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시작②
이렇듯 신이 다스리는 세계가 먼저 출현하고 그 다음에 인간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시대, 즉 역사 시대가 개막되는 게 민족신화나 건국신화의 기본 코스다. 그런 점에서 단군왕검이라는 ‘인간’이 주인공인 우리의 단군신화는 확실히 특이한 데가 있다.
물론 단군도 신과 관련된 인물이기는 하다. 그의 아버지 환웅은 천제(天帝)인 환인의 서자였다. 하늘에서도 서자는 차별을 받았을까? 그는 일찍부터 하늘 세상보다 인간 세상에 관심을 보였는데, 그 관심에 대한 보상으로 아버지에게서 바람과 비와 구름을 관장하는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받고 태백산이라는 땅으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세운다(태백산은 오늘날 한반도 북부 또는 랴오둥遼東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무리 비천한 인간 세상이라지만 신의 아들로서 신의 도시를 세웠는데 홀아비의 몸으로 다스릴 수는 없는 일, 그래서 환웅은 아내를 구한다. 그러나 범상한 여인이 그의 아내가 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그의 아내는 희한하게도 사람이 아닌 동물 출신이다. 마침 사람이 되려 하는 곰과 호랑이가 있어 환웅은 그들에게 쑥과 마늘을 주고 인내력을 테스트한다. 결국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지루함을 견딘 곰이 승리해 여성이 되었고, 환웅은 사람의 몸으로 변신하여 그 여성과 결혼해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단군왕검이다.
비록 아버지는 하늘에서 내려온 반인반신이지만 단군은 온전한 인간이므로 이집트나 그리스 신들의 경우와는 엄연히 다르다. 비교하자면 그 신들보다는 로마의 건국자인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가깝다. 쌍둥이의 어머니는 인간 세상의 공주였지만 아버지는 전쟁의 신 마르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의 쌍둥이는 마르스의 자식답게 로마를 건설하자마자 곧바로 인근 부족과의 싸움박질에 몰두한 반면, 단군은 고조선(고조선의 ‘고古’는 후대의 이씨 조선과 구분하기 위한 것일 뿐 당대에는 그냥 조선이었다)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평화롭게 다스리는 데 주력한다.
이 차이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그것은 바로 단군이 농경문명에 적합한 건국 시조였다는 점이다. 로마가 세워질 무렵(기원전 753년으로 전해진다) 로마 인근에는 여러 부족들이 나름대로 도시를 세우고 활기차게 문명을 건설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단군은 로마의 쌍둥이에 비해 훨씬 안정된 권력을 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 경쟁자도 없었을뿐더러 단군은 자신의 백성들, 즉 원래부터 그곳에 살던 사람(한반도 원주민)들에게 전혀 새로운 농경문명을 전했기 때문이다.
단군이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점, 그리고 농경문명을 백성들에게 전해주었다는 점, 이 두 가지 사실은 단군신화를 출발점으로 삼는 한반도 문명의 대략적인 성격을 결정한다. 단군은 인간의 신분이므로 한 민족의 ‘조상’이 되기에 아주 적합하다. 또 농사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땅이 가장 중요하다. 농사 기술을 전해준 조상과 농사를 지을 땅, 이것은 곧 한반도 문명이 장차 조상 숭배와 농경을 토대로 하리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오늘날에도 그런 문명의 자취는 뚜렷이 남아 있다. 이를테면 아들 중심주의와 효 사상이 그 흔적이다. 전자는 고질적인 사회적 병폐로, 후자는 전통적 미덕으로 간주되지만 사실 두 가지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 농업 사회에서는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농사 기술과 농토를 물려받는다. 다른 말로 바꾸면 노동수단과 노동대상, 즉 생산수단 전체를 아버지에게서 전해 받는 셈이다. 그러니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들을 딸보다 우선시하는 게 당연하며,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어느 덕목보다 중시하는 게 자연스럽다(이런 현실적 이해관계를 이념적으로 고급스럽게 포장한 게 바로 유학이다). 문제는 농경문명을 탈피한 현대 도시 사회에서도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시대적ㆍ공간적 불일치를 빚는다는 데 있다】.
▲ 곰족과 호랑이족? 고구려 중대에 그려진 각저총 벽화의 씨름 장면이다. 희미하지만 오른쪽의 나무 아래에 단군신화의 두 주인공인 곰과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게 보인다. 그것으로 미루어 단군신화는 고구려시대까지도 전승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화의 곰과 호랑이가 당시 두 부족의 상징이었다면, 이 씨름의 승자는 아마 곰족의 대표선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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