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문명의 통합을 낳은 원정
폴리스 체제의 종말
아테네의 시대를 대체한 스파르타의 시대는 짧았다.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리해 무력에서는 그리스의 패자가 될 만한 자격을 보였으나 아테네의 권위를 대신할 수 없었다. 더구나 스파르타는 아테네가 그리스를 지배하던 시절보다 더욱 고압적인 자세를 취했다. 폴리스들에 군대와 감독관을 파견하고 공납금의 액수도 더 올린 것이다. 그리스 세계의 체질에 맞지 않는 군국주의에다 민족적인 이질성, 그리고 지나친 독재와 간섭에 폴리스들은 당연히 불만이 많았다.
그러던 차에 스파르타의 지배에 균열이 생기는 일이 터졌다. 기원전 394년 페르시아에서 제위 계승을 둘러싸고 내분이 생기자 스파르타는 그 참에 이오니아를 수복하기 위해 함대를 파견했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코린토스, 아테네, 테베, 아르고스 등은 재빨리 페르시아와 결탁하고 스파르타를 응징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켰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셈인데, 그렇다면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스파르타는 응급조치로 페르시아와 평화조약을 맺고, 이오니아를 페르시아에 완전히 넘겨주는 조건으로 그리스 반도에서의 패권을 유지하고자 했다.
이 구상이 먹혀 일단 전쟁은 끝났으나 한 번 구겨진 스파르타의 위신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테네가 패권을 되찾은 것도 아니었다. 스파르타의 권위가 약화되자 아테네는 해상 동맹을 맺고 재기를 노렸지만, 그것은 아테네의 마지막 몸부림이 되고 말았다. 아테네는 지는 해였고, 테베가 새로 떠오르는 해였다. 보이오티아의 핵심 세력이었던 테베에는 펠로피다스가 주도하는 민주정이 들어선 데다 그의 친구인 에파미논다스라는 뛰어난 군사 영웅도 있었다.
테베를 잡아야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한 스파르타는 기원전 371년 테베를 공격했는데, 이번에는 스파르타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그리스 최강의 육군 스파르타군을 맞이하는 에파미논다스의 전술은 단순하면서도 탁월했다. 그저 적의 강한 곳으로 맞부딪히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스파르타의 밀집대형에 맞서 사선으로 병력을 배치했다. 테베의 기병대는 스파르타군의 힘이 집중된 우측을 선회해 적의 좌측을 파고들었다. 여기서 대승을 거둔 테베군은 스파르타의 본진인 라코니아로 쳐들어갔고, 이내 스파르타 경제력의 토대인 메세니아까지 점령했다.
이로써 오랫동안 그리스 반도의 양대 기둥을 이루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불과 수십 년 동안에 차례로 무너졌다. 그러나 테베는 떠오르는 기세였어도 그리스 전체가 이미 석양이었다. 테베가 스파르타를 대신한 기간은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대신한 기간보다도 더 짧았다. 테베에는 아테네와 같은 전통도, 스파르타와 같은 물리력도 없었다. 그나마 테베의 유일한 믿음은 걸출한 리더십이었으나 기원전 362년에 에파미논다스가 아테네 스파르타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것을 계기로 그 믿음마저 사라져버렸다.
스파르타와 테베가 아테네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는 것은 곧 그리스의 폴리스 체제가 수명을 다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결국 그리스의 폴리스 체제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아테네가 지배한 약 50년의 기간 동안 전성기를 맞았다가 곧이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한 때부터는 내내 내리막길을 걸은 셈이다(어찌 보면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초기 철학의 계보는 그런 그리스의 혼란상을 반영한다. 문제가 없는 곳에서는 학문이 일어날 수 없으니까).
문명이 쇠퇴하면 경제력과 군사력이라도 갖추어야 생존을 유지하면서 차후를 기약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두 가지 부문에서 그리스는 명백히 쇠퇴하고 있었다. 원래 그리스의 젖줄이던 해상무역은 식민 활동이 끝나면서 한계에 부딪혔다. 시장이 포화된 데다 해외 식민시들이 지중해 무역에 뛰어들면서 그리스의 무역 활동이 심각하게 잠식당했다.
경제의 뒷받침이 없으니 군사력도 무뎌졌다. 경기 침체로 실업자가 된 사람들은 앞다투어 직업 용병의 길을 걸었다. 애국심으로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용맹스런 중장보병은 사라지고 이제 경무장의 용병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오늘날의 직업 운동선수가 그렇듯이 용병은 생리상 돈을 많이 주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스의 떠오르는 유망 직종인 용병이 막강했던 그리스 군대를 완전히 대체하자 그리스의 방어망은 뻥 뚫려버렸다. 하긴, 이제 그리스에는 방어해야 할 문명도, 민주주의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 슬퍼하는 아테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배한 것은 결국 그리스 전체의 쇠퇴를 가져왔다. 사진은 기원전 460년 무렵의 작품으로, 아테나 여신이 마치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의 몰락을 슬퍼하기라도 하듯이 비탄에 잠겨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여신이 진정 슬퍼한 것은 그리스 민주정의 몰락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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