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시선으로
‘이목(耳目)의 누(累)’는 시선의 문제로 수렴된다. 시선은 대상을 보는 주체의 관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공고해질 경우, 견고한 표상의 장벽이 구축된다. 소중화(小中華)주의나 ‘레드 콤플레스’ 등 한 시대를 관통하는 이데올로기 또한 결국은 시선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연암의 패러독스는 무엇보다 시선의 자유로운 이동을 수반한다. 밀운성에서 한 아전의 집에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정사가 불러서 청심환 한 알을 주자 여러 번 절을 해댄다. 몹시 놀라고 두려워하는 기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막 잠이 들었을 즈음 문을 두드리는 이가 있어 나가보니 사람 지껄이는 소리와 말 우는 소리가 시끌벅적한데, 모두 생전 처음 듣는 것이었을 테니. 게다가 문을 열자 벌떼처럼 뜰을 가득 메우는 사람들, 이들은 대체 어디 사람들인가. 고려인이라곤 난생 처음이니, 안남 사람인지 일본 사람인지, 유구 사람인지 섬라 사람인지 분간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략)
正使招給一丸淸心 則無數叩拜 有驚怖戰掉之狀 盖方其睡際 有叩門者 人喧馬鳴 想應初聞之異聲 及其開門 則蜂擁盈庭者 是何等人也 所謂高麗無因而至此 則北路之所初見也 想應莫辨安南日本琉球暹羅 (中略)
아마도 그는 같은 나라 사람이 함께 왔다고는 생각지 못하고, 남만(南蠻)ㆍ북적(北狄)ㆍ동이(東夷)ㆍ서융(西戎) 등 사방의 오랑캐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줄로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놀랍고 떨리지 않으리오. 백주 대낮이라 해도 넋을 잃을 지경이거늘, 하물며 때 아닌 밤중에랴. 깨어 앉았을 때라도 놀라 자빠질 지경이거늘 하물며 잠결에서였으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여든 살 노인일지라도 벌벌 떨며 까무러치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인데 더구나 열여덟 살, 약관도 되지 못한 어린 사내였음에랴.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彼必不識同國同來 想應分視 南蠻北狄東夷西戎 都入渠家 安得不驚怖戰掉 雖白書惝怳矣 况深夜乎 雖醒坐駭惑矣 况睡際乎 奚特十八歲弱冠穉男也
바로 두 번 째 문장부터 젊은 주인의 눈으로 초점이 이동되었다. 즉, 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일행을 되비추고 있는 것이다. 열여덟 이국 젊은이의 눈에 느닷없이, 그것도 한밤중 잠결에 들이닥친 조선인들이 대체 어떻게 보였을까? 한마디로 그건 동서남북 사방 오랑캐들이 뒤섞여 있는 아수라장에 다름 아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소중화(小中華)의식으로 무장한 집단이건만, 시선만 바꿔버리면 졸지에 ‘야만인 총출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 기묘한 역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