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侮辱)이란 무엇인가
태양인이 사기(詐欺)를 듣듯이, 소양인은 모욕을 본다. 서로가 업신여기는 것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모욕이란 무엇인지를 좀 이야기해보자. 모욕죄, 이른바 명예훼손죄도 법적으로는 제법 복잡하다. 허위 사실이냐 아니냐에 따라 다르고, 사실이라도 얼마나 알려져 있는 사실이냐에 따라 또 다르고, 어떤 경우는 이미 대중에게 다 알려진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명예훼손이 되기도 하고, 대중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폭로의 경우는 면책이 되기도 하고, 무지하게 복잡하다.
어쨌든 문제가 되는 것이, 본인이 느끼는 수치감, 모욕감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점이다. 일단 체질에 따라 모욕감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 다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소양인 아내와 태음인 남편이 같이 외출하는 경우에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나가서 사람 만날 일이 있을 때, 남자가 그냥 편한 옷을 입고 나가는 것에 대해 소양인 아내는 모욕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아내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반면 태음인 남편은 옷 입는 것조차 간섭하는 것이 자율성을 무시하는 모욕이라고 느낀다.
이게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상대는 분명히 느끼고 있는 감정을 자신은 못 느끼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일반적인 해결책은 이렇다. 서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상대의 특성을 인정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 관한 좀더 자세한 설명은 뒤에 ‘보편/특수’에 대한 설명에서 나올 것이다.
체질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라 체질 문제만 말했지만, 이 외에도 성별, 나이, 학력, 직업, 기타 여러 가지 생활환경에 따라 모욕감을 느끼는 포인트는 다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본인은 분명히 모욕감을 느껴서 고소했는데 판사가 그걸 무시해버리면 정말 짜증날 것이다. 또 사회 통념상 별로 모욕이라 할 수 없는 부분인데,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만 모욕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잔머리 굴리는 데 능통한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상대를 모욕하고도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다. 법정에서는 통념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결국 진짜 모욕을 목적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저는 모욕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까짓 것이 무슨 모욕이 됩니까?’라고 부득부득 우길 때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검사나 판사가 피해자와 체질이 비슷해서 모욕감을 느끼는 포인트가 비슷하면 유죄를 선고할 것이고, 반대의 경우 가해자의 변명이 먹힐 수도 있을 것이다.
명예훼손 같은 문제를 바르게 판결하려면 법전 뒤져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법은 사람끼리의 다른 점을 충분히 반영할 수 없다. 이걸 다 반영할 수 있는 법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법으로 명시하기에 부족한 부분은 사람이 그때그때 판단할 수밖에 없다.
결론은 고시 패스했다고 판검사를 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변호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일들 겪어보고, 이런저런 사람들 만나보고, 사람 사는 일에 대해서 눈도 좀 뜨였을 때 판검사를 해야지, 골방에 틀어박혀 법만 공부한 사람을 대뜸 판검사를 시키면 감정과 관련된 죄들에서 바른 판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좀 엉뚱한 쪽으로 이야기가 번지기는 했지만 뭐 쓸데없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양해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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