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질서와 인간 문명을 구별하다
순자는 무엇보다도 자연주의자로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자연주의란 일체의 종교적 관점을 버리고 인간과 자연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통치자가 정치를 잘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주장하는 이야기를 간혹 듣곤 합니다. 그러나 홍수나 지진이 발생하는 것과 통치자의 정치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순자가 살았던 시절에는 자연재해와 통치자의 정치 사이에 필연적인 연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 당시 매번 하늘과 땅에 규칙적으로 제사를 지내 하늘의 복을 구하는 것이 통치자의 중요한 임무이기도 했지요. 중국의 최고 통치자를 지칭하는 개념인 천자(天子)라는 말도 이런 종교적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고 통치자는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이지요. 따라서 그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마치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는 아들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이런 종교적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순자는 자연 세계와 인간 세계 사이에 필연적 연관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은 미신에 불과하다고 과감하게 주장합니다. 이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지요.
하늘의 운행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이것은 성군으로 유명한 요임금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폭군이었던 걸임금 때문에 없어지지도 않는다. 다스림으로 대응하면 길하지만, 혼란으로 대응하면 흉하다. 근본인 농사에 힘쓰고 비용을 절약하면 하늘도 사람을 가난하게 할 수 없고, 식량을 비축하고 때에 맞춰 활동하면 하늘도 사람을 병들게 할 수 없다. 도를 닦아 두 마음을 갖지 않으면 하늘도 사람에게 재앙을 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홍수나 가뭄도 사람을 굶주리게 할 수 없고, 추위와 더위도 사람을 병들게 할 수 없으며, 요상하거나 괴이한 것도 사람에게 재앙을 끼칠 수 없다. 근본인 농사를 도외시하고 비용을 사치스럽게 쓰면 하늘도 사람을 부유하게 할 수 없고, 식량을 축내고 움직임을 적게 하면 하늘도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 수 없고, 도를 위반하고 함부로 행동하면 하늘도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天行有常, 不爲堯存, 不爲桀亡. 應之以治則吉, 應之以亂則凶. 彊本而節用, 則天不能貧. 養備而動時, 則天不能病. 脩道而不貳, 則天不能禍.
천행유상, 불위요존, 불위걸망. 응지이치즉길, 응지이난즉흉. 강본이절용, 즉천불능빈. 양비이동시, 즉천불능병. 수도이불이, 즉천불능화.
그러므로 홍수나 가뭄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굶주리게 되고, 추위와 더위가 혹독하지 않은데도 병들게 되며, 요상하거나 괴이한 일이 나타나지 않는데도 흉하게 된다.
故水旱不能使之飢渴, 寒暑不能使之疾, 祅怪不能使之凶.
고수한불능사지기갈, 한서불능사지질, 요괴불능사지흉.
(난세의 경우도) 때는 태평한 때와 같지만 재앙을 당하는 것이 태평한 때와는 다른데, (재앙을 당했다고 해서) 하늘을 원망할 수 없으니 그 원리가 그런 것이다. 따라서 하늘과 인간 사이의 구별에 밝으면 이런 사람을 지인(至人)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순자』 「천론」
受時與治世同, 而殃禍與治世異, 不可以怨天, 其道然也. 故明於天人之分, 則可謂至人矣.
수시여치세동, 이앙화여치세이, 불가이원천, 기도연야. 고명어천인지분, 즉가위지인의.
유학 전통에는 ‘천명(天命)’이라는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주례를 만든 사람으로서 공자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주공이라는 인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옛날 선대의 하(夏)나라를 살펴보면, 하늘이 그들을 아끼고 보존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뜻을 어기자 이제 그들은 천명을 잃었습니다. 지금 은나라를 살펴보면 하늘의 신령이 내리어 그들을 보존해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을 어기자 이제 그들도 천명을 잃었습니다.”
이 구절은 『서경(書經)』 「소고(召誥)」 편에 실려 있습니다. 상당히 종교적인 느낌이 들지요? 이것이 바로 유학의 유명한 천명론(天命論)의 시작입니다. 주공의 말에 따르면, 결국 통치자는 모두 하늘에 잘 보여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은 통치자가 다스리는 국가를 붕괴시켜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유학자인 순자는 천명론을 철저하게 거부합니다. 그에게 하늘은 초월적인 인격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순자에게 하늘은 단지 자연을 상징할 뿐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순자는 성군으로 유명한 요임금이 통치를 하든지, 아니면 폭군으로 유명한 걸임금이 통치를 하든지 관계없이, 하늘이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물리적 대상일 뿐이라고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기가 어려워지면, 이것은 하늘 탓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물론 당시의 정치 관념에 비추어본다면, 백성들이 살기 어렵게 된 것은 당연히 통치자가 정치를 잘못하여 하늘이 벌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이해했겠지요.
그러나 순자는 인간이 행하는 정치적 일과 자연의 운행 과정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다시 말해, 자연 질서와 정치 질서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늘과 인간은 확연히 구별되는 영역’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자연계해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순자는 인간의 능동적인 정치적 행위를 보다 더 중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로써 순자의 입장이 당시의 관념과 비교해볼 때 얼마나 진보적이었는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겠지요? 순자의 자연주의적 사유가 유학사상의 역사에서 곧바로 단절되었다는 점은 좀 아쉬운 일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한나라 초기 유학자인 동중서(董仲舒, BC 179∼BC 104)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는 순자의 자연주의적 입장을 버리고, 다시 전통적인 천명론으로 회귀했던 인물입니다. 동중서의 천명론은 흔히 ‘천인감응(天人感應)’과 ‘재이(災異)’라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천인감응’은 하늘과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보는 입장이며, ‘재이’는 자연재해가 하늘이 인간에게 주는 벌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 점에서 동중서는 합리적으로 구성된 순자의 유학 사상을 몇백 년 뒤로 다시 후퇴시킨 장본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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