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소악(韶樂)과 무악(武樂)에 대한 공자의 평가
3-25. 공자께서 소악을 평하시어, “지극히 아름답고 또한 지극히 좋다” 하셨으며, 무악을 평하시어, “지극히 아름답지만 지극히 좋지는 못하다” 하시었다. 3-25. 子謂韶,“盡美矣, 又盡善也.” 謂武,“盡美矣, 未盡善也”. |
소(韶)란 순임금 자신이 지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순임금 시대 에 지어진 대표적 악곡이다. 무(武)란 무력으로 은나라를 정벌하고 혁명으로 주 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의 시대에 만들어진 악곡이다. 소악은 천하를 선양받은 성군 순임금의 평화로운 시대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멜로디의 음악일 것이며, 무악은 무력혁명의 열기와 새로운 시작과 건설을 의미하는 의욕을 담은 매우 진보적인 음악일 것이다.
여기 미(美)와 선(善)의 개념적 의미가 우리에게 충분히 전달될 길이 없다. 미(美)를 심미적인 측면으로 생각하고 선(善)을 윤리적인 측면으로 생각하는 후대의 발상이 꼭 이에 들어맞는지는 알 수가 없다. 소악과 무악은 분명 악기의 편성과 그에 따른 음색이 전혀 다른 음악일 것이다. 무악에는 타악기나 금속제의 관악기가 더 많이 쓰였을 것이 분명하며 어떤 살벌한 느낌이 감돌았을 것이다. 혹자는 미(美)를 음악의 멜로디에 관한 평어로 보기도 하고 선(善)을 음악의 가사내용에 관한 평어로 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하여튼 전체적으로 소악이 무악보다 점수가 높은 것이 확실하다. 즉 소악에는 미와 선의 점수가 100점씩 200점이 매겨지고 있다면, 무악에는 100점과 50점, 그러니까 한 150점 정도의 점수밖에는 매겨지고 있질 않은 것이다. 이것은 공자의 시대가 이미 무력항쟁의 시대가 되어 음악의 성향이 너무 무악쪽으로 치우치고 있는 당대의 분위기에 대한 공자의 비판일 수도 있다. 공자는 무인(武人)의 후손이며 자신이 사(射)ㆍ어(御)의 달인이지만, 역시 문(文)의 세계를 통하여 새로운 사문(斯文)의 문화를 개창한 인물이었음으로 그의 음악평론이 소악 쪽으로 기울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소라이(荻生徂徠)는 미(美)와 선(善)에 대한 매우 독특한 해석을 내리고 있다. 미(美)는 큰 것을 말한 것이요[美者, 以其大者言之也], 선(善)은 작은 것을 말한 것이다[善者, 以其小者言之也]. 다시 말해서 음악의 구성에 있어서 그 큰 틀은 무악과 소악이 대차가 없으나, 그 디테일에 들어가면 무악은 소악에 영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무악이 전하여진 형태가 소악보다 온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디테일이 망가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산은 슌다이의 『외전』에서 소라이를 인용하고, 『논어』의 원문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찌 온전하게 전하여지지 않은 음악이 진미할 수 있겠는가[樂之旣缺, 何得 盡美]’라고 소라이를 반박하고 있으나, 내가 생각키로 소라이의 견해도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 하여튼 다산이 『논어징』을 보지 못한 것은 실로 유감이지만 슌다이를 통하여 엄청난 자극을 받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논어고훈외전』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읽고 있자면, 다산이 『논어고금주』를 집필케 된 동기가 바로 이 왜인의 작품에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그 방대한 규모나 체제가 매우 비슷하고, 또 깔보던 왜인의 학문의 수준에 충격을 받아 분발의 마음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 이것은 『고금주』와 다산이 보았던 바로 그 『외전』 판본을 양손에 들고 있는 나 도올의 개인적 소감이다.
본 장은 본격적인 음악평론으로서 전전 장인 23장과 호상발명(互相發明)한다. 본편이 전체적으로 예에 관한 것을 수록했는데, 예라는 것은 본시 악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므로 공자의 전문적인 음악 평론을 끝부분에 부기함으로써 공자가 실로 예 악의 달인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예의 내용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편집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소(韶)’는 순임금의 음악이고, ‘무(武)’는 무왕의 음악이다. ‘미(美)’란 소리와 모양의 성대함이요, ‘선(善)’이란 그 미(美)의 실내용이다. 순임금은 요임금을 계승하여 훌륭한 정치를 이룩하였고, 무왕은 주(紂)를 벌하여 백성을 구하였으니, 그 공(功)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그 음악이 모두 지극히 아름답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순임금의 덕성은 인간의 본성에 따른 것이요, 또한 겸손하게 사양함으로써 천하를 얻었다. 그러나 무왕의 덕성은 잘못된 것을 되돌이킨 것이요, 또 한 정벌하고 사람을 죽임으로써 천하를 얻었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은 실(實)인즉슨 같지 않은 측면이 있다.
韶, 舜樂. 武, 武王樂. 美者, 聲容之盛. 善者, 美之實也. 舜紹堯致治, 武王伐紂救民, 其功一也, 故其樂皆盡美. 然舜之德, 性之也, 又以揖遜而有天下; 武王之德, 反之也, 又以征誅而得天下, 故其實有不同者.
희주에 ‘미지실(美之實)’이라고 표현한 것을 『주자어류』 권25에서 찾아 보면 비단실로 천을 짤 때 천의 전체 모양을 ‘미(美)’라고 한다면 그 천을 이루는 비단실의 낱알이 곧 ‘미의 실[美之實]’이며 ‘선(善)’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천[布]의 전체 모양이 성대하고 아름다워도 결국은 비단실의 품질에 딸린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사실 이러한 해석은 소라이(荻生徂徠)의 견해를 이미 내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천과 실의 관계를 순수 음악적으로 풀지를 않고 도학적인 덕성의 문제로 풀었다는데 주희의 특징이 있고 또 졸렬함이 있다. 아마도 도덕주의적 의분에 차있었던 주희는 음악평론에는 섬세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질 못하다.
○ 정자(이천)가 말하였다: “성탕(成湯)이 걸왕을 추방하면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덕의 측면에서 보면 무왕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진선未盡善’【선을 다하지는 못했다】이라고 말한 것이다. 요ㆍ순ㆍ탕ㆍ무가 다 헤아리는 마음은 결국 하나였을 것이다. 정벌이란 그들이 원한 바는 아니었을 것이나, 그들이 만난 시대가 그러했을 뿐이다.”
○ 程子曰: “成湯放桀, 惟有慙德, 武王亦然, 故未盡善. 堯ㆍ舜ㆍ湯ㆍ武, 其揆一也. 征伐非其所欲, 所遇之時然爾.”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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