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2장 탈주ㆍ우정ㆍ도주, ‘연암그룹’③ 본문

카테고리 없음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2장 탈주ㆍ우정ㆍ도주, ‘연암그룹’③

건방진방랑자 2021. 7. 8. 09:14
728x90
반응형

연암그룹

 

 

앞에 나온 박제가(朴齊家)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과 함께 모두 서얼 출신으로, 연암의 친구이자 학인들이다. 정조가 왕권 강화책의 일환으로 세운 아카데미인 규장각의 초대 검서관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흥미로운 건 이들 모두 정조가 끔찍이 싫어했던 소품문을 유려하게 구사한 작가들이라는 점이다. 특히 이덕무(李德懋)18세기를 대표하는 아포리즘(aphorizm)의 명인이다.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청언소품(淸言小品)’들로 흘러넘친다. 서얼 출신인 데다 자신을 간서치(看書痴)’, 곧 책만 읽는 멍청이라고 부를 정도로 책벌레였던 그는 가난과 질병을 숙명처럼 안고 살았다. 유득공 역시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였을 터, 여기 두 사람의 눈물겨운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내 집에 좋은 물건이라곤 단지 맹자(孟子)일곱 편뿐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딜 길 없어 2백 전에 팔아 밥을 지어 배불리 먹었소. 희희낙락하며 영재 유득공에게 달려가 크게 뽐내었구려. 영재의 굶주림 또한 하마 오래였던지라, 내 말을 듣더니 그 자리에서 좌씨전(左氏傳)을 팔아서는 남은 돈으로 술을 받아 나를 마시게 하지 뭐요.

家中長物, 孟子七篇, 不堪長飢, 賣得二百錢, 爲飯健噉, 嬉嬉然赴冷齋大夸之. 冷齋之飢 亦已多時, 聞余言, 立賣左氏傳, 以餘錢沽酒以飮我.

 

이 어찌 맹자가 몸소 밥을 지어 나를 먹여주고, 좌씨가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하는 것과 무에 다르겠소. 이에 맹자와 좌씨를 한없이 찬송하였더라오. 그렇지만 우리들이 만약 해를 마치도록 이 두 책을 읽기만 했더라면 어찌 일찍이 조금의 굶주림인들 구할 수 있었겠소. 그래서 나는 겨우 알았소. 책 읽어 부귀를 구한다는 것은 모두 요행의 꾀일 뿐이니, 곧장 팔아치워 한번 거나히 취하고 배불리 먹기를 도모하는 것이 박실(樸實)함이 될 뿐 거짓 꾸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오. 아아!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是何異子輿氏親炊飯以食我, 左丘生手斟酒以勸我? 於是頌讚孟左千千萬萬. 然吾輩若終年讀此二書, 何嘗求一分飢乎? 始知讀書求富貴, 皆僥倖之術, 不如直賣喫圖一醉飽之樸實而不文飾也. 嗟夫嗟夫! 足下以爲如何?

 

 

역시 연암그룹의 일원인 이서구(李書九)에게 보낸 편지다(與李洛瑞書). 오로지 책이 삶의 전부인 지식인이 책을 팔아 밥을 먹어야 하는 이 지독한 아이러니! 이덕무(李德懋), 그리고 그의 친구들의 아포리즘(aphorizm)은 이런 절대빈곤무소유의 한가운데서 솟구친 열정의 기록이었다.

 

백동수도 흥미로운 캐릭터 중의 하나다. 1789년 가을, 정조는 백동수를 박제가(朴齊家), 이덕무 등과 함께 불러들인다. 정조의 명령은 새로운 무예서를 편찬하라는 것. 이름도 미리 정해놓았다.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곧 무예에 관한 실기를 그림과 설명으로 훤히 풀어낸 책이라는 뜻. 이덕무에게는 문헌을 고증하는 책임이, 박제가에게는 고증과 함께 글씨를 쓰는 일이, 그리고 백동수에게는 무예를 실기로 고증하는 일과 편찬 감독이 맡겨졌다. 당시 백동수는 40대 중반으로 국왕 호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 초관의 직책에 있었다. 일개 초관에 불과한 인물에게 조선 병서의 전범이 될 책의 총책임을 맡기다니! 그러나 그가 당대 창검무예의 최고수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그다지 놀랄 일만도 아니다.

 

장수 집안의 서자인 그는 십대부터 협객들을 찾아다니며 무예를 익혔다. 특히 당대 최고의 검객 김광택을 스승으로 모시고 검의 원리를 깨우쳤다고 한다.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하나, 당시는 문반 엘리트가 판치는 세상이었다. 연암이 한 글에서 말했듯이,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 죽으려는 뜻은 사대부에게도 부끄럽지 않았건만, 시운은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무인에다 서자, 결국 그 또한 조선왕조 마이너의 일원이었을 뿐이다. 그가 연암 그룹과 일찌감치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일 터이다. 이덕무와는 처남매부지간이자 평생의 지기였고, 박제가(朴齊家)와는 둘도 없는 친구였으며, 연암과도 역시 그러했다. 이들의 얼굴은 이 책 곳곳에서 마주치게 될 것이다. 마치 영화의 카메오처럼.

 

 

박제가(위쪽), 홍대용(洪大容, 아래쪽)의 초상

박제가 초상은 1790년 청나라 화가 나빙이 그린 것이다. 화질이 안 좋아 박제가의 풍모가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서자 출신이었지만 연암그룹의 핵심멤버였고, 북학파 가운데서도 급진파에 속했다. 청문명을 동경한 나머지 중국어 공용론을 펼치기도 했다. 홍대용은 연암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18세기 사상사의 빛나는 별, 지전설, 지동설 등 당시로선 파천황적 이론을 펼친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하다. 엄성이 그린 이 초상화의 우아하고 부드러운 터치가 홍대용의 풍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엄성은 홍대용(洪大容)이 유리창에서 사귄 중국인 친구 중의 하나로, 죽을 때 홍대용이 보내준 먹과 향을 가슴에 품고서 숨을 거두었다. 그것만으로도 둘 사이의 우정이 얼마나 뜨겁고 절절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붓끝에 담긴 엄성의 사랑을 느껴보시기를!

 

 

인용

목차

열하일기

문체반정

박지원 이력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