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 먼저냐, 바깥이 먼저냐③
국민당과 달리 공산당은 항일을 최우선으로 들고나왔다. 봉건 지주층의 지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당과는 이념적으로도 다른 데다 피착취계급을 대변한다는 명분으로도 당연히 항일에 몰두해야 했지만, 국민당이 항일을 포기했으니 전략적으로도 항일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몰아치는 국민당의 집요한 공격을 견디기란 쉽지 않았다. 뭔가 전환점이 필요했다. 인력과 비용이 들지 않는 전환점은 바로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표방하는 것이었다. 대장정 중이던 1935년 8월 1일에 마오쩌둥은 내전을 중지하고 항일민족통일전선을 수립하자는 8ㆍ1선언을 발표했다.
때가 때인지라 이 선언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오랜 정쟁과 내전에 진저리가 난 중국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즉각 중국 전역에서 호응이 잇달았다. 민간단체들도 일제히 내전 중지와 항일 구국에 일로매진하자고 외쳤다. 이쯤 되자 국민당 지도부도 거국적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내전이 우선 과제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장제스 혼자만 남았다.
이런 분위기를 등에 업고 장제스의 병적인 의지를 꺾은 사람은 바로 장쉐량이었다. 그는 일본이 만주를 침략할 때 장제스의 지시로 저항하지 않았다가 졸지에 국내 여론의 거센 비난을 혼자 뒤 집어쓴 바 있었다. 심지어 그가 이끄는 동북군 내에서도 텃밭을 일본에 빼앗기고 시안까지 쫓겨난 데 대해 병사들의 불만이 컸다. 마침 동병상련의 친구도 있었다. 관동군에 맞서 싸우려 했다가 장제스에게 호되게 당한 서북 군벌의 펑위샹이다.
1936년 5월, 장쉐량은 펑위샹과 함께 공산군과 공동으로 항일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수상한 느낌을 감지한 장제스는 그해 12월 장쉐량에게 압력을 가하고 내전을 독려하기 위해 시안에 왔다. 부하가 반기를 들었는데도 그는 그 부하의 의지와 그 반기의 의미를 충분히 읽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게 적의 소굴로 찾아든 장제스, 마치 2200년 전 유방(劉邦)이 항우가 있던 홍문(鴻門)을 찾아간 사건을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장제스가 유방일 수 없고 장쉐량이 항우일 수도 없지만, 더 큰 차이는 그때 유방을 구한 번쾌가 없다는 점이다.
일단 장쉐량은 상관인 장제스에게 내전을 중지하고 함께 항일에 나서자고 탄원했다. 하지만 그럴 거라면 장제스는 시안에 오지도 않았다. 상관의 명령을 따를 것이냐, 대세를 좇을 것이냐 고민하던 장쉐량은 12월 12일 새벽에 장제스의 숙소를 덮쳐 장제스와 휘하 막료들을 체포해버렸다. 이 쿠데타를 시안 사건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부하에게 체포된 하극상의 상황에서도 장제스는 완강했다. 장쉐량은 그렇다면 그를 죽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때 번쾌는 없었어도 번쾌의 역할을 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장제스를 살리는 게 장차 통일전선에 유리하리라는 판단에서 공산당이 파견한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와, 장제스가 남편이므로 당연히 살려야만 하는 그의 아내 쑹메이링(宋美齡, 1897~2003)이 바로 그들이다.
훌륭한 품성과 뛰어난 논리로 이름을 날린 저우언라이와 누구보다도 가까운 아내, 둘 중 누구의 설득이 더 주효했는지는 모르지만, 장제스는 마침내 장쉐량의 제안을 수락했다(그는 장쉐량이 자신을 죽이려는 각오까지 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에 고집을 부렸을 것이다). 이로써 국민당과 공산당은 결별한 지 9년 만에 2차 국공합작을 이루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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