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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8부 왕국의 시대 - 2장 진화하는 사대부, 사대부의 분화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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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8부 왕국의 시대 - 2장 진화하는 사대부, 사대부의 분화③

건방진방랑자 2021. 6. 17.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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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의 분화

 

 

중앙에서는 성종의 간접 지원으로, 또 지방에서는 젊은 유림의 활약으로 사림파가 득세하면서 여기에도 훈구파의 한명회(韓明澮)에 못지 않은 보스가 등장하게 된다. 한명회가 지위와 권력과 혼맥으로 보스의 자리를 꿰어찼다면 사림파의 보스는 재야 세력답게 학문과 실력으로 당당히 주변 인물들에게서 보스라는 인정을 받는다. 그는 바로 김종직(金宗直, 1431 ~ 92)이라는 학자다. 원래 그의 가문은 고려 말 신진사대부의 거두였던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 1353 ~ 1419)를 본받는 것을 전통으로 삼았으니 성리학적 이념에 대해서는 당연히 순도 높은 진골이다여기서 눈여겨볼 게 하나 있다. 흔히 고려 말 고려 왕조에 절개를 지켰던 세 충신을 삼은(三隱)이라 부른다. 이색(李穡), 정몽주, 길재가 그들인데 그들의 호가 각각 목은(牧隱), 포은(圃隱), 야은(冶隱)이었던 데서 나온 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종직의 가문에서 존경한 인물들 중에 삼은 가운데 유독 이색(李穡)만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이색만이 경상도 본관이 아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정몽주(鄭夢周)의 본관은 영일이고 길재의 본관은 해평으로 둘 다 경상도지만(해평은 경북 선산에 속한다), 이색(李穡)은 한산 이씨니까 충청도 사람이다. 그런데 김종직은 바로 선산 김씨다. 김종직이 자타가 공인하는 영남학파의 태두로 군림한 데는 처음부터 그런 지방색이 강하게 작용한 건 아닐까?. 바야흐로 사림의 봄을 맞아 그는 본격적인 대여 비판 의 선두에 섰으며, 아울러 영향력 있는 제자들을 길러내서 사림파를 훈구파에 대적할 수 있는 수준으로 키우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이렇게 해서 사대부(士大夫)는 크게 두 파로 분화되었다. 엄밀히 말해 훈구파가 사대부의 부분집합이라면 사림파는 그 여집합에 해당하므로 대립 세력이라고 부르기는 적절치 않지만, 어쨌든 그 전까지 비교적 동질적이었던 사대부 세력은 이제 두 줄기로 나뉘었다. 그들은 표면상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공동의 이해관계도 있다. 그것은 바로 왕권에 맞서고 있다는 점이다(비록 훈구파는 왕당파 사대부이지만 왕을 단지 자기들 권력의 상징적 원천으로 삼고자 하는 데 불과하다). 따라서 사대부의 분화는 사대부 세력의 약화를 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전반적으로 보면 크게 강화되었음을 뜻한다. 언제라도 왕권이 약해지거나 왕권에 허점이 보이면 그들은 조선이라는 왕국사대부 국가로 바꾸려 할 것이다. 그 순간은 그들의 예상보다 더 이르게 다가온다.

 

 

 정치 지망생들의 명단 조선 사회 특유의 학자-관료 체제에서 학자'란 순수하게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치인이거나 정치 지망생이었다. 지방 유림 세력의 거점인 유향소도 일종의 재야 정치 집단이었다. 사진은 향촌을 지배하는 유향소 구성원들의 명단인 향안(鄕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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