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영화 속 주인공과 우리들의 닮은 상처
10대 시절에는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20대 시절이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어엿한(?) 30대가 되자 문득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행복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굳이 순위를 따진다면 다는 ‘대단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결국,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이제는 대단한 사람이나 사랑받는 사람보다 ‘그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임을 절감한다. 『시네필 다이어리』를 연재하면서 나는 미처 ‘좋은 사람’이 되기도 전에 덜컥 ‘행복한 사람’이 되어버린 듯하다. 너무 빨리 글 쓰는 사람의 행복을 알아버린 것 같아, 그 행복만큼 커다란 마음의 빚을 지게 된 셈이다.
『시네필 다이어리』와 함께하면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우리 마음속에서 상영되는 무의식의 필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 무의식의 필름 속에서만은 우리는 누구나 영화 속 주인공이 있다. 한 땀 한 땀 느릿느릿 글을 쓰면서, 한 시대의 집단적 무의식을 생산하고 그 시대에 지울 수 없는 작품의 아우라를 각인하는 영화의 힘을 느끼며 혼자 웃고 울었다. 나 자신이 직접 발로 뛴 경험이란 보잘것없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의 체험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내 것처럼 느껴지고 나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 못지않게 영화 속 사건들이 어느덧 내밀한 추억으로 전이되어, 그 자체로 아프고 그 자체로 소중한 ‘기억’의 집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영화 속 주인공의 추억은 보는 우리는, 그 훔쳐보기의 짜릿한 쾌락이 끝난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오래전 영화 속 주인공이 변해버린 우리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서글픈 환각을 느끼곤 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우리들과 ‘닮은 상처’를 앓아본 영혼의 샴쌍둥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수많은 영화 속 주인공들과 함께 지울 수 없는 상처의 끈으로 연대한다. 현대인은 가상화한 캐릭터의 고통과 슬픔을 마치 자기 것처럼 절실하게 앓는 재능을 갖게 되었다. 영화 속 캐릭터의 추억까지 자신의 추억으로 공유하면서 우리는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없는 타인의 추억까지 함께 앓게 된 것이다. ‘옛날 옛적에’의 문화적 파괴력을 되살린 것도 영화가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이 아닐까. 분명히 실체로 있었던 일도 옛날 옛적에 있었던 일로 만들어버리면 신화적 아우라를 지니게 되고, 아무리 심각한 사건도 우화처럼 에둘러 말하기가 가능해지니 말이다. ‘옛날 옛적에’의 아득한 프레임 속에, 아직도 아가미를 펄떡이는 생생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오려 넣는 순간, 도저히 표현하기 힘들었던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조차도 전달 가능하고 소통 가능하고 교감 가능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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