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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자람 - 5장 분열이 자연스러운 인도, 최초이자 최후의 제국: 다양한 매력의 지배자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동양사, 자람 - 5장 분열이 자연스러운 인도, 최초이자 최후의 제국: 다양한 매력의 지배자

건방진방랑자 2021. 6. 7.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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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최초이자 최후의 제국

 

 

다양한 매력의 지배자

 

16세기 초반 아프가니스탄계의 로디(Lodi) 왕조가 델리 술탄국의 맥을 잇고 있을 무렵, 우즈베크 출신의 한 영웅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칭기즈 칸의 16대손이자 중앙아시아의 칭기즈 칸이었던 티무르(Timur, 1336~1405)티무르는 14세기 중앙아시아 튀르크족의 지배자인데, 인도사에 속하는 인물은 아니므로 여기서 간단히 살펴보자. 몽골이 중앙 아시아에 수립한 차가타이 칸국이 와해되자(7장 참조) 티무르는 그 혼란을 수습하고 몽골 제국의 후예로 자처했다(물론 종교와 문화는 이슬람이다). 뛰어난 정복자였던 그는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남 러시아 일대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손에 넣었다. 1405년 그가 병사한 뒤 후손들이 제국을 분할했는데, 이것을 총칭해 티무르 왕조라고 부른다. 이런 상황이 16세기까지 지속되는 가운데 바부르가 등장한 것이다5대손을 자처하는 그는 바로 바부르(Babur, 1483~1530)라는 인물이었다. 칭기즈 칸이나 티무르의 후예로 자처한 것은 정통성을 표방하려는 정치적 태도로 볼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은 자손이 워낙 많았으니 바부르가 그들의 후손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튀르크계의 족장으로서 중앙아시아의 패자가 된 바부르는 원래 티무르 제국을 재현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로디 왕조의 허약함을 깨닫게 된 그는 방침을 바꾸어 중앙아시아보다 인도 정복에 매력을 느꼈다. 1526년 바부르는 델리 근방에서 뛰어난 용병술과 기병대로 수적으로 훨씬 많은 로디 군대를 무찌르고 델리에 입성했다.

 

북인도의 지배자들은 선선한 기후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살던 바부르가 인도의 무더위를 견디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아닌 게 아니라 칭기즈 칸의 후예라면 인도를 정복의 최종 목적지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뜻밖이었다. 바부르는 점령지 곳곳에 페르시아식 정원을 만들고 더위에 시달리는 병사들을 독려하며 인도에 그냥 눌러 앉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도 역사상 최후의 제국으로 기록될 무굴 제국이 탄생했다.

 

 

 

 

바부르의 무굴 제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과 간다라를 포함해 데칸 고원의 일부, 동쪽으로는 벵골에까지 이르는 드넓은 영토를 장악했다. 인도 지역에 국한한다면 고대의 마우리아나 쿠샨, 굽타보다 통일 제국으로서의 위상이 약하겠지만, 북인도만을 놓고 따지거나 그 북쪽의 중앙아시아까지 포함시킨다면, 무굴 제국은 인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통일 제국일 것이다. 게다가 수명도 중세 이후 어느 인도 왕조보다 긴 200여 년에 달했다.

 

바부르는 파괴적인 정복자일지언정 적어도 무지한 정복자는 아니었다. 정원에 심취한 데서 보듯이 심미안을 가진 지배자였으며, 문학에 조예가 깊고 시와 산문을 즐긴 팔방미인이었다. 튀르크어로 된 그의 저서 바부르의 회상은 오늘날까지도 이슬람 문학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무굴 제국은 건국자인 바부르가 돌연히 사망하면서 하마터면 단명 왕조로 끝날 뻔했다. 새 제국이 아직 충분히 안정되지 못했을 때 바부르의 아들 후마윤(Humayun, 1508~1556)은 신흥 세력의 우두머리인 셰르 칸 수르(Sher Khan Sur, 1486~1545)에게 패배하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달아났다. 아버지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후마윤은 각지를 떠돌며 지원을 부탁하는 처지로 전락했다후마윤이 스물두 살 무렵 중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웠을 때 바부르는 신에게 자신의 목숨을 대신 가져가라고 탄원했다. 과연 신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었다. 아들의 병이 나은 대신 아버지가 몸이 쇠약해져 죽은 것이다. 그때 바부르는 아직 쉰이 채 되지 않은 나이였으니 신생 무굴 제국의 안위를 위해서는 아들보다 아버지가 살았어야 한다.

 

한편 델리를 정복한 셰르 칸 수르는 황제로 자칭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계 델리 술탄국을 복구하려 했다. 그는 북인도를 지배하는 5년 동안 화폐를 통일하고 물가를 안정시켰으며, 토지조사와 대규모 도로 건설을 했고, 그 밖에 여러 가지 개혁조치도 단행했다

 

셰르 칸 수르의 통치가 제대로 이어졌더라면 무굴 제국은 이후 인도 역사에서 한 문단으로 정리되고 대신 아프가니스탄 제국이 한 개 장 정도를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권위 있는 건국자가 죽으면 정세가 혼탁해지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그가 죽으면서 아프가니스탄 제국은 급격히 무너졌고, 마음을 고쳐먹은 무굴의 후마윤이 재도전 끝에 델리를 수복하는 데 성공했다. 뒤이어 후마윤의 아들인 아크바르(Akbar, 1542~1605)의 시대에 무굴은 제국의 기틀을 갖추고 장기적인 번영과 안정을 이루게 된다.

 

 

정원을 좋아한 바부르 바부르는 아프가니스탄의 작은 왕국에서 순식간에 국력을 키워 북인도까지 정복하고 무굴 제국을 세운 흥미로운 인물이다. 무굴(Mughul)이란 바부르의 부족 이름으로서 몽골(Mongol)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바부르는 몽골의 후예일 텐데, 역사책에는 튀르크계라고도 되어 있다. 실상 흉노, 돌궐(튀르크), 몽골은 시대마다 이름이 달라졌을 뿐 모두 중국 북방을 고향으로 하는 민족이다. 몽골이 중앙아시아를 정복한 이후 칭기즈 칸과 티무르의 지배를 거치면서 돌궐족과 몽골족이 혼혈을 이루었는데, 무굴의 바부르는 바로 그 혼혈 출신일 것이다.

 

 

인용

목차

한국사 / 서양사

다양한 매력의 지배자

최초의 중앙집권 제국

유능한 군주들이 일군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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