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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중용강의, 21장 - 3. 다시 몸으로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21장 - 3. 다시 몸으로

건방진방랑자 2021. 9. 1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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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다시 몸으로

 

 

20장에 성론(誠論)’이 나오면서, “()으로부터 믿음을 얻는 길이 있다. 그것은 우선 붕우(朋友)에게 신임을 얻는 것이다. 붕우에게 신임을 얻는 것은 순친(順親)해야 되고, 순친(順親)한 것은 반저신(反諸身)이다라고 했습니다. 인륜관계에 있어서 획호상 신호붕우 순호친(獲乎上 信乎朋友 順乎親)’해가지고 반저신불성(反諸身不誠)’, 결국은 ()’으로 갔죠? 궁극은 자신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대학(大學)에서 보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둘러싼 문장구성이 앞에서 뒤로 전개되었다가 다시 뒤에서 앞으로 주욱 나가고 있습니다. , ‘명덕어천하(明德於天下)’에서 격물(格物)’까지 갔다가, 다시 물격(物格)’에서 국치이후천하평(國治而后天下平)’까지 가서 그 다음에 결론이 뭐냐? “자천자 이지어서인 일시개이수신위본(自天子 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이라고 했습니다. 수신(修身)이 본()이라고 했어요. 전 프로세스가 뭘로 가고 있습니까? 결국 큰 배움[大學]’도 수신(修身) 하나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죠.

 

중용(中庸)도 모든 인간관계가 반저신(反諸身)’에서 ()’으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내가 항상 말하는 몸철학의 몸의 문제가 나오는데, ‘반저신(反諸身)’이라고 할 적에 ()’이라고 하는 게 뭐냐? 저신(諸身)’이냐 하면, 중용(中庸)이 말하는 인간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문명 속에 존재하는 최후의 자연인 것이죠. 인간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문명을 만들어냈지만 그러나 그 몸은 항상 자연이고, 따라서 자연의 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으로 돌아가라는 반저신(反諸身)’은 뭐냐, 이것은, “몸은 천지이다! 자연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의 자연에 따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중용(中庸)이 하는 말은, ‘()’에게서 어떠한 도덕적인 원리를 뽑아내라는 말이 아니라, 천지만물의 중용(中庸)을 뽑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중용(中庸)이 말하는 천지(天地)의 특성은 바로 ()’입니다. 천지(天地)가 바로 ()’이예요. ‘천지운행지도(天地運行之道)’는 모든 것이 성실하게 돌아가거든요. 그러니까 인간의 모든 질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이러한 자연의 성실함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겁니다. , 밤이 오고 나면 낮이 오고, 그 다음엔 또 밤이 오고,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등등의 천지 운행이 성실하게 궤도이탈을 하지 않고 부단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그 사실이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최후의 도덕성의 근원이라는 것이죠. 왜 우리가 질서를 지키고 살아야 하느냐는 것을 중용(中庸)의 저자는 천지(天地)의 법칙에 입각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 완전히 통일되고 있어요.

 

동양적이란 의미를 보면, “우리의 인생은 성지(誠之)’호의 기차를 타고 ()’이라는 종착역을 향해서 달려가는 과정이다유가의 프래그머티즘이 정립하고자 하는 인간은 편협한 가장적(家長的) 존재가 아니라 우주적 인간이다. 즉 수신(修身)의 본질인 성실함을 궁극적으로 우주에 귀속시키고 있다. 성실함 그 자체는 하늘의 길이다. 하늘의 길이란 하늘의 운행을 말하며 고대 중국인들은 자연의 관찰에 있어서 자연의 성실한 운행 그 자체에 일종의 타우마제인(taumazein, 놀람, 경탄)을 느꼈던 것이다. 해와 달, 별 그리고 주야, 사시의 움직임이 몇 백만년을 통해서 그렇게도 어김없이 일순간의 오류도 없이 성실하게 움직이는 그 모습, 그것은 경탄이며 예찬인 동시에 또 인간 삶의 최후보루라고 느꼈던 것이다. 그러한 성실한 자연의 경지는 힘쓰지 않아도 깨달아 지며 자연스럽게 길에 들어 맞는경지이니, 곧 그것은 우주(宇宙)와 합일(合一)이 된 성인(聖人)의 경지이다. 그러나 인간의 현실은 성인(聖人)의 가능성을 항상 지니고 있으나 곧 성인(聖人) 그 자체는 아니다. 나의 현실은 발현(發現)하여 모두 상황에 척척 들어 맞는것도 아니고 힘쓰지 않아도 들어맞고 생각지 않아도 깨달아지는그러한 현실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성실함 그 자체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꾸준히 경주해야만 한다. 그 노력의 과정을 중용(中庸)의 저자는 성실하려고 하는 것[誠之者]”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것은 곧 사람의 길[人之道]’이다. 중용(中庸)의 첫머리에 인간의 본성을 따르는 것 그것을 일컬어 길이라 한다[率性之謂道]”라고 했을 때의 이며 사람의 길이란 곧 자기가 타고난 본성을 따르는 길, 그곳에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길이다. 즉 그길은 ()’이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성지(誠之)’호의 열차길이요, 그것이 우리 삶의 과정(process of life)이다.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東洋的이라는 의미pp 321라는 말이 있는데, 인간의 삶이란 ()’할려고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인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란 프로세스, 과정을 나타내죠?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로 말한다면, 프로세스가 성지자(誠之者)’이고 리얼리티가 성자(誠者)’입니다. ‘성자천지도야 성지자인지도야(誠者天之道也 誠之者人之道也)’라는 말은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과정과 실재와도 통하는 말이예요. ‘대본(大本)’의 세계[誠者]달도(達道)’의 세계[誠之者]! 이런 프레임웤을 이미 20장에 제출해 놓고 있는데, 21장에서는 이것을 다시 한 번 아주 명쾌하게 풀어 놓고 있습니다. 주자 주()를 보면, “21장은 앞 장을 이어서, 공자가 말한 천도(天道)’, ‘인도(人道)’의 뜻을 세워서 말한 것이고, 그리고 21장 이하로 12개의 장은 21장의 의미를 전개(unfold)한 것이다[夫子天道人道之意 而立言也 自此以下十二章 以反覆推明此章之意].”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21장은 매우 중요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이 장이 중요한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1장과 제20장이 연결된 프레임웤이 21장에 명확하게 나오고 있다는 점을 주의 깊게 살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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