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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26학년도 한문 임용 B형 기출문제 본문

기출문제/전체

2026학년도 한문 임용 B형 기출문제

건방진방랑자 2021. 6. 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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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 먼저냐, 바깥이 먼저냐

 

 

당시 만주는 청년 군벌인 장쉐량(張學良, 1898~2001)이 지배하고 있었으나, 관동군은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손쉽게 만주 전체를 장악했다. 이참에 만주를 완전한 일본 영토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겠지만, 서구 열강의 보는 눈이 많은 마당에 아직 그러기에는 일렀다. 그래서 일본은 그 이듬해인 1932년 청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를 불러 만주국이라는 괴뢰 국가를 만들었다.

 

물론 장쉐량이 관동군을 막아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텃밭에서 제대로 싸움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적에게 그렇듯 쉽게 만주를 내줄 수 있는 걸까? 사실 여기에는 단지 군사력의 차이만이 아닌 정치적ㆍ정략적 의도가 있었다. 장쉐량은 장제스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근거지를 침략하는 관동군에 저항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 장제스는 왜 그런 지시를 내렸을까?

 

당시 장제스의 국민당에게 적은 공산당과 일본, 이렇게 둘이었다. 장제스는 먼저 국내를 안정시킨 뒤 외세를 몰아낸다는 것을 기본 노선으로 삼았던 것이다(일본보다 공산당이 자신의 권력 기반에 더 큰 위협 요소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자연히 그의 일차 목표는 공산당과 홍군이었다. 일본의 위협이 노골화되는 상황에서도 그는 오로지 토벌에만 전력투구했다. 자기 혼자만 그랬다면 그런가 보다 싶겠지만, 그는 휘하의 군벌인 만주의 장쉐량에게도 일본에 저항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항일에는 여력이 없었으므로 장제스는 일본의 만주 침략 문제를 국제연맹에 의뢰했다. 그러나 일본은 장제스보다 훨씬 과감한 행동으로 그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버린다. 만주에서 물러나라는 국제연맹의 권고를 받자 1933년에 아예 국제연맹을 탈퇴해버린 것이다. 나아가 일본은 국제 여론과 중국 국내 여론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항일운동의 중심지인 상하이를 공격했다.

 

그래도 장제스는 초지일관 공산당만을 겨냥했다. 오로지 일본과의 전면전을 피하겠다는 생각에서 그는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중국 민중의 항일운동까지 가혹하게 탄압했다. 대문 앞에 대적이 쳐들어왔는데도 방 안의 식구를 닦달하는 그의 태도를 보고 중국 민중의 마음은 결정적으로 공산당에 기울었다.

 

관동군이 베이징과 선양 사이의 러허 성까지 진격해오자 그제야 장제스는 황급히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그의 대응은 중국 민중이 고대하던 응전이 아니라 굴복이었다. 1933531, 그는 일본과 탕구(塘沽) 정전협정을 맺고 일본의 만주 점령을 사실상 양해했다. 심지어 협상 도중에 서북 군벌 펑위샹(馮玉祥, 1882~1948)의 군대가 러허를 수복하기 위해 관동군을 공격하려 하자, 장제스는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13개 사단을 보내 펑위샹을 제압했다.

 

사실상 중국의 단독 지배자인 장제스가 외세를 물리쳐야 한다는 민족적 열망을 뒤로한 채 자신의 권력욕을 앞세우는 것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더없이 유리한 조건이었다. 19세기 말에 독일도 후발 제국주의인 탓에 중국 침탈에 특히 그악스럽게 굴었지만, 더 후발 제국주의인 일본은 독일보다 한술 더 떴다. 만주를 점령해 중국 침략의 기반을 닦은 뒤 일본은 더 멀리까지 손을 뻗쳐 1935년에는 화북에도 괴뢰정권을 세웠다.

 

 

아버지의 원한으로 펑텐(선양) 군벌 장쉐량의 아버지인 장쭤린은 일본과 결탁했다가 일본의 만주 침략이 노골화되면서 결별했다. 그러자 1928년에 관동군은 그가 타고 가던 열차를 폭발시켜 살해했다. 이런 배경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은 장쉐량이 일본에 어떤 감정을 가졌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근거지를 침략하는 일본군에 저항하지 말라는 장제스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했다. 그러나 쌓인 울분은 몇 년 뒤 시안 사건에서 터져 나온다.

 

 

인용

목차

연표

십팔사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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