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4. 부부로부터 시작한 이유
유가와 묵가의 싸움
유교주의를 지새끼, 지애비만 안다고 비난합니다. 유교주의는 끝까지 훼밀리 윤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건데, 이게 타락하면 묵자가 ‘유교는 지새끼. 지애비만 안다’고 까는 그런 상황이 연출되어버리는 것이죠. ‘공자라는 새끼는 지새끼. 지애비만 안다. 짜식들이 겸애(兼愛)가 있어야지 말이야 ∼ . 그러니까 유교주의는 보편주의가 없어!’ 가장 중요하게 내걸고 있는 훼밀리 윤리는 너무 협애하다는 통렬한 지적입니다. 즉, 지애비, 지에미가 아니더라도 똑같이 내 부모같이 사랑할 줄 아는 겸애가 필요하다는 논리인데, 맹자(孟子)는 또 어떻습니까. 묵자를 까죠? 저 새끼는 지애비. 지에미도 모르는 새끼라고 깝니다. 어떻게 보면 감정싸움이고, 해답이 없는 싸움이예요. 그러니까 춘추 제자백가시대에 있었던 묵가(墨家)와 유가(儒家)의 대립에서 아주 드라마틱한 인류사회의 모든 문제가 이미 제기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기독교가 상당히 묵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훼밀리즘은 아니고, 겸애를 강조하는 묵가적인 종교예요. 그러나 유가는 어디까지나 모든 윤리관의 기초를 가족윤리에다가 둡니다. 그러니까 나를 미루어 남을 아는 것이지, 처음부터 보편적인 겸애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유교 패밀리즘의 리바이벌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 유교의 훼밀리즘이 현대에서 리바이벌 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가 제도의 정비만으로 해결될 것 같습니까?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다 해도 제도 자체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 좋은 제도가 좋게끔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 토양이 일궈져야만 하는데, 그걸 뒷받침하는 것은 가정교육 밖에는 없어요. 그러니까 유가는 지애비. 지에미만 알자는 것이 아니라 가족윤리를 강조하고, 그것을 근원적으로 삼는 시스템을 가지고 가정교육에다가 어떠한 보편적 원리를 주자 이겁니다.
그래서 이 12장이 유가주의의 기본구조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장이 되는 겁니다. 왜 처음부터 ‘비이은(費而隱)’이라고 했는지, 익스텐시브(Extensive)하지만 서브틀(Subtle)한, 크지만 작은, 매크로하지만 마이크로한, 잘 보이지만 잘 보이지 않는, 그런 논리적으로 상반되는 세계를 왜 자꾸만 연결하려고 했는지 이제 좀 감이 잡힙니까? 다시 말해서 문명에 있어서 매크로한 세계와 마이크로한 세계의 연결은 훼밀리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제아무리 거대한 사회형태(국가·제국·문명권 등)를 이룬다하더라도 인간의 기본조건인 생식기능(reproductive function)을 져버릴 수 없는 한 인간의 모든 경험의 출발은 훼밀리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 훼밀리의 경험체계에서 비롯한 윤리의식이 결국 모든 매크로한 사회체제의 가치관의 기초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유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가정윤리에 충실한 인재들이 우리사회에 면면이 흐르고 있는 이러한 유교전통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나가지 못한다면 우리 문명은 끝입니다. 서구라파의 도덕(Sollen)과 정치(Sein)의 분리라는 그러한 작위(作爲)의 논리는 자본주의의 광란에 아부하는 얄팍한 철학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광란이 인류문명의 대세라면 이 세상 모든 국가도 끝입니다. 그러나 국가는 소멸해도 가정은 죽지 않습니다. 인간이 지구상에 생존하는 한 가정은 존속합니다. 국가가 없고 가족만 있는 사회! 노자가 80章에서 그리고 있는 유토피아의 모습에 가깝게 오는 사회입니다만, 여러분들은 그런 사회가 불편하다고 생각하시겠죠? 그러나 개똥같은 정치인들 그리고 세리들이 설치는 그런 꼬락서니가 없어서 오히려 맘 편할지도 모르겠어요. 농민대중의 입장에서 모든 체제를 부정한 일본의 ‘안도오 쇼오에키(安藤昌益)’라는 사상가를 한번 읽어보세요.(통나무에서 간행된 마루야마 마사오의 『日本政治思想史硏究』에 수록되어 있음)
처음 시작에서 ‘부부’라는 단어의 뜻이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라고 했는데, 이제 본문을 들어가서 살펴봅시다.
‘부부지우 가이여지언 급기지야 수성인 역유소부지언(夫婦之愚 可以與知焉 及其至也 雖聖人 亦有所不知焉)’ 가족윤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부부의 어리석음으로도, 더불어 군자지도(君子之道)·중용지도(中庸之道)를 같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급기지야 수성인 역유소부지언(及其至也 雖聖人 亦有所不知焉)’ 즉, 부부의 道라는 것이 단지 지애비ㆍ지에미의 문제가 아니라 그 부부의 일용지간에서 파생하는 모든 문제로부터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문제에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게 중용(中庸)의 발상의 위대함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부부지불초 가이능행언(夫婦之不肖 可以能行焉)’ ‘능(能)’을 여기서는 부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복되니까 쭉 해석만 하죠. ‘급기지야 수성인 역유소불능언(及其至也 雖聖人 亦有所不能焉)’ 중용론(中庸論)에 가장 중요한 사고의 전환은 평범성에 있습니다. 중용(中庸)이 주장하고자 하는 평범성은 부부의 도(道)로부터 출발하는 것인데, 그 부부의 도(道)라는 것은 모든 인류문명의 윤리의 출발이고, 이것은 온 우주천지를 뒤덮을 수 있는 매크로한 법칙과 통한다는 거죠【부자지도(父子之道)도 아니고 형제지도(兄弟之道)도 아니고 군신지도(君臣之道)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부부지도(夫婦之道)냐? 이 중용을 한 권의 일기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주 지극히 성실한 삶을 살았던, 그러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평범한 사람의 생활사 속에서 탄생한 소박한 일기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평범성, 그 소박성에 중용의 진짜 위대함이 있다】.
‘천지지대야(天地之大也)’ 여기 천지(天地)라는 말 나왔는데, 두 번째 날 텍스트 크리틱(Text critic) 이야기하면서, 천지 코스몰로지의 명백한 인식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게 ‘천지’라는 개념이라고 했죠?
‘인유유소감(人猶有所憾)이라’ ‘감(憾)’자는 ‘유감이 많다’로 해석하세요, 유감이 많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천지를 바라볼 때 너무 커서 헤맨다는 말입니다. 어떤 날은 이유도 없이 벼락도 쳤다가, 또 어떤 날은 비만 내리질 않나. 하여튼, 천지라는 것이 너무 엄청나서 인간에게는 유감이 있을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인간은 천지가 어떻게 운행되는지 잘 알 수가 없어!
‘군자어대(君子語大)’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스케일로 군자가 큰 것을 말하면, 인간 이메지내이션(Imagination, 상상)의 거대함은 천하막능재언(天下莫能載焉)이라, 천하라도 다 실을 수가 없다! “스티븐 호킹의 우주에 대한 상상력을 천하가 다 실을 수 있겠어요?”
‘어소 천하막능파언(語小 天下莫能破焉)’ “작은 것을 말하더라도, 그것을 깰 수가 없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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