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와 고삐 없는 소
‘무비공(無鼻孔)’이 아니라 ‘무천비공(無穿鼻孔)’이라는 말이죠(경허의 오도송에 ‘무비공’이라는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무천비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콧구멍을 뚫는 ‘코뚜레’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죠. 소는 원래 힘이 세고, 거대한 동물이라서 인간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동물이 아닙니다. 소가 맹수라면 호랑이도 간단히 제압할 수 있습니다. 소라는 거대한 동물이 그토록 유순하게 인간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는 동물이 된 것은 바로 고삐(코뚜레와 당기는 줄을 합한 개념)의 발명으로 인한 것입니다. ‘비공을 뚫는다’는 것은 두 콧구멍 사이의 ‘비중격(鼻中隔)’을 뚫는 것인데 그곳은 너무 깊어도 아니 되고 너무 얕아도 아니 됩니다. 비중격막은 얇아서 뚫기에 적합한 곳이지만, 그곳은 예민한 신경이 잔뜩 분포되어 소로 하여금 통증을 느끼게 하며, 고삐를 잡으면 사람말을 잘 듣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삐는 거대한 소를 말 잘 듣게 만드는, 인간이 고안해낸 비장의 무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고삐는 춘추전국시대 문헌에 이미 나오고 있으며, 비중격을 뚫는 시기는 소가 태어나서 10~12달 사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통 속박, 구속을 나타내는 말로써 ‘기미(羈縻)’라는 말을 쓰는데, 이 중에 ‘미(縻)’가 고삐를 의미하는 것이고, ‘기(羈)’는 고삐와 연결되어 얼굴 전체에 씌우는 굴레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소는 기미로써 인간에게 제압되는 것이죠. 경허는 1미터 90이 넘는 거구의 사나이요, 소와 같은 힘을 가진 사나이였습니다. 그를 교육시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에게 고삐를 씌우기를 원하겠죠. 이러한 문제상황을 눈치챈 이 처사는 그에게 새로운 대각의 암시를 보낸 것이죠. 이 처사야말로 대보살이었습니다. 소가 되어도 고삐 없는 소가 되어라! 이것은 자유자재의 해탈인의 경지를 나타내는 아주 비근한 표현입니다. 경허의 삶 그 자체가 고삐 없는 삶이요, 기미의 속박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스스로 대각을 통하여 창조한 삶이었습니다.
나의 이러한 해석은 경허가 취한 삶의 태도에서 곧 드러남으로써 그 정당성을 얻습니다. 그가 대각의 대소(大笑)를 허공에 날린 것은 눈발이 휘날리는 기묘년(1879) 겨울 11월 보름이었습니다. 그가 쓴 오도송을 보면 그 시작과 끝이 같은 말로 되어 있습니다.
四顧無人 衣鉢誰傳 사고무인 의발수전 |
아~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구나!! 의발을 누구에게 전하랴! |
衣鉢誰傳 四顧無人 의발수전 사고무인 |
의발을 누구에게 전하랴!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구나! |
(중략) | |
嗚呼! 已矣. 오호! 이의. |
슬프도다!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
夫衣鉢誰傳? 부의발수전? |
대저 의발을 누구에게 전하랴! |
四顧無人 四顧無人 사고무인, 사고무인 |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구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구나! |
衣鉢誰傳 의발수전 |
대저 의발을 누구에게 전하랴!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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