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체질 총출동!
나는 ‘용가리 통뼈’다. 너무 놀라지들 마시라. 마흔이 넘도록 뼈를 다치거나 삔 적이 거의 없기에 하는 말이다. 이번 여행중에도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첫관문이 있다는 발해만(渤海灣)엘 갔다가 택시기사의 실수로 바퀴에 발목을 밟히는 ‘참사’를 당했건만, 5분 만에 멀쩡해졌다. 강원도 산골 출신이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신장이 튼튼해서 그렇단다. 사상의학적으로 보면 신장이 튼튼한 사람은 소음인에 해당된다. 소음인, 차분하고 내성적이다. 내가? 그럴 리가! 하긴, 어린 시절엔 하루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그랬던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아니나 다를까, 신장 못잖게 폐가 강하다. 날카로운 인상에 목소리가 높고 성질이 좀 급한 편이다. 에둘러가기보다 직선적으로 돌파하는 걸 좋아한다. 이건 태양인의 특질이다. 어설프게 종합해 보면 ‘소음성 태양인’에 해당한다. 연암이 ‘순양의 기품을 타고난 태양인’이라면 나는 서로 상반되는 특징이 뒤섞인 ‘음양파탄지인’인 것. 한마디로 좀 질이 떨어지는 셈이다.
장기여행을 하다보면 교양이나 지식보다 기질적 차이가 원초적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우리 일행 또한 그랬다.
Y, 소음인, 별명 개미허리, 여성들 앞에서 말이 많아지는 허점(혹은 강점)이 있긴 하나, 매사에 치밀하고 성실하다. 검소한 생활이 몸에 냈다.
J, 태음인, 속이 깊고 무던해서, 갈등이 불거질 때 완충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곰과 관련된 별명을 여러 개 갖고 있다. 이번 여행 중 얻은 것으론 ‘베어 사피엔스’, ‘호모 베어스’ 등이다.
우리들의 ‘눈과 입’, ‘발’이 되어준 L, 소양인, 음악, 차, 컴퓨터 등 다방면에 프로다. 그러니만큼 언제나 멋진 형식을 중시한다. ‘폼생폼사’! —— 그의 신념이자 행동강령이다.
결국 우리 넷은 사상체질이 총망라된 집합체였던 것. 서로 다르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하지만 한번 부딪히면 아무도 못말리게 된다. 전장터는 주로 밥상이었다.
L: 멋진 여행을 즐기려면 돈이 좀 들더라도 각지역 최고 요리를 맛봐야죠.
Y: 1원짜리 쿤둔(만두)도 괜찮은데.
J: 전 아무거나 좋아요. 많이 먹을 수만 있다면.
그럼 나는? “싸고 간단하게 먹어!”하다가, 실랑이가 길어지면, “아, 뭘 먹든 그게 뭐가 중요해. 남기지나 마!” 한다. 결국 전선은 L과 나 사이에 그어지고, 우리는 거의 매 끼니마다 처절한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뭐, 그깟걸 갖고 그러냐고? 모르는 말씀! 시쳇말로 다 먹자고 하는 일 아닌가. 시인 백무산도 말한 적이 있다. “밥상 위에는 모든 것이 있다”고, 권력, 자본, 그리고 혁명까지도.
중국 사람들은 정말(!) 많이 먹는다. 1인분이 보통 우리들 3.4인분이 넘을 정도다. 놀라운 건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을 버린다는 거다. 우리나라 음식쓰레기가 연간 10조원에 달한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던 나는 중국인들의 그런 ‘엽기적 풍토’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중국의 대지는 사막화되어 가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오는 부해(腐海)를 연상시킬 정도다. 문명의 오염으로 유독성의 기운을 내뿜는 균류들이 번성하는 불모의 생태계, 부해. 근데 그토록 병든 대지에 그 엄청난 음식쓰레기를 퍼부어 대다니! 이거야말로 ‘죽음을 향한 질주’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연암은 “청문명의 핵심은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瓦礫糞壤 都是壯觀]”고 했다. ‘깨진 기와’와 ‘버려진 말똥’조차 소중하게 다루어 ‘천하의 아름다운 무늬’를 만드는 데 대한 경이의 표현이었다. 연암을 흉내내어 말해 보면, 21세기 중국 문명의 미래는 음식쓰레기에 달려있다. 음식쓰레기야말로 인간의 탐욕과 자연에 대한 착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프리즘이기 때문이다. 이런 습속을 전복하지 않는 한, 중국에, 아니 인류에게 희망은 없다. 단연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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