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음악의 달인 공자가 말한 음악의 흐름
3-23. 공자께서 노나라의 악관인 태사에게 음악에 관하여 말씀하시었다. 이르시기를: “악곡의 전체 구성은 알만한 것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에는 모든 음색이 합하여진 듯 타악기가 주선을 이룬다. 다음에 풀어지면서 순결한 현악기들의 소리가 이어진다. 그러면서 점점 밝아지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연음형식으로 서로 꼬여 나간다. 그러면서 최종의 완성으로 치닫게 된다.” 3-23. 子語魯大師樂. 曰: “樂其可知也: 始作, 翕如也; 從之, 純如也, 皦如也, 繹如也, 以成.” |
어떠한 경우에도 이러한 장의 번역은 어렵다. 그 내용이 뜬구름 잡는 것 같아 어떻게 표현하든 그것은 자의적 요소를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공자는 음악의 명인이요 달인이었다. 여기 실린 이야기는 같은 음악의 대가이며, 노(魯)나라의 최고 악관인 태사와 음악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은 대화의 한 장면이다. 음악은 공문(孔門)의 가장 중요한 배움의 주제였다. 공문학단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요즈음의 째즈아카데미에서 열심히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의 분위기를 연상케한다. 다시 말해서 이장은 공자가 아마추어들에게 한 말이 아니요, 달인들끼리 주고받은 매우 전문적인 내용의 음악평론인 것이다. 태사는 요즈음 국립국악원으로 치면 집박하는 사람인 악사장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조선조에서는 전악(典樂)이라 불렀다. 그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해당되는 사람으로서 그 연주되는 음악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상식적인 의미론의 맥락에서는 도저히 풀릴 수 없는 언어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악(樂)’이란 음이 모여 하나의 체계적 구성을 이룬 완벽한 악곡을 말하는 것이며, 음악 일반을 추상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악(樂)은 노래가 아니라 오늘날의 심포니에 해당되는 것으로 오케스트레이션 기악곡을 지칭한 것이다.
동양의 고대 심포니는 멜로디 간의 조화가 아니다. 즉 한 시점에 있어서의 다른 핏치를 가지는 음들의 하모니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개 동일한 멜로디에 대한 다른 소재의 악기들이 내는 음색의 조화가 그 주선을 이루는 것이다. 즉 폴리포니(polyphony)가 아닌 모노포니(monophony)의 음악이며, 또 모노포니들 간의 중첩되는 어떤 리듬을 중시하는 음악이다. 따라서 우리의 아악은 기하학적 배음관계의 하모니 중심이 아닌 멜로디 중심의 음악이다. 다시 말해서 음의 공간성보다 시간성이 철저히 중시되는 음악이다. 따라서 여기 공자의 음 악평론은 ‘시(始)’로 시작되어 ‘성(成)’으로 끝나고 있는데 이것은 철저히 멜로디 의 시간성에 관한 담론이다.
공자시대의 오케스트라도 대강 관악기와 현악기, 그리고 타악기가 편성되어 있었다. ‘시작흡여야(始作翕如也)’라는 뜻은 심포니가 시작될 때, 타악기가 주종 을 이룬다는 것이다. ‘흡(翕)’이라는 글자는 새의 날개가 파닥거리는 모습을 연상시키는데 이것은 최초로(시始) 음악이 ‘작(作)’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타악기가 일시에 꽉 울리면서 우렁차게 시작하는 그런 모습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이때의 타악기는 편종ㆍ편경 같은 것이 주종을 이룰 것이나 북과 같은 악기도 포함될 것이다.
다음의 ‘종지(從之)’는 ‘시작(始作)’에 대하여 연이어 끌어나가는 모습이다. 작(作)에 대하여 종(從, 따른다)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종(從)은 종(縱)과도 통하며 그것은 좀 느슨하게 이완된다는 뜻도 내포한다.
‘여(純如)’는 글씨에서 볼 수 있듯이 사(絲)의 음색이 주종을 이루는 것이다. 즉 현악기의 순수한 음색들이 타악기의 흡(翕)을 뒤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교여(皦如)’는 관악기와 관련된 것으로 밝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음색이 밝아지는 것이다. 다음에 ‘역여(繹如)’는 모든 것이 착종되어 가면서 실이 꼬여나가듯이 지익지익 끌리는 모습이다. 이때 부분적으로 폴리포니(polyphony)가 나타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아악들이 느리게 끌리는 가락이 많은 것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러면서 최종 완성을 향해 치닫게 되는 것이다[以成].
나는 이 장을 가장 실감나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세계에서 오직 한국인들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아악이나 향악이야말로 공자가 목도한 음악의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장의 공자의 음악해설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관악합주곡인 「수제천(壽齊天)」을 연상한다. 주선율을 연주하는 피리가 한 장단을 끝내면 피리 이외의 악기군이 다음 장단의 시작 전까지를 이어가는 연음형식으로 되어 있어 마치 두 개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듯한 효과를 내는 수제천 나는 천하제일의 악을 곡이라고 생각한다. 수제천」을 잘 들어보면 흡여(翕如) → 순여(純如) → 교여(皦如) → 역여(繹如)의 구체적 의미를 쉽사리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 행의 「수제천(壽齊天)」은 『대악후보(大樂後譜)』와 같은 고악보에 실린 「정읍(井邑)」【「수제천(壽齊天)」의 원형】과는 매우 다른 곡이며 조선후기로부터 일제시대 이왕직아악부를 거치면서 많은 요소들이 혼합되고 장식음이 가미된 곡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양보할 수 없다.
‘어(語)’는 거성이다. ‘大’는 ‘태(泰)’라고 발음한다. ‘종(從)’은 ‘종(縱)’이라고 발음한다. ○ ‘어(語)’는 고(告)하는 것이다. ‘태사(大師)’는 악(樂)의 이름이다. 당시 이 악곡이 오랫동안 연주되지 않아 결함이 많았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가르쳐주신 것이다. ‘흡(翕)’이란 합하는 것이다. ‘종(從)’이란 풀어놓는 것이다. ‘순(純)’이란 여러 음색이 화합하는 것이다. ‘교(皦)’는 밝은 것이다. ‘역(繹)’은 서로 이어져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성(成)’은 악곡이 일단락을 맺는 것이다.
공자가 노나라의 태사에게 일방적으로 음악을 가르쳤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주희에 게는 확실히 공자를 일방적으로 높이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노나라의 태사보다는 공자가 폭넓은 다양한 음악의 전승을 보지하였을 수도 있다. 태사는 지정된 전통음악을 지켜왔고, 공자는 사라져가는 다양한 음악전통을 수집해온 사람이었다.
○ 사현도가 말하였다: “오음(五音)과 육률(六律)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하나의 악곡이라 말하기에 부족한다. ‘흡여(翕如)’는 그 합하여짐을 말한 것이다. 오음이 화합하면, 청음과 탁음과 높은 음과 낮은 음이 다섯가지맛이 섞여 조화로운 맛을 내듯 화합하기 때문에 ‘순여(純如)’라고 말한 것이다. 합하여 조화를 이루게 되면 배음의 무리들을 서로 빼앗으려는 성향이 없어지기 때문에 ‘교여(皦如)’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궁은 스스로 궁이기만을 고집하고, 상은 스스로 상이기만을 고집하겠는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서로 이어지니 마치 구슬을 꿴 것처럼 되어야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역여야(繹如也)’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로써 악곡은 완성되는 것이다.”
○ 謝氏曰: “五音六律不具, 不足以爲樂. 翕如, 言其合也. 五音合矣, 淸濁高下, 如五味之相濟而後和, 故曰純如. 合而和矣, 欲其無相奪倫, 故曰皦如. 然豈宮自宮而商自商乎? 不相反而相連, 如貫珠可也, 故曰繹如也, 以成.”
송대의 도학자들은 오늘 우리만큼 음악에 관하여 충분한 이해를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 주희는 고금(古琴)을 연주할 줄 알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도학적 관념이 너무 강하게 그의 예술적 감성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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