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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 다이어리, 대책 없는 기다림. 무적의(?) 학습 비법 - 1. 영화야말로 철하고가 접신할 수 있는 안테나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대책 없는 기다림. 무적의(?) 학습 비법 - 1. 영화야말로 철하고가 접신할 수 있는 안테나

건방진방랑자 2021. 7. 2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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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는 기다림. 무적의(?) 학습 비법

 

 

1. 영화야말로 철하고가 접신할 수 있는 안테나

 

 

스무 살 무렵, ‘나는 너무 무지하다는 생각 때문에 잠 못 이루며 한 3년쯤 산에 들어가 책만 읽다. 오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책을 열심히 못 읽기 때문에 나의 무지가 구원받지 못하는 거라 믿었다. ‘언젠가시간이 허락되면 오직 책장에서만 줄기차게 서식하고 있는 필독도서 리스트를 진정으로 마스터하리라. 그러면 바람직한 지식인까지는 아니어도 부끄러운 책상물림 신세는 변하겠지? 하지만 그 언젠가의 기적은 10여년이 지나도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앞으로도 실현되지 못할 것 같다. 스무 살의 무지막지한 탐독의 욕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최근에야 나는 그 탐독의 불가능성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내 몸으로 직접 겪는 경험과 사유의 마사지를 받지 못하면 어떤 위대한 철학도 두터운 편견의 각질을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을.

 

그 후론 속독이나 다독을 향한 미련을 말끔히 접었다. 아무리 많이, 아무리 빨리 읽으려 해도 내 몸이 그렇게 빠르게 철학의 영양주사를 흡수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대신 내 삶의 리듬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풍부한 지식의 비타민을 섭취해도 내 몸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순간이 있고, 지하철에서 짬짬이 읽은 논문의 각주 한 줄에서조차 무한한 영감을 받는 순간이 있다. 도저히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책도 꾸역꾸역 몇 달에 걸쳐 읽고 나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후에 그 책의 메시지가 비로소 내 마음에 다정하게 문을 두드리는 순간이 있다.

 

불꽃같은 연애처럼 뜨거운 온도로 말을 거는 철학의 메시지가 있는가 하면, 할아버지의 유언처럼 나직하고 그윽한 목소리로 천천히 내 삶의 무늬를 바꾸는 철학의 메시지도 있었다. 속독(速讀)이나 다독(多讀)보다 효과적인 것은 대책 없는 기다림이었다. 언젠가 저 철학의 난해하기 그지없는 독백이 나에게 직접 보내는 친밀한 문자메시지처럼 느껴질 때까지 천천히 읽고 느리게 되새김질하기, 이해할 수 없다고 다급하게 책을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일단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고분고분 무작정 하염없이 읽기, 때로는 거침없는 망각의 전법이야말로 효과적이었다. 언젠가 줄을 박박 치고 메모까지 열심히 해가며 읽은 책을 읽었다는 사실조차 까먹은 채 다시 펼쳐봤을 때의 기쁨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그제야 그 책이 진정한 내 벗이 되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가 난데 없이 내 삶의 울타리로 귀환한 철학의 메시지들은 드디어 3인칭의 객관적 서술이 아니라 1인칭의 내밀한 고백의 언어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삶의 리듬만으로 철학의 해일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전히 내게 철학은 어렵고 무겁고 버겁다. 그러나 내 삶의 이야기뿐 아니라 소설이나 영화 같은 타인의 이야기와 철학을 우연히 접속시키기 시작하자 철학의 언어는 좀 더 친밀한 어투로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영화야말로 철학과 접신(接神)’할 수 있는,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비치된 일상 속의 안테나였다. 철학의 토양에 영화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하자 내 마음의 화분에서 또 다른 이야기의 새싹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대리석처럼 차갑고 견고해 보이던 철학은 영화의 인물과 스토리와 함께 사람의 얼굴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영화는 철학의 논리와 개념을 통해 더욱 풍요로운 의미의 네트워크를 생성하기 시작했다. 시네필 다이어리1, 2권은 바로 그러한 행복한 접신의 순간을 기록한 영화와 철학의 메신저 토킹(messenger talking)’이다.

 

 

 

 

인용

목차

시네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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