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문공이 원땅을 지킬 사람을 내시인 발제에게 물은 것에 대한 의론
진문공문수원의(晉文公問守原議)
유종원(柳宗元)
事見『左傳』僖公二十四年.
정책 결정을 공식기구를 통해 하지 않고 내시와 하다
晉門公旣受原於王, 難其守, 問於寺人勃鞮, 以畀趙衰.
余謂守原政之大者也. 所以承天子樹覇功, 致命諸侯, 不宜謀及媟近, 以添王命. 而晉君擇大任, 不公議於朝, 而私議於宮, 不博謀於卿相, 而獨謀於寺人, 雖或衰之賢, 足以守, 國之政不爲敗, 而賊賢失政之端, 由是滋矣. 況當其時, 不乏言議之臣乎.
狐偃爲謀臣, 先軫將中軍, 晉君疏而不咨, 外而不求, 乃卒定於內竪, 其可以爲法乎.
진문공이 자문을 잘못 구한 일은 후대의 나쁜 선례가 됐다
且晉君將襲齊桓之業, 以翼天子, 乃大志也. 然而齊桓, 任管仲以興, 進竪刁以敗, 則獲原啓疆, 適其始政, 所以觀視諸侯也. 而乃背其所以興, 迹其所以敗.
然而能伯諸侯者, 以土則大, 以力則强, 以義則天子之冊也, 誠畏之矣. 烏能得其心服哉.
其後景監, 得以相衛鞅, 弘ㆍ石得以殺望之, 誤之者, 晉文公也.
嗚呼, 得賢臣, 以守大邑, 則問雖失問, 擧非失擧也, 然猶羞當時陷後代若此, 況於問與擧又兩失者, 其何以救之哉.
余故著晉君之罪, 以附『春秋』許世子止ㆍ晉趙盾之義.
해석
事見『左傳』僖公二十四年.
일이 『좌전』 희공 24년에 보인다【진문공(晉文公)인 중이(重耳)는 주왕실(周王室)의 내란을 진정시키고 그 공로로 주양왕(周襄王)으로부터 원(原) 땅을 하사받았다. 이곳을 지킬 적임자를 내시인 발제(勃鞮)에게 물었고 마침내 조최(趙衰)라는 현신(賢臣)을 얻어 임명하게 되었된 사건을 말한다】.
정책 결정을 공식기구를 통해 하지 않고 내시와 하다
晉門公旣受原於王, 難其守,
진문공이 이미 주양왕(周襄王)에게 원(原) 땅을 받았지만 지키기가 어렵기에
問於寺人勃鞮, 以畀趙衰.
내시인 발제에게 물어 조최에게 맡겼다.
余謂守原政之大者也.
나는 원 땅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큰 것이라 생각한다.
所以承天子樹覇功, 致命諸侯,
천자를 받들고 패자의 공을 세워 제후들에게 명을 이루는 것이니
不宜謀及媟近, 以添王命.
모의함이 친압하고 친근한 데에 미쳐 왕명을 더럽히는 건 마땅치 않다.
而晉君擇大任, 不公議於朝,
그러나 진나라 임금은 큰 임무를 선택함에 조정에서 공적으로 의론하지 않고
而私議於宮,
궁궐에서 사적으로 의론하며
不博謀於卿相, 而獨謀於寺人,
재상에게 널리 모의하지 않고 홀로 내시에게 모의하니
雖或衰之賢, 足以守, 國之政不爲敗,
비록 혹 조최가 어질어 지킬 수 있고 나라의 정치가 무너지지 않는다 해도
而賊賢失政之端, 由是滋矣.
어진 이를 해치고 정치를 실패하는 단서가 이로부터 불어나는 것이다.
況當其時, 不乏言議之臣乎.
하물며 그때에 의론하는 신하들이 적지 않았음에랴.
狐偃爲謀臣, 先軫將中軍,
호언【호언(狐偃): 춘추 시대 진(晉)나라 사람으로, 자가 자범(子犯)이며, 문공(文公)의 외삼촌이므로 구범(舅犯)이라고도 칭한다. 일찍이 호언은, 나중에 진 문공(晉文公)이 된 진나라의 공자(公子) 중이(重耳)가 어려운 처지에 빠져 적(狄) 땅으로 도망갈 적에 중이를 따라가 1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늘 호위하며 보좌하였으며, 중이가 본국으로 돌아와 임금이 된 뒤에도 잘 보좌하여 진 문공으로 하여금 패업을 이룰 수 있도록 하였다.】이 도모하는 신하가 되었고 선진【선진(先軫): 춘추시대 진(晉) 나라 장수인데, 임금의 잘못에 분개하여 돌아보지 아니하고 침을 뱉았는데, 뒤에 다른 나라와 전쟁할 때에, “나는 임금에게 무례하였으니 죽어야 한다.” 하고 투구를 벗고 적진에 들어가 죽었다 함.】은 중군을 거느렸지만
晉君疏而不咨, 外而不求,
진문공은 소원한 채 자문하지 않았고 외면한 채 구하지 않고서
乃卒定於內竪, 其可以爲法乎.
마침내 내시에게 결정하게 했으니 법으로 삼을 만하겠는가.
진문공이 자문을 잘못 구한 일은 후대의 나쁜 선례가 됐다
且晉君將襲齊桓之業,
또한 진문공은 장차 제환공의 업을 이어받아
以翼天子, 乃大志也.
천자를 도우려 했으니 곧 큰 뜻이다.
然而齊桓, 任管仲以興,
그러나 제환공은 관중을 임명하여 나라를 중흥시켰지만
進竪刁以敗,
수조를 등용하여 패하였으니
則獲原啓疆, 適其始政,
원땅을 얻어 국경을 계발함은 마침 처음 정치를 하던 때니
所以觀視諸侯也.
제후들에게 보여야 할 것이었다.
而乃背其所以興, 迹其所以敗.
그러나 중흥할 까닭을 저버리고 패배할 까닭만을 따랐다.
然而能伯諸侯者, 以土則大,
그렇지만 진문공이 제후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토지는 크기 때문이고
以力則强, 以義則天子之冊也,
힘은 강하기 때문이며 의는 천장의 책봉이 있었기 때문이니
誠畏之矣.
제후들이 진실로 그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烏能得其心服哉.
그러니 어찌 마음으로 복종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其後景監, 得以相衛鞅,
진(秦) 나라의 환관인 경감이 위앙【상앙(商鞅): 전국 시대, 진나라의 명재상. 제자 백가(諸子白家)의 한 사람. 별명은 공손앙(公孫鞅). 상군(商君). 위(衛)나라의 공족(公族) 출신. 일찍이 형명학(刑名學)을 공부하고 진나라 효공(孝公)을 섬김. 법치주의(法治主義)에 입각한 부국 강병책(富國强兵策)을 단행하여 진나라의 국세(國勢)를 신장시킴. 효공이 죽자 그간 반감이 쌓인 귀족들의 참소(讒訴)로 사형 당한다.】을 재상으로 시킬 수 있었고
弘ㆍ石得以殺望之,
한(漢) 나라의 홍공(弘恭)과 석현(石顯)이 소망지(蕭望之)【소망지(蕭望之): 한 선제(漢宣帝)의 유명(遺命)을 받들어 어린 원제(元帝)를 세우고서 옛 법도로 인도하여 바로잡았던 충신인데, 뒤에 환관 석현(石顯) 등의 무함으로 자살하였다.】를 죽일 수 있었으니
誤之者, 晉文公也.
이들을 잘못되게 한 것은 진문공이었다.
嗚呼, 得賢臣, 以守大邑,
아! 어진 신하를 얻어 큰 고을을 지켰으니
則問雖失問, 擧非失擧也,
물은 건 비록 잘못된 물음이지만 천거한 것은 잘못된 천거가 아니었다.
然猶羞當時陷後代若此,
그러나 오히려 당시를 부끄럽게 하고 후대를 잘못에 빠뜨림이 이와 같은데
況於問與擧又兩失者,
더구나 물음과 천거함이 또한 두 가지로 잘못되었다면
其何以救之哉.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余故著晉君之罪,
나는 이 때문에 진문공의 죄를 써서
以附『春秋』許世子止ㆍ晉趙盾之義.
『춘추』의 허(許) 나라 세자 지(止)와 진나라 조돈(趙盾)의 뜻에 붙인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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