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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3장 우발적인 마주침 열하, 소문의 회오리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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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3장 우발적인 마주침 열하, 소문의 회오리②

건방진방랑자 2021. 7. 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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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회오리

 

 

한때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 이 촛불사건은 사실 서곡에 불과했다. 이후 열하일기는 언제나 소문의 회오리를 몰고 다닌다. ‘오랑캐의 연호를 썼다’, ‘우스갯소리로 세상을 유희했다’, ‘패관기서로 고문을 망쳐버렸다등등. 그 하이라이트가 문체반정(文體反正)’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웬만큼 세상의 시시비비에 단련된 연암도 이렇게 한탄했을 정도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느냐? 책을 절반도 집필하기 전에 벌써 남들이 그걸 돌려가며 베껴 책이 세상에 널리 유포될 줄을. 이미 회수할 수도 없게 된 거지. 처음에는 심히 놀라고 후회하여 가슴을 치며 한탄했지만, 나중에는 어쩔 도리 없어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책을 구경한 적도 없으면서 남들을 따라 이 책을 헐뜯고 비방하는 자들이야 난들 어떡하겠느냐?” 한마디로 한치의 명성이 높아지면, 비방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는 역비례 현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 무엇이 그토록 열하일기를 소문의 한가운데에 있게 했던 것일까?

 

분명 열하일기문제적인텍스트다. 어떤 방향에서건 사람들을 자극할 요소들을 무한히 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악의적 비방이든 애정어린 비판이든 열하일기의 진면목을 본 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대개 풍속이 다름에 따라 보고 듣는 게 낯설었으므로 인정물태(人情物態)를 곡진히 묘사하려다보니 부득불 우스갯소리를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거나, “열하일기의 독자들은 이 책의 본질을 알지 못한 채 대개 기이한 이야기나 우스갯소리를 써놓은 책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식의 평가만해도 그렇다. 상당히 우호적임에도 열하일기에센스인 유머와 해학을 서술의 곁다리 정도로만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특장에 대해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열하일기가 당대 지식인들을 당혹스럽게 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보다 무수한 흐름이 중첩되는 유연성에 있을 것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언제 어디서나 물음을 구성할 수 있는 도저한 열정. ‘산천, 성곽, 배와 수레, 각종 생활도구, 저자와 점포, 서민들이 사는 동네, 농사, 도자기 굽는 가마, 언어, 의복 등등에서 역사, 지리, 철학 등 고담준론(高談峻論)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하는 박람강기(博覽强記)’.

 

더욱이 그것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윤색인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연암 자신이 도처에서 밝히고 있듯이, 모험에 찬 여정 속에서 기억과 기록이 많은 부분 사라지거나 희미해졌을 뿐 아니라, 도저히 한 사람의 관찰과 기억이라고 보기 어려운 내용이 수두룩하게 담겨 있는 까닭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호질(虎叱)이다. 연암은 관내정사(關內程史)에서 한 점포의 벽에 붙은 기문(奇文)’을 일행인 정군과 함께 베꼈는 데, “사관에 돌아와 불을 밝히고 다시 훑어 본즉, 정군이 베낀 곳에 그릇된 곳이 수없이 많을 뿐만 아니라 빠뜨린 글자와 글귀가 있어서 전혀 맥이 닿지 않으므로 대략 내 뜻으로 고치고 보충해서 한 편을 만들었다[及還寓, 點燈閱視, 鄭之所謄, 無數誤書, 漏落字句, 全不成文理. 故略以己意點綴爲篇焉]”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남아 있는 텍스트 중에서 대체 어디까지가 정군이 베낀 것이며, 어디까지가 연암의 윤색이란 말인가(Nobody knows!).

 

어디 호질(虎叱)만 그럴까. 양매시화(楊梅詩話)에서는 필담했던 초고 가운데 겨우 10분의 3, 4만이 남았는데, 더러는 술취한 뒤에 이룩된 난초’, ‘저무는 햇빛에 달린 필적이었다니, 이쯤 되면 사실과 허구를 분별하기란 요원할 터, 아니 이 마당에 분별 자체가 무의미하다. 게다가 수많은 판본이 떠돌면서 윤색이 가해졌던바, 그야말로 열하일기는 미완의 텍스트인 것. 물론 이때 미완성이란 결여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완결된 체계를 계속 거부하는, 그리하여 수많은 의미들을 생성해낸다는 의미에서의 그것이다. 열하일기를 둘러싼 무성한 스캔들은 그 의미들이 좌충우돌하면서 일으킨 사소한’(!) 잡음에 불과하다.

 

 

 

 

인용

목차

열하일기

문체반정

박지원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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