룸.
② 통일 후의 기반 마련
1. 삼황오제(三皇五帝)의 공을 한 몸에 겸했다는 뜻으로 ‘황제’란 호칭을 처음으로 쓰게 됨.
2. 왕관 등이 왕자를 지방에 봉하는 통치방법을 주장했으나, 이사(李斯)가 주왕조를 예로 들며 중앙집권체제를 주장하자, 이사의 말을 받아들여 36개 군(群)과 군 밑에 현(縣)을 두어 직접 통치하는 군현제(郡縣制)를 실시함.
3. 중앙기구로 각 방면의 정무를 담당하는 구경(九卿)을 두고, 그 위에 승상(丞相)ㆍ태위(太尉)ㆍ어사대부(御史大夫)의 삼공(三公)을 두어 집권체제 완성함.
4. 수도인 함양(咸陽)을 중심으로 방사선 모양으로 도로를 만들고 문자ㆍ화폐ㆍ도량형 및 제도와 법률을 통일시킴.
5. 분서갱유(焚書坑儒)와 이사
① 승상(丞相) 이사(李斯)의 사상 통일을 위한 분서갱유(焚書坑儒)
1. 진(秦)의 서적 이외 서적은 모두 태워버려야 하며, 옛 서적을 숨기고 내놓지 않으면 도형(徒刑)에 처함.
2. 옛일을 돌이켜 지금의 정치를 비방하는 자는 일족을 멸함.
② 시행의 결과
1. 실용서적 외에 모두 불살라 버리자 유생들이 불만을 품고 저항했으며, 이런 유생 460명을 생매장시킴.
2. 반발을 일으켜 통치 기반을 약화시켰으며, 문화역량을 크게 위축시킴.
6. 진나라의 만리장성, 진시황릉, 아방궁
① 진시황릉과 아방궁의 무리한 건설
1. 진시황은 13세에 즉위했을 때부터 여산 기슭에 자신에 능묘를 만들기 시작했고 50세가 될 무렵에 완성됨.
2.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이 공사에만 무려 75만명의 죄수가 동원되었다고 함.
3. 역대로 내려온 함양궁(咸陽宮)은 아무래도 위엄이 서지 않는다 하여 대규모 궁전을 새로 짓기로 했으나 완성되기 전에 진나라는 멸망함.
② 만리장성의 축조
1. 전국시대 여러 제후나라에서 쌓았던 장성을 보강하여 쌓은 것으로 가혹한 부역 수탈의 전형물임.
2. 흉노세력이 강화되어 국경을 위협할 염려가 있어 장군 몽염(夢恬)에게 몰아내고 장성을 쌓도록 함.
3. 이런 이유로 대공사를 벌였고 장성 부근 지방에 군현을 두고 백성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군용도로를 닦는 등 방어체계를 정비함.
③ 결과
1. 막대한 노동력과 부역을 요구함.
2. 이들 공사 외에도 전국의 도로공사와 잡역 등을 합치면 무려 3백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무상노역에 동원됨.
7. 진시황의 죽음과 유서조작으로 왕이 된 호해
① 진시황의 죽음과 유서
1. 진시황은 회계를 거쳐 낭야로 향하는 순행길 도중 병이 들어 위독하게 되어 장남 부소에게 줄 유서를 씀.
2. 유서의 내용은 ‘군사는 몽염에게 맡기고 나의 관을 함양에서 장사 지내라’라는 것이었음.
3. 이미 진시황은 죽고 유서와 국새는 족(趙高)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발표하지 않고 함양으로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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