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갑작스레 벌교에 가다
2009년 4월에 국토종단을 시작하여 한 달간 걸어서 5월에 도보여행을 마쳤다. 한 달이란 시간의 의미는 그 어느 때의 1년이란 시간보다도 의미가 있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 시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고 세상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었으니까. 걸을 때마다 몸은 고되지만 생기는 넘치는 아이러니가 계속 되었다. 그로인해 알게 된 건 세상은 그리 삭막하지도 팍팍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어딘가 알게 모르게 도움의 손길은 계속 되었고 그 도움으로 인해 난 한걸음 더 나갈 수 있었으니까. 그 벅찬 감동과 열정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생생하다.
▲ 2009년에 한 달동안 목포에서 고성 전망대까지 걸어갔다.
도보여행 그리고 1년 후
그 후 1년이 지났다. 작년엔 4월 19일이 일요일이었는데 올해는 4월 18일이 일요일인 거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날 여행을 가는 거냐고? ‘도보여행 출발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떠났다’고 하면 좀 그럴 듯해 보이지만 거짓말이 된다. 그저 전주대 중간고사 기간에 맞춰 움직인 것뿐이니까. 중간고사 기간엔 중앙도서관이 전쟁터가 되니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 이유로 떠나게 된 것인데 우연히도 날짜가 맞은 것이다. 이거 뭔가 딱딱 맞는 느낌이다.
작년엔 도보여행 출발일이 우연하게 4.19와 겹쳤었는데 올해도 그런 꼴이니. 참~ 세상은 이렇게 신기하다. 억지로 딱딱 맞추는 건 아닌데 이런 식으로 의미 부여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오늘의 여행은 ‘벌교 탐방기’임과 동시에 ‘도보여행 1주년 축하 여행’이라 할 수 있다.
벌교에 가기까지
『태백산맥』 소설의 무대인 벌교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가기로 한 걸까?
한참 『태백산맥』을 읽고 있었다. 벌교에 가본 적이 없는지라 지리가 낯선 탓에 소설 속 상황들이 잘 이해되지 않더라. 지역상황은 몰라도 이념의 대립이란 것에 집중하며 책을 읽었다.
그렇게 『태백산맥』의 산줄기를 따라 헤매고 있을 때 <한겨레신문> esc에 벌교 탐방기가 실렸다. 그 기사를 읽고 있으니 『태백산맥』의 이야기가 상상 속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건 생생한 현실에 대한 기록이었고 그 곳에 살던 민중의 증언이었던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그저 막연하게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광경이 거기에 그대로 있는 걸 보니 어찌나 가슴이 두근거리던지. 그런 우연들이 맞물려 벌교로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 벌교로 갑자기 올 수 있었던 데에 때 맞춰 이 기사가 떴기 때문이다.
전라선을 따라 가며 일본이 남긴 아픔을 곱씹다
전주에서 벌교로 바로 가는 버스나 기차는 없었다. 그래서 광주나 순천을 경유해서 가야 하는데 난 순천을 경유해서 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소설에서 자주 언급되던 도시니까.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기차여행을 하기로 맘먹었다. 오랜만에 덜컹거림을 느끼고도 싶었고 요즘은 『아리랑』에서 철도부설권과 관련된 부분을 읽고 있는지라 일제가 한국에 남긴 ‘선물’인 철도를 따라가며 아픈 역사를 반추해 보고도 싶었다.
기차는 7시 56분에 있다. 그걸 타기 위해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전주역엔 오랜만에 가본다. 한옥을 본 뜬 역사는 어느 건물 못지않게 멋져 보이더라. 요즘은 통유리 건물이 대세여서 어떤 관공서 건물이든 지었다 하면 통유리 건물이다. 처음엔 그런 위용이 경이로워 보였는데 하도 여기저기 무분별하게 들어서니 어느 순간엔 식상해지더라. 그런 일상의 식상함이 전주 역사를 보는 순간 말끔히 가셨다.
순천행 기차는 여수가 종착역이다. 그 기차를 타는 여행객들이 많았다.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대부분이다. 기차는 순천을 향해 달렸다. 순천으로 가는 길엔 정말 터널이 많더라. 귀가 잠시 멍해지는 체험을 하며 ‘그 터널을 뚫고 레일을 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채찍 앞에 벌벌 떨며 고생을 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 근대는 일본이 거저 가져다 준 것이 아니었다. 우리들의 희생과 피땀으로 이루어낸 것일 뿐이다.
▲ 2009년 당시의 전주역은 복선철도가 아닌 단선철도였다.
순천, 편안한 분위기가 나던 도시
2시간 30분여를 달려 순천에 도착했다. 순천에 와본 적이 있던가? 생각나는 장면이 없다. 한 번도 오지 않은 건 아닐 테지만, 단체로 온 것이기에 기억에 없는 거겠지.
그렇다면 순천하면 떠오르는 게 뭐지? 김승옥의 『무진기행』, 공지영의 『도가니』의 무대인 곳, 그만큼 안개가 자주 끼는 도시가 아닐까? 거기다가 『태백산맥』을 읽으며 알게 된 ‘여순사건’의 중심도시다. 그만큼 혁명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던 곳이기도 했다.
순천에선 1시간 정도 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바로 역에서 나왔다. 순천 역사는 바로 전통이 제거된 통유리 건물이더라. KTX가 지나 규모가 커진 만큼 어쩔 수 없는 변화겠지만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없어 섭섭했다. 거기서 좀 걸어 나가니 천이 하나 보이더라. 전주천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다. 운동하던 사람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천의 이름은 ‘동천’이라 하고 거기서 1시간 정도 걸어가면 그 유명한 ‘순천만’에 가볼 수 있다고 하더라. 생각 같아선 가보고 싶었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다른 곳이었기에 그 길을 따라 30분 동안 걸어갔다가 다시 순천역으로 돌아왔다. 왠지 모르게 순천이 춘천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 이미지가 같아 보였다. 하긴 순천이나 춘천이나 그냥 스쳐지나간 것에 불과하니 나의 이런 느낌도 ‘장님 코끼리 더듬기’라고나 할까.
▲ 순천역은 여느 곳에나 보던 역이라 아쉽다. 동천을 조금 거닐다가 역으로 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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