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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공자 - 인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한다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공자 - 인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한다

건방진방랑자 2022. 3. 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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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한다

 

 

여기서 공자는 인이라는 이념과 삶이라는 현실 사이를 날카롭게 구분하는 이분법을 제안하게 됩니다. 지금 유명한 고사성어가 된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배경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지요.

 

 

공자가 말했다.

뜻있는 선비와 인한 사람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인을 해치지 않으니, 자신을 죽여서라도 인을 이룬다.” - 논어』 「위령공

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공자의 논리는 매우 단순합니다. 만약 우리의 삶을 인이라는 이념에 부합하게 영위한다면, 우리 삶은 충분히 살아갈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자신의 삶을 버려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수천 년 동안 지속되었던 유학자 정신의 원형이 생겨납니다. 평상시 유학자들은 사회 전체를 조화롭게 이끌어갈 수 있는 내면적 역량을 준비합니다. 물론 그것은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예를 실천함으로써 인자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러나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죽을 때까지 인자로서의 이념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그들은 공자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자신들의 제자들을 키워서 어진 군자의 이념을 전수했습니다.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1833~1906)도 이런 가르침을 물려 받았던 유학자입니다. 여러분은 최익현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지요?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대원군 앞에서도 무릎을 꿇은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도끼를 옆에 두고 경복궁 앞에 앉아서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리기도 했지요. 이것은 자신의 상소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도끼로 죽이라는, 권력에 대한 일종의 도전 행위였지요. 이때 최익현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공자가 이야기했던 유학자의 정신, 살신성인의 정신이 아니었을까요? 시간이 흘러 최익현이 일본에 끌려가 대마도에 유폐되었을 때, 그는 일본인들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않고 절명하고 맙니다. 음식의 유혹을 물리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의 뇌리에는 분명 공자의 가르침과 정신이 울려 퍼졌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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