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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스트 교육학 - 10. ①강: 자립과 무지란 단어를 새롭게 정의하다 본문

연재/배움과 삶

트위스트 교육학 - 10. ①강: 자립과 무지란 단어를 새롭게 정의하다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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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자립과 무지란 단어를 새롭게 정의하다

 

 

하품수련의 역설과 배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배운다는 게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완벽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그건 미래의 가치를 위해서 배우는 것도, 수단을 얻기 위해 배우는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배움의 가치를 알기 위해선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엎어야 하듯이, 기존의 단어들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 [세얼간이]의 총장이 말하는 인재상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립한 인간상이다.

 

 

 

자립은 홀로 섦이 아니라, 함께 섦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섭쌤은 고삐를 당기듯, 바로 자립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음을 던졌다. 당연히 그 질문에 대해서는 경제적인 독립’,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순간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자립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내가 자립하지 못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은 철학적인 정의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동섭쌤은 무라카미 류村上龍(1952~)최후의 가족에 잘 나타나 있듯이, 내가 누군가를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함과 동시에 누군가도 나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 자립입니다. 다른 사람 중에 니가 없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자립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바로 앞에 계신 분이 그렇다면 북한의 김정은 같은 경우 자립한 사람이라 할 수 있나요?”라고 그런 정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문을 던졌다. 그 말을 하신 분도 그런 반문 자체가 억지스럽다고는 생각했을 것이다. 관계를 맺은 후에 니가 없으면 안 돼!’라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 불가능한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과 분위기에 휩쓸려(세뇌되어) ‘위대한 령도자라는 환상으로 추종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동섭쌤이 자립을 이와 같이 정의한 이유는 지금 사회가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회사의 한 마디면 언제든 해외로 나갈 수 있고, 가족과 남남처럼 데면데면한 고립적인 인간을 원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회에서의 자립은 기업이 그토록 원하는 가족에도 얽매이지 않고, 언제든 기업의 요구에 따라줄 수 있는 철저히 파편화된 개인이니 말이다. 즉 그들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존재들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그런 식의 자립에 대한 정의를 광범위하게 유포하고 꼭 그래야 성숙한 사람인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런 상황을 알기에 동섭쌤은 관계성을 통해 자신이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이 자립한 존재라는 새로운 정의를 하며,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에 맞선 것이다.

 

 

나의 존재가 너의 존재와의 연결 속에 선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게 바로 자립이다.

 

 

 

무지란 지식이 꽉 차 있는 상태이며, 엄청난 노력의 결과

 

이에 탄력을 받았는지, 무지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얘기해준다.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무지하다고 생각하는데, 각 학자들의 다른 관점을 얘기해주며 다시 생각해보길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롤랑바르트는 지식이 꽉 차서 더 이상 들어갈 것이 없는 것이 무지다라고 말했으며, 우치다쌤은 “‘알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한결같이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런 정의를 듣다 보면 당연히 황당할 수밖에 없다. 무지 또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 그렇고, 지식이 꽉 찼기 때문이라는 말이 그렇다. 그건 여태껏 우리가 상식처럼 받아들인 정의와는 완전히 상반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롤랑바르트의 말대로 생각해본다면 소위 지식인들처럼 자신들의 생각만을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무지한 사람들이라 생각해볼 수 있게 되며, 우치다쌤의 말대로라면 하나의 사상이나 종교만을 맹목적으로 믿으며 다양한 이야기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알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사람들이야말로 무지한 사람들이라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단어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면 이처럼 세상을 보는 눈도,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진다.

 

 

무지는 알고 싶지 않다고 노력한 결과이며, 이미 지식으로 꽉찬 상태라는 것.

 

 

 

유아교육학개론, 정치적인 너무도 정치적인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 그리고 그 단어에 달라붙은 정의들을 다시 재정의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군가 어떤 의도에서 만들어 놓은 지도 모르는 함정에 빠져, 그들의 생각을 대변하며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은 정치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동섭쌤은 사람들은 흔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정치적인 책이다라고 말하는데, 어떤 책이든, 심지어 어떤 것이든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유아교육학개론처럼 중립적이며 객관적으로 보이는 책이야말로 더 교묘하게 정치성을 감추고 있는 정치적인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개론서는 학문에 접근할 때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개괄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그러니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빠짐없이 봐야 하는 책이라 할 수 있고 그만큼 객관적인 사실만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란 수식어가 무색해진 백과사전. 그럼에도 여전히 위용은 대단한데, 이 책은 중립적일까?

 

 

하지만 그 책을 저술하는 사람들은 어떤 문화에 소속된 사람들이고, 그들이 배운 학문적 풍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런 생각들이 목차를 짤 때에도 반영되며 내용에도 들어있게 마련이다. 객관적이다, 중립적이다라는 말들은 허울 좋은 가림막일 뿐, 그 안에 들어가면 정치성이 교묘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국정화 국사 교과서를 반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학교에서 교육학 시간에 배운 비고츠키는 늘 삐아제와 상반된 입장을 지닌 사람, 사회적 구성주의를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이미 임용 문제에 그렇게 출제되고 있고, 책에도 그런 식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교수들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으니, 이에 대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하지만 동섭쌤을 통해 비고츠키를 배우다 보니, 그런 규정들 자체가 매우 정치적이며, 왜곡된 시선에 불과한 것이더라. 그리고 그런 시선은 권위를 쥐고 있고, 그에 따라 객관이란 포장지로 사람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게 만드는 것이니,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객관적, 중립이라는 포장을 하고 있는 모든 것, 그것들이야말로 가장 적대시하고 가장 의심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외치며, 꺼진 불만 다시 볼 게 아니라 너무 당연하다 생각되는 것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2시간의 열강을 마쳤다.

 

 

 

박동섭 제1캠프에 오신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힘겹게 달려왔다. 1캠프가 보이던 시점부터 숨이 벅차오르고 발은 움직이지 않았으며,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않는 캠프를 보며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며 오르고 나니, 드디어 청량한 바람을 한껏 맞을 수 있으며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함에 기쁨이 밀려온다. 그건 심리적인 기쁨뿐만이 아니라, 여기까지 함께 올라오며 시야도 확보되어 훨씬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지금껏 너무 당연하다고만 느꼈던 것들에 대해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기쁨까지 포함하고 있다.

함께 애쓰며 올라오신 분들, 이 순간을 만끽하며 누려보자. 그러고 나서 웬만큼 피로가 풀렸을 때는 맛있는 밥을 옹기종기 나누어 먹고, 다시 힘을 내어 제2캠프를 향해 함께 힘을 북돋워주며 기쁘게 올라가 보자.

 

 

강의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엔 바람이 장난 아니게 불었다. 춥긴 했어도 마음 속엔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인용

목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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