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장구서 4. 心은 구체적이면서도 전체적인 개념
蓋嘗論之, 心之虛靈知覺, 一而已矣. 본격적으로 그것을 논해 본다면, 마음의 허령한 작용인 지각은 하나일 뿐이다. |
‘개상론지(蓋嘗論之)’는 “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argument)을 시작하겠다”는 표현인데, 상시론지(嘗試論之)도 같은 의미로 잘 쓰이는 말입니다. 인심(人心)ㆍ도심(道心)에는 심(心)이 공통되어 있지요. 이제마는 이와 달리 폐비간신(肺脾肝腎)의 장부(臟腑)구조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심(心)을 폐비간신과 구별하여 그것을 초월하는 어떤 것으로 설정했거든요. 폐비간신과 심(心)은 같은 오장(五臟)의 개념에 있는 게 아니고, 이제마에게는 오장육부(五臟六腑)대신 사장사부(四臟四腑)가 있을 뿐입니다. 그는 철저한 사원론자(四元論者)였어요.
그런데 장부와 심(心)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뭘까요? 장부(臟腑)라는 것은 형체가 있는 유형(有形)의 세계인데 반해 심(心)은 무형(無形)이라는 데 있습니다. 무형의 심(心)의 세계, 이것을 고대의 서양인들은 프시케(psyche), 누우스(nous)로 이야기했는데 오늘날은 심(心)을 뉴론(nuron)의 씨냅스(synaps)로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어쨌든 이 무형의 심(心)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인류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동일한 문제의식이죠. 무형의 신묘한 작용이 인간존재의 밖에 그 근원(origin)이 있다는 생각이 서양인들, 특히 기독교 전통의 철학적 사유의 바탕이 된 것이고 그에 비해 동양인들은 『서경(書經)』에 보이는 바와 같이 무형의 심(心)이라는 게 유형의 세계에서 발현(emerge)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마도 심(心)이 사장(四臟)을 초월하는 것이긴 하면서도 그 근본을 따진다면 사장(四臟)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즉, 장부(臟腑)구조라는 유형(有形)의 세계에서 무형(無形)의 심(心)의 세계가 돋아나온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한다면 심(心)이라는 것은 장부조건에 의해 필연적으로 구조 지워지는 결정론으로 귀결되어 버리겠지요? 심(心)이라는 것이 완전히 장부(臟腑)구조에 종속되는 것으로 판명되어 버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유물론(唯物論)이 아닌 유기론(唯氣論)적 발상은 그와 다릅니다. 이 점은 따로 상세히 설명되어야 할 것이므로 지금은 이렇게 선언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주자학의 이기론(理氣論)의 고민도 이와 같은 결정론의 딜레마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입니다. 심(心)이 장부(臟腑)에서 발현되는 것이기는 하나 장부에 의해 결정되어 버린다면 이(理)는 기(氣)에 종속되기 때문에 이(理)가 기(氣)를 콘트롤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될 수 없어집니다. 이(理)가 기(氣)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어서는 안 되겠죠. 여러분, 주자학에 대한 서적을 보면 항상 이 이(理)의 초월성과 내재성이 혼재하고 있어요. 그것이 바로 주자학 최대의 파라독스(Paradox)입니다.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ㆍ이기론(理氣論) 등이 한없이 복잡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뒤에 나오는 얘기지만, 이 도심(道心)과 인심(人心) 양자는 사방 일촌(一寸)의 공간[方寸之間]에 마구 섞여 있다고 합니다[二者雜於方寸之間]. 여기서 방촌(方寸)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하트(heart)라는 신체기관(organ)을 지칭합니다. 심(心)이란 글자를 갑골문에서 찾아보면 심장의 2심방 2심실을 나타내는 상형자로서 4획은 4공간을 표시하고 있어요. 주자는 바로 이 심(心)을 하트라는 오르간으로 명백히 이해했던 겁니다. 주자 당대의 일상적(popular) 세계관에 이런 기본적인 의학적 사실이 깔려 있다는 데 대한 이해는 주자학 전체의 참 뜻을 밝히는데 필수적입니다. 현대 의학에서는 심장을 혈액순환계(blood circulation system)의 펌프로 설명하지요. 그 원동력은 심근의 박동이구요. 그런데 이 심(心)이란 것은 또한 인간의 정신기능(mental function)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된 경위는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자, ♡ 이게 무슨 표시입니까? 큐피드의 화살! 옛 희랍인들은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려 할 때 이런 모양의 하트로 표시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정서적 싸인(Sign)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곳이 심장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 집에 갑자기 도둑이 들었다고 하면 헉! 하고 가슴이 쿵쿵 뛰겠죠? 또는 어떤 뿌듯한 감격의 순간에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낄 겁니다. 지금의 의학은 이런 현상을 시상하부(hyperthalamus)-뇌하수체(hypophysis)-심장근육(heart muscle)를 콘트롤하는 호르몬이 정서적 감정을 전달, 신경자극과 전달의 과정을 거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이렇게 설명하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런 그림에서 피가 동맥에서 쫙 나가 모세혈관을 돌아 정맥으로 들어오잖아요. 인체 모든 곳에는 다 혈관이 있습니다(물론 예외적으로 손톱이나 막은 빼고). 심지어 뼈속에도 머리카락에도 혈관이 통해 있어요. 우리는 하트를 심(心)이라고 하지만, 꼭 펌핑하는 심장만을 심(心)으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피가 통하는 곳은 모두 심(心)이라구요. 정맥, 동맥, 모세혈관 등 모두가 심(心)인 거예요. 다시 말하면, 심(心)은 혈액순환계(blood circulation system) 전체입니다. 그래서 정서적 변화는 모세혈관으로도 감지되는 것이고 따라서 심(心)은 손끝에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心)을 심장이란 좁은 개념으로 묶어둘 필요가 없다고 봐요. 피(blood)라는 것은 인간 존재의 모든 정신적(mental), 육체적(physical) 에너지를 공급하는 근원적 물질인 것입니다. 뇌(brain)도 뭘 먹고 삽니까? 피가 공급하는 양분으로 운영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더 크게 본다면 심(心)이란 개념 속에 뇌까지도 포함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죠. 동양인들의 심(心)은 이렇게 구체적이면서도 전체적(holistic)인 개념입니다. 그래서 해석의 여지가 무한히 열려 있는 거예요.
심지허령지각(心之虛靈知覺)에서 허(虛)란 구체성이 없다, 무형이다, 실(實)의 반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허(虛)는 그냥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령(靈)한 성질을 가집니다. 령(靈)은 ‘스피리추얼(spiritual)’하다, 영험하다, 신령하다는 뜻인데 그런데 그 령(靈)의 내용이 뭡니까? 여기서 지각(知覺)이란 말이 나오는데 현대어로는 각(覺)을 감각이라고 하고 지(知)는 이성적으로 안다고 풀지만, 옛날에는 지(知)가 오히려 현대어의 감각적으로 안다(sensation)는 뜻에 가깝고 각(覺)은 그 지(知)의 높은 단계에 도달함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사소한 단어를 잘못 이해하면 저 최한기의 『독기학설(讀氣學說)』이란 저술은 근본적으로 이해될 길이 없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우리나라 철학계의 원로이셨던 박종홍 선생님도 이점을 잘못 파악하여 최한기를 ‘경험주의자’라고 규정한 탓에 지금도 최한기를 제대로 못 보고 있다는 현실을 여러분들은 심각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어 하나 글자 하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그만큼 중요한 거예요.
바로 이 지(知)와 각(覺)이 인간의 심(心)의 허령한 작용의 본질입니다.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했을 때 사피엔스가 바로 지각(知覺) 즉, 알고 깨닫는 능력을 지칭하지요. 우리 인간을 영장류(靈長類)라고 하는 이유도 령(靈)적인 측면에서의 장(長)이다, 가장 뛰어나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것이 바로 심(心)의 핵심적 문제는 바로 지각(知覺)에 있다는 겁니다. 오늘날 의학은 심(心)을 뉴런(neuron), 신경으로 설명하지만, 동양인들은 이 허령지각한 심(心)을 피(blood)로 설명할 뿐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지만 한의학적 사전 지식이 필요하고 또 깊게 설명되어야 할 부분이므로 오늘은 이만하고 넘어갑니다. 허령지각이 ‘일이이의(一而已矣)’라는 말은 도심, 인심이 원래 전체로서 하나였고(whole) 둘로 나누어진 게 아니라는 뜻이지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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