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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1부 깨어나는 역사 - 신화에서 역사로, 중국과의 접촉(위만조선) 본문

역사&절기/한국사

1부 깨어나는 역사 - 신화에서 역사로, 중국과의 접촉(위만조선)

건방진방랑자 2021. 6. 1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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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과의 접촉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인물은 진나라의 시황제였지만 진은 불과 14년 만에 멸망하고, 유방(劉邦)의 한()나라가 항우의 초()나라를 물리치고 새로운 통일 제국을 열기 때문에 실질적인 중국 최초의 제국은 한나라. 그러나 통일을 이루었다지만 아직 신생 제국의 힘으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크게 확장된 넓은 대륙을 직접 통치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 고조 유방은 기존의 제후 세력들에게 복종과 충성을 서약받고 봉토를 주어 다스리게 한다. 이 제도를 군국제(郡國制)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중국식 봉건제(封建制)원형이 만들어진 셈이다(유방보다 더욱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졌던 시황제는 중앙집권적 성격이 강한 군현제(郡縣制)를 시행한 바 있다).

 

이 새로운 체제하에서 제후들은 황제인 천자(天子)에 의해 으로 임명되었다(진나라와 달리 변방이 현에서 국으로 격상되었으니 지배자도 당연히 왕이 된다). 실제로 각 왕들은 자기 영토 내에서 사실상의 자치권을 누렸으며, 중앙정부에 조세와 공물을 정기적으로 바치고 오랑캐 외적의 침략을 막으면 될 뿐 중앙정부로부터 별다른 간섭을 받지는 않았다. 중원 동북방에 자리잡은 연나라 역시 그런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연나라가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랴오둥 반도, 이곳은 고조선의 영향권이다. 따라서 연나라는 어떤 식으로든 고조선과 만나지 않을 수 없는데, 예정되어 있던 그 접촉을 가속화시킨 것은 한나라 중앙정부의 정책 변화다.

 

신생 제국이 점차 안정을 찾으면서 자신감을 얻은 한나라 정부는 변방의 왕들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원래 제국이란 중앙집권적 구심력과 봉건적 원심력 둘 다를 필요로 한다. 중앙정부는 물론 구심력을 선호하지만 워낙 넓은 영토를 중앙집권으로만 다스릴 수는 없으므로 타협책으로서 봉건제를 채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황제의 카리스마가 강해지면 중앙에서는 언제든 구심력이 더 크게 작용하게 마련이다. 반면 변방의 왕들은 반대로 원심력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따라서 한 황실의 압력이 거세어지자 연나라는 더 바깥의 고조선을 호시탐탐 노려본다.

 

그럼 연나라의 타깃이 되고 있는 고조선의 정세는 어땠을까? 기자조선이 성립한 이후 한반도 역사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지만, 그래도 1000년에 달하는 오랜 기간에 아무런 일도 없었을 리는 없다. 아마 그 시기에 고조선은 서서히 문명의 빛을 더해갔고 세력권도 조금씩 넓혀갔을 것이다. 특히 기원전 4세기에는 한반도 문명도 철기 시대로 접어들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제법 사회 체제도 발달하고 영토의 개념도 구체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고조선의 힘으로는 선진 문명권 중국의 강력한 제후국인 연나라를 당해내기란 어렵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문제가 터진다. 연나라 왕 노관이 한 황실의 배척에 못 이겨 북방의 흉노 제국으로 망명해 버린 것이다. 졸지에 왕이 사라지자 연나라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장수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노관을 모시고 있던 위만(衛滿)이라는 자는 흉노 대신 동쪽의 고조선을 택한다. 고조선의 입장에서는 또 다시 천 년 만에 맞게 된 대륙의 선진 세력이다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김부식(金富軾)진이 망하고 한이 일어나는 난리에 중국인들이 많이 해동으로 도망해 왔다는 옛 기록을 인용하고 있는데, 어떤 기록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아무튼 당시에는 중국의 일반 백성들도 난리를 피해 한반도 쪽으로 대거 이주한 듯하다.

 

 

그 무렵 고조선을 다스리고 있던 준왕(準王)은 위만에게 벼슬을 내주며 환대했으나 위만의 속셈은 후진국인 고조선의 관직에 있지 않았다. 그는 기회를 노려 왕위를 찬탈할 속셈이었다. 과연 이후의 사정은 그에게 유리하게 전개된다. 위만의 성공 사례에 자극받은 연나라의 하급 관리와 유민들이 잇달아 짐을 꾸린 것이다. 게다가 산둥을 터전으로 하는 제()나라나 멀리 중원 옆에 있는 조()나라의 백성들마저 동방 길을 택하면서 고조선으로 오는 유민의 수는 급증한다. 이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은 시간문제다. 원래 준왕은 위만에게 서쪽 변방의 수비를 맡겼는데, 이는 곧 동쪽으로 오는 중국의 유민들을 차단해 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되고 만다. 오히려 고향 사람들의 이주로 힘을 얻은 위만은 주인을 내몰고 고조선의 왕위에 오른다. 기원전 194년의 쿠데타, 이것이 우리 역사상 최초로 연대가 확실히 알려진 사건이다. 고양이를 호랑이로 키운 준왕은 뱃길로 남쪽으로 달아나 한반도 중부의 어느 곳(오늘날 경기도 광주, 충청남도 직산, 전라북도 익산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에서 새로 나라를 세웠으나 오래 가진 못했다그가 어떤 나라를 세웠느냐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고조선에 남은 그의 자식들이 한()씨 성으로 불렸다는 점이다. 실제로 준왕은 망명지에서도 자신을 한왕(韓王)이라 칭했다. 한반도의 가장 오래된 토착 성씨이자 가장 한국적인 성이라 할 한씨는 청주를 본관으로 하는데, 그 기원이 바로 준왕이다(그렇다면 그가 정착한 곳은 오늘날 충청남도 직산이라는 설이 옳을 것이다).

 

 

이제 고조선은 한층 더 중국과 밀접해졌다. 단군조선과 기자조선 시대에는 지배집단만 이주민이었으나 위만조선 때부터는 관리들과 백성들의 상당수가 중국 출신이다. 사실 우리 역사니까 고조선을 마치 독립적인 나라인 것처럼 말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인식에서는 아마 한나라의 동북쪽 변방에 위치한 일개 지방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울러 중국인과 한반도인 같은 구분도 그다지 명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제국에 반기를 든 유민들이기에 위만조선을 보는 한나라 중앙정부의 눈길은 고울 수가 없었다. 다만 한나라 조정으로서는 아직 동북 변방에 관심을 기울일 만한 처지가 못 된다. ? 바로 흉노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한자(漢字)와 한족(漢族) 등 중국적인 것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전할 만큼 한나라는 중국 역사의 뿌리가 되는 제국이지만, 개국 초에는 중원 북방의 흉노 제국에게 조공을 바치는 처지였다. 어느 한족 처녀가 마치 잔 다르크처럼 활약하면서 흉노의 선우(單于, 황제)를 물리치는 내용을 그린 디즈니 만화영화 뮬란은 당시의 역관계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개국한 지 50여 년이 지나 제국이 안정되는 한 무제(武帝, 재위 기원전 141 ~87)의 시대에 이르러 그 관계는 역전된다. 무제는 흉노와의 해묵은 빚을 청산하고 흉노를 멀리 서쪽으로 쫓아 버린다(이 흉노의 민족이동은 수백 년 뒤 유럽에서 로마제국을 무너뜨리는 세계사적 변혁을 부르는데, 이에 관해서는 종횡무진 동양사를 참조하라), 최대의 강적을 물리쳤으니 그 다음은 탄탄대로다. 무제는 이 참에 중국의 주변 세계를 모두 중화 질서 속에 편입시키려는 원대한 전략을 전개한다이런 무제의 구상은 이후 중국의 모든 한족 제국들에게 하나의 전범이 된다. 나중에 보겠지만 수나라의 양제, 당나라의 태종, 명나라의 영락제(永樂帝) 등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한 무제처럼 대륙 통일을 이룬 뒤 곧바로 북변 정리를 제1의 과제로 설정한다. 그때마다 한반도의 왕조들도 진통을 겪게 되는데, 앞으로 그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동북방의 고조선도 그 구도에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로 인해 천 년 이상이나 존속했던 단군조선이나 기자조선과는 달리 위만조선은 문을 연 지 불과 한 세기도 못 되어 존망의 위기를 맞는다.

 

 

한 무제의 꿈 한 무제가 파견한 서역 원정대의 모습이다. 그는 개국 초부터 한나라를 괴롭혀 오던 흉노를 몰아내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지만, 그밖에도 고대로부터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길로 널리 알려져 있던 비단길을 원정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그 화려한 대외 정복의 와중에 랴오둥과 한반도에는 네 개의 군이 설치되었으나 이것은 한 무제의 주력 사업은 아니었다.

 

 

인용

목차

동양사 / 서양사

분명한 시작

누락된 시대

두 번째 지배집단

중국과의 접촉

지배인가, 전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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