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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시간을 잴 수 없는 시간의 무한 탈주] - 8. 돌아가는 시간과 돌아가지 않는 마음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시간을 잴 수 없는 시간의 무한 탈주] - 8. 돌아가는 시간과 돌아가지 않는 마음

건방진방랑자 2021. 7. 2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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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돌아가는 시간과 돌아가지 않는 마음

 

 

마코토: 고스케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 잘 챙겨주겠지?

치아키: 그럴 녀석이지.

마코토: 그럼 같이 야구 못하잖아.

치아키: 캐치볼을 야구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아?

마코토: 왠지 쭉 셋이서 같이 있을 것만 같았는데. 지각해서 고스케한테 잔소리 듣고, 공 못 잡는다고 치아키한테 놀림 받고…….

치아키: 마코토…….

마코토: ?

치아키: 나랑……. 사귈래?

 

 

마코토는 생각지도 못한 치아키의 고백에 당황한다. 왠지 쭉 셋이서 같이 있을 것만 같았던 그 느낌, 고스케의 잔소리와 치아키의 핀잔 속에서 은근히 보호받는 듯한 그 행복한 느낌. 그것은 커플이라는 성숙한 관계, 말하자면 자신의 감정책임을 져야 하는 관계와는 거리가 먼, 규정되지 않은 모호한 관계의 기쁨이었다. 마코토는 이 미묘한 우정의 감정을 언제까지나 즐기고 싶었는데, 치아키의 고백은 이 내밀한 평화를 깨뜨리는 직격탄이 되어버린다. 마코토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 앞에 어쩔 줄 모르다가 순간적인 재치(?)를 발휘하여 타임 리프를 요긴하게 써먹기로 한다. 마코토는 치아키가 마음을 고백하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 어떻게든 치아키의 고백을 막아보려고 동분서주한다. 그런데 타임 리프를 한 번 시도해서 우여곡절 끝에 치아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려 했는데도, 몇 분이 지나자 치아키는 또 다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마코토, 나랑 사귈래?”

 

 

 

 

마코토는 어떻게든 치아키의 고백을 무화시키기 위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천진한 잔머리를 굴려보지만 몇 번이나 그 힘겨운 타임 리프를 반복해도 치아키의 진심은 변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웃음이 멈추지 않는 즐거운 나날들이었는데, 고스케를 좋아한다는 소녀가 생기고 설상가상으로 치아키는 자신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마코토는 아직 완전한 여성도 완전한 어른도 아닌 아이와 어른의 사이에 있는 존재다. 친구들과 캐치볼을 할 때는 영락없는 선머슴 같고 혼자 샤워를 하며 비누거품놀이를 할 때는 영락없는 어린애 같다. 이미 여성의 몸으로 다 자란 그녀의 육체와 영원히 자라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천진한 표정은 매혹적인 언밸런스 효과를 발휘한다.

 

그녀는 무언가 결정된삶을 아직 고민해보지 않았다. 이대로 아무런 고민 없이, 그저 한없이 유유자적하게, 언제까지나 캐치볼을 하면서 셋이서 소풍 나온 기분으로 살고 싶은데. , 이렇게 심각한 고민을 던져주다니, 갑자기 치아키가 미워지는 마코토. 세상에, ‘타임 리프라는 마법의 지팡이로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있단 말인가. 마코토는 깨닫는다. 시계 속의 시간이 같다 해도, 똑같은 713일 오후 해질 무렵으로 돌아갈 수는 있어도, 치아키의 고백을 듣기 이전의 마음으로는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치아키는 자신의 고백을 잊을 수 있어도 이미 미래에서 치아키의 고백을 들은 마코토는 그 고백의 이상한 설렘을, 알 수 없는 혼돈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것을. 내 영혼에 새겨진 그 고백의 흔적을 깔끔히 도려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의 타임 리프는 불가능한 걸까.

 

 

물리학자 볼츠만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시간의 화살은 개별적인 세계들/()들 내에서만, 그리고 이 계들 내에서 규정되는 현재에 관련해서만 유효하다고 말한다. “우주 전체에 있어, 시간의 두 방향은 공간에서처럼 구분할 수 없다. 위도 아래도 없다” (, 높이도 깊이도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크로노스와 아이온의 대립을 다시 발견한다. 크로노스는 유일하게 실존하는 현재이며, 현재들이 부분적인 세계들/계들 내에서 이어지는 한에서, 언제나 과거에서 미래로 흐름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자신의 두 인도된 차원들로 간주하는 시간이다. 아이온은 추상적인 순간의 무한한 분할 내에서의 과거-미래이며, 언제까지나 현재를 피해가면서 끊임없이 두 방향으로 동시에 분해한다.

-들뢰즈, 이정우 역, 의미의 논리, 한길사, 1999,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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