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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다시 열하로!(2012년 여름) - 인트로: 문득, 망망대해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다시 열하로!(2012년 여름) - 인트로: 문득, 망망대해

건방진방랑자 2021. 7. 1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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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하로!(2012년 여름)

 

 

인트로: 문득, 망망대해

 

 

2012(임진) 7(정미) 20(임오) 오후 5, 인천항 연안부두 제1 터미널에서 나는 대형선박에 몸을 실었다. 난생 처음하는 항해였다. 강원도 산간 지역 출신이라 그런지 그간 바다와는 통 인연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바다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었다는 편이 맞겠다. 내게 있어 바다는 그저 막막하고 심심한 곳이었다. 게다가 뱃멀미에 대한 공포도 적지 않았다. 열하일기의 시발점이 단동이고 거기에 가기 위해선 배를 타야 한다는 걸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늘 비행기를 타고 심양으로 간 다음 거꾸로 요양 쪽을 되짚는 방식으로 여행을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연유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마침내 바다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우째 이런 일이?

 

인생만사 다 그러하듯 시작은 정말 미미했다. 2010년 봄 우연한 기회에 경인TV(OBS)의 한 프로그램에서 열하일기강의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담당한 한성환 PD열하일기꽂힌것이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해서 그 다음 해(2011), 열하일기다큐멘터리를 위한 프로젝트를 발주한 것이다. 그거야 참 좋은 일인데, 그 프로그램의 해설자를 나로 설정한 것이다. !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여행만으로도 벅찬데 다큐멘터리를 찍어야 하다니. 열하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방송체질이 아닌 데다 당시 나의 스케줄상 도저히 불가능했다. 이런 마음이 통했던지 다행히 프로젝트가 불발이 되었다. PD는 몹시 서운해했지만 나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지나가나보다 했는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한PD의 열정은 전혀 식지 않았던 것이다. 2012년에 다시 시도를 했고 결국은 성사가 되고 말았다. 완전 방심하고 있다가 한방 먹은 셈이다. 그 전해에 대충 허락을 한 셈이라 빼도 박도 못할 처지였다. 결국 나는 반쯤 끌려가는 상태로 여행에 동참했고, 720일 여름의 막바지에 단동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싣게 된 것이다.

 

나에게 할당된 일정은 720일에서 86일까지! 방송을 찍기에는 빠듯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긴 시간을 비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원고며 강의 기타 등등을 미리 해두느라 파김치가 되기 직전이었다. 그야말로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망망대해인 형국이었다. 그런데 갑판 위에서 헤아려보니 열하일기리라이팅한 해로부터 딱 10년째 되는 때였다. ! 그렇다면 시절인연이 나로 하여금 이 망망대해를 건너게 했다는 뜻인가?

 

다큐팀이라 일행들이 만만치 않다. 총감독인 한PD를 비롯하여 촬영을 맡은 베테랑 장PD와 김PD, 그리고 젊은 피 양PD, 마지막으로 나의 동반출연자이자 미술학도인 사랑이(PD와 사랑이는 28살로 동갑내기다). 나를 포함하여 6명이다. 약간의 어색함과 설렘을 지닌 채 일행들은 갑판 위에서 제각각의 상념에 젖어 있었다. 인천대교를 지날 즈음이었다. 바다와 인천대교, 그리고 갈매기떼가 연출하는 장관을 음미하면서 한창 무드를 잡고 있는데 갈매기 한 마리가 나한테 똥을 뿌리고 지나갔다. 이런! 버럭 화가 났지만 혹시 행운의 조짐이 아닐까 싶어서 꾹 참았다(갈매기들한테는 똥이 선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다른 일행은 일반여객실에 묵고 나와 사랑이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vip룸을 쓰는 특권을 누렸다. 실컷 자고 일어났는데 사방이 오직 물이다. 갑판에 나오니 운무(雲霧)가 자욱하다. 그야말로 망망대해다. 비행기는 구름과 땅의 변화무쌍한 흐름을 음미할 수 있고, 기차여행은 차창 밖의 풍경이 무상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바다에는 정거장도 표지판도 신호등도 없다. 간간히 부표와 고기잡이 배만 떠다닐 뿐,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하늘인지조차 구별되지 않는다. 대체 이 텅빈 곳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가는 거지? 문득 호곡장론(好哭場論)의 한 대목이 스쳐 지나간다. 열흘이 가도 산이 보이지 않는 요동벌판에 들어서자 연암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인생이란 본디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吾今日始知人生本無依附, 只得頂天踏地而行矣]”을 대체 여기에 처음 길을 낸 이는 누구일까.

 

하긴 지금 나의 여행도 마찬가지 아닌가, 길이 있어 나섰다기보다 문득 나서고 보니 길 위에 서있는 셈이다. 그런데 마침 10년째라고? 누군가는 생각하리라.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출간 10주년 기념으로 이 여행을 계획했을 것이라고 물론, 전적으로 오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내가 시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시절이 나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10여 년 전 처음 열하일기를 만날때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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