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목탁처럼 공자는 곧 쓰일 것이다
3-24. 의(儀) 땅의 국경수비대장이 공자를 뵙기를 청하여 말하였다: “군자께서 이 땅에 이르시면 내 일찍 아니 뵈온 적이 없었다.” 3-24. 儀封人請見. 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공자의 시종인들이 뵙게 해주었다. 그가 뵙고 나와서 말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선생께서 지위를 얻지 못하고 유랑하심을 걱정하는가? 천하에 도가 없은 지 오래되었다. 하늘은 장차 선생님을 목탁으로 삼으실 것이다.” 從者見之. 出曰: “二三子, 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
인간세란 본시 사람들의 네트워크이다. 살다 보면 여러 종류의 인간을 만나게 된다. 아주 기대되는 상층의 지식세계에서 오히려 빈곤한 인간상의 군중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아주 편벽한 외지에서 뜻밖의 위대한 인물을 만나기도 한다. 여기 의(儀)는 지명인데 현재의 위치를 확인할 길은 없다. 소문에 의하면 지금의 개봉(開封) 시내 어느 곳이라는데 그것도 믿을 말이 못 된다. 정현은 의(儀)는 위읍(衛邑)이라 주를 달았는데, 하남성(河南省) 북부의 위나라의 국경을 이루는 어느 지역이었을 것이다.
봉인(封人)이란 관문을 지키는 자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김포공항 출입국관리소 소장쯤 되는 사람이다. 아마도 저 조령, 문경새재의 관문이 있는 곳에 주둔하고 있었던 수비대의 대장격의 지방관리였을 것이다.
공자는 14년 동안 유랑생활을 했다. 이 기나긴 유랑생활기간에 위나라 국경을 출입한 것이 다섯 번이나 된다. 이 관문의 은자적 수비대장과 만나게 된 것은 아마도 마지막에 다시 위나라로 돌아올 때쯤이었을 것이다. 의(儀) 땅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관문의 수비대장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이곳을 통과한 군자치고 제가 안 뵈온 분이 없습니다. 한번 뵙기를 청합니다. 꼭 우리나라 지방의 소도시를 주름잡는 신문기자님의 말투를 연상케 한다. 즉 여기를 지나치는 모든 유명인은 자기가 인터뷰 안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그의 간곡한 청을 거절치 않았다.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이 봉인(封人)은 꽤 오래 공자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인터뷰장소로부터 혼자 나왔다. 궁금했던 제자들이 그 봉인(封人)을 에워쌌다. 그때 이 봉인(封人)은, 제자들을 훈시하는 시골선생조로 일장 연설을 했다.
‘이삼자(二三子)’란 문자 그대로 ‘두서 놈’이라는 뜻인데, ‘너희들’이라는 좀 낮추어 부르는 친근한 말이다. ‘상(喪)’이란 공자가 위(位)를 얻지 못하고 여기 저기 유랑하는 애처로운 모습을 형용한다. 어찌하여 제자들 그대들은 공자의 잃음을 걱정하는가? 이놈의 인간세상[天下]에 도가 없어진 지가 오래 되었도다! 여기 ‘무도야구의(無道也久矣)’라는 표현은 무도함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도를 밝힐 구세의 인물이 나타날 때가 되었다는 메시아적 선포의 의미를 반어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이어 말한다. 하늘이 그대들의 선생님을 곧 인류의 목탁으로 삼으실 것이다. 여기서 하늘[天]이란, 인격적이고 초월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동양의 초월은 좁은 인간의 판단을 넘어선다는 의미의 내재적 초월이다.
그리고 목탁(木鐸)은 불교사찰 대웅전의 목탁이 아니다. 우리나라 고대무덤에서도 잘 출토되는 것이며 보통 동탁(銅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옛날의 제사장이 들고 있었던 지팡이 꼭대기에 씌워지는 동제나 철제의 장식인데 그 속에 방울이 들어있다. 쇠방울이 들어 있으면 금탁(金鐸)이라 하고, 나무방울이 들어 있으면 목탁(木鐸)이라 하는 것이다. 금탁은 무사(武事)에 쓰고, 목탁은 문사(文事)에 쓴다. 공자를 목탁으로 삼는다는 뜻은, 신탁의 대행자가 지팡이 방울을 울려 신의 소리를 알리듯이, 공자가 문화의 소리를 이 세상에 펴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그 예언은 적중했다.
어떤 주석은 하늘이 공자로 하여금 실위(失位)케 하여 천하(天下)를 주류(周流)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그 가르침을 널리 펴게 만들고 있다는 역설적 예언으로 풀기도 한다.
위(衛)나라는 은주혁명 후 무왕이 주(紂)의 아들인 무경녹보(武庚祿父)를 봉한 곳이다. 무왕은 무경을 후대하고, 은나라 조상에 대한 제사를 받들게 하여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무왕(武王)은 자기 아우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으로 하여금 무경녹보를 보좌케 하고 은나라 유민 을 안무(安撫)토록 하였다. 그런데 관숙ㆍ채숙이 주공에게 대립각을 세워 무경과 더불어 난을 일으켰다. 주공은 무경의 난을 평정 한 뒤, 어린 동생 강숙(康叔)을 이곳에 봉하였다. 하면서 강숙에게 은나라 흥망의 까닭을 잘 살피어 그 백성들을 잘 보살펴 주라고 당부하였다. 그 당부 내용이 현재 『상서(尙書)』 「강고(康誥)」, 「주고(酒誥)」, 「자재(梓材)」에 남아있다. 그러니까 위나라는 은나라의 적통을 이은 곳이며 중원의 중심지에 있어 문화 수준이 높았다. 이 수비대장은 아마도 이러한 높은 토착문화를 계승한 은나라의 후예로서 공자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던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국내외 전란의 소음을 피해 작은 변경에서 세 상을 관망하고 살았던 은자(隱者)일 수도 있다.
‘請見’과 ‘見之’에 나오는 두 개의 ‘見’은 모두 현편(賢遍) 반이다. ‘종(從)’과 ‘상(喪)’은 모두 거성이다. ○ ‘의(儀)’는 위(衛)나라 읍(邑)이다. ‘봉인(封人)’은 국경을 관장하는 관원이다. 대저 어질면서도 낮은 벼슬자리에 숨어 사는 사람일 것이다. 군자는 당대의 현자(賢者)들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다. 이곳에 현자들이 당도하면 자기가 다 뵈올 수 있었다는 것은 평소에 현자들에게 거절당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말 하여 스스로 통하기를 구한 것이다.
請見, 見之之見, 賢遍反. 從, 喪, 皆去聲. ○ 儀, 衛邑. 封人, 掌封疆之官, 蓋賢而隱於下位者也. 君子, 謂當時賢者. 至此皆得見之, 自言其平日不見絶於賢者, 而求以自通也.
‘현지(見之)’는 사자(使者)를 통하여 알현의 기회를 얻는 것을 말한다. ‘상(喪)’이란 벼슬자리를 잃고 나라를 떠나는 것을 말한다. 『예기』에, ‘벼슬을 잃으면 빨리 가난해지려 한다[喪欲速貧]’이라고 한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용례이다. ‘목탁(木鐸)’은 껍데기는 쇠이고 속의 혀[舌]는 나무로 만든 것이니, 정교(政敎)를 베풀 때에 흔들어서 대중에게 경각심을 주는 것을 말한다. 그 봉인이 말한 내용은 이와 같다: ‘어지러움이 극에 달하면 마땅히 다시 다스려지는 때가 오게 마련이니, 하늘은 반드시 다시 부자로 하여금 지위를 얻어 교화를 베풀게 하며, 오랫동안 그 지위를 잃지 않게 할 것이다.’ 일개 봉인 이 부자를 한 번 뵙고서 대뜸 이와 같이 말한다는 것은 그가 뵙고 느끼는 사이에 얻는 것이 심오하다는 것이다.
見之, 謂通使得見. 喪, 謂失位去國, 『禮』曰“喪欲速貧”是也. 木鐸, 金口木舌, 施政敎時所振, 以警衆者也. 言亂極當治, 天必將使夫子得位設敎, 不久失位也. 封人一見夫子而遽以是稱之, 其所得於觀感之間者深矣.
어떤 이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목탁은 본시 무슨 때가 있을 때면 사람들이 들고 흔들면서 길을 따라가는 습속에 쓰였던 바, 하늘이 부자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지위를 잃게 하여 사방으로 주류(周流)케 하고 그 가르침을 펴게 만든 것은, 마치 목탁이 길을 따라 가는 것과도 같다.”
或曰: “木鐸所以徇于道路, 言天使夫子失位, 周流四方以行其敎, 如木鐸之徇于道路也.”
희주 속에 ‘所以徇于道路’라는 표현은 『서경』 하서 「윤정(胤征)」에 그 용례가 나온다. 목탁을 흔들고 길을 따라가면서 법을 선포하거나 군령을 포고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 보면 목탁을 흔들며 길 따라 다니며 지방의 민요를 채집하는 풍속도 그려져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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