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크로노스의 시간과 아이온의 시간
신들은 시간을 구별하는 법을 처음 알아낸 사람을 저주한다.
또한 이곳에 해시계를 세운 사람도 저주한다.
나의 하루를 마구 깎고 쪼개어
작은 조각들로 만들었다고!
어렸을 때 나의 배는 나의 해시계였다.
어느 누구의 배보다 확실하고 올바르고 정확한 시계였다.
이 시계는 내게
밥 먹을 때를 말해줬다.
하지만 지금은 태양이 허락하지 않으면
왜, 언제 밥을 먹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시내에는 이런 저주스런 해시계들이 가득하다.
-기원전 3세기 후반 로마의 희극작가 플라우투스, 스튜어트 매크리디 엮음, 남경태 역, 『시간의 발견』, 휴머니스트, 2002, 145~146쪽.
시간이 ‘의식’되는 순간, 시간을 ‘훈련’해야 한다고 느끼는 순간, 인간은 ‘내 몸이 느끼는 시간’의 고유성이 파괴되는 경험을 했다. 인간은 시계를 발명하여 시간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지만 거꾸로 그 ‘발명된 시간’으로 인해 시간에 지배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시간표를 지켜야 하니까’ 하고 싶은 일을 억지로 끝내야 하는 모든 순간, 우리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경험하는 셈이다.
아이온의 시간에서 ‘고정된 현재’란 존재할 수 없다.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줄 세우는 일도 불가능하다. 아이온의 시간은 ‘상태(being)’가 아니라 ‘과정(becoming)’, 고정된 상황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건의 생성 속에서 꿈틀대는 존재의 운동을 가정한다. 시간이 ‘고정된 현재’로 얼어붙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과거와 미래로 무한히 열어놓는 시간. 그것이 아이온의 시간이다.
근대적 시간관은 개개인의 이질적이고 상이한 시간을 국가의 시간, 학교의 시간, 군대의 시간, 교회의 시간, 회사의 시간, 병원의 시간 등 무수한 ‘집단의 시간’으로 포획하려 한다. 그러나 이 크로노스적 시간에 자신의 신체를 완전히 길들이지 못하는 인간은 매 순간 ‘집단의 시간’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생체 시간을, 심리적 시간을 느낀다. 우리는 권태를 느낄수록,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수록, 참을 수 없이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느낀다. 직선적 시간의 중력으로 인간을 빨아들이려는 모든 권력, 그것이 바로 크로노스의 시간을 구성한다.
반대로 영원히 이 순간에 빠져들고 싶은 희열의 시간, 예를 들면 연인과 키스할 때, 우리는 이 순간이 곧 영원으로, 무한한 시간으로 확장되는 듯한 열락에 들뜬다. 굳이 무한을 가정할 필요도 없이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충만한 시간. 지금이 몇 시인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완전히 잊어버리는 망아(忘我)의 상태. 그럴 때 우리의 삶에는 아이온의 시간이 깃든다. 죽음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인생의 모든 필름이 한꺼번에 돌아가는 듯한 느낌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현재-미래를 가르는 인위적 ․ 관습적 경계가 사라지고,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불가해한 시간이 이제야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성좌(星座)’를 그릴 때. 우리는 아이온의 시간에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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