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앞에서 우리는 맹자와 고자의 논쟁을 살펴보았지요. 여러분은 이 논쟁만을 보고 맹자의 주된 사상적 경쟁자가 고자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사실 맹자의 진정한 경쟁자는 묵자(墨子, BC 470?~BC 390?)라는 사상가입니다. 이 책에서 묵자를 별도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왜 맹자는 묵자를 공격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묵자가 주장했던 ‘겸애(兼愛)’라는 명제 때문이었습니다. 겸애란 모든 것을 차별 없이 사랑하자는 논리입니다. 『묵자』 「겸애」 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천하에서 높은 선비가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친구의 몸 위하기를 자신의 몸처럼 하고, 자기 친구의 부모 위하기를 자기 부모처럼 해야 하는데, 그런 뒤에야 천하의 높은 선비가 될 수 있다.
爲高士於天下者, 必爲其友之身, 若爲其身, 爲其友之親, 若爲其親, 然後可以爲高士於天下.
위고사어천하자, 필위기우지신, 약위기신, 위기우지친, 약위기친, 연후가이위고사어천하.
이 말은 남의 부모도 나의 부모와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입장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반론을 폈습니다. “묵자가 주장하는 겸애는 자기 아버지를 없애는 것과 같다”고 말이지요. 맹자의 생각에 따르면, 자기 부모를 먼저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런데 묵자는 나의 부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부모까지 똑같이 사랑하라고 요구합니다. 맹자는 이런 묵자의 주장이 결국 부모와 자식 간의 고유한 관계를 파괴한다고 보았습니다. 남의 부모를 내 부모처럼 똑같이 사랑한다면, 나만의 혈연적 부모라는 의미가 설 수 없겠지요. 여기서 잠시 장재의 우주가족이란 이념을 함께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주가족이란 이 세상 모든 인간은 동일하게 기가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모두 같은 가족이라고 보는 생각이었지요. 그렇다면 장재의 이런 생각은 묵자에 가까울까요. 아니면 맹자에 가까울까요? 장재의 생각은 유학자인 맹자보다는 유학을 비판한 묵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부모, 자기 형제라는 폐쇄된 생각에서는 결코 우주가족이라는 이념이 출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장재는 병든 자, 삶이 고달픈 자, 외로운 자들을 모두 내 가족으로 품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장재가 정의 내린 성인이란 이런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실제로 수행했던 사람들입니다. 장재의 정신은 정호에게 그대로 이어집니다. 정호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을 내 몸처럼 느껴야 인자가 될 수 있다는 ‘만물일체’의 주장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일어나는 모든 사태에 자연스럽게 대응해야 한다는 ‘물래이순응(物來而順應)’을 주장하지요. 이 발상 역시 정호가 우주가족의 정신을 계승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해서 장재와 정호가 제안한 우주가족이라는 이념은 새로운 유학이 탄생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대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유학,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은 일체의 폐쇄주의와 고립주의를 넘어서 세상 모든 것에 통용되는 개방주의와 보편주의를 추구한 유학자들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지요.
여기서 잠깐 정호와 정이 형제가 보여준 사상적 경향의 차이점에 대해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호는 모든 사물을 자기 몸처럼 느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유학자였습니다. 이는 그가 외부로 열려 있는 호방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주지요. 반면 정이는 지나친 감정의 작용이 자신의 뿌리인 본성을 메마르게 할까 봐 노심초사했습니다. 이처럼 정이는 형과는 달리 인간 내면의 본성을 주시하는 데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 유학자였습니다. 두 형제의 사상적 분위기의 차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정호ㆍ정이 형제의 경향이 그들 이후 신유학의 두 가지 경향을 결정하기 때문이지요. 정호의 경향은 왕수인(王守仁)의 양명학(陽明學)으로 이어졌고, 정이의 경향은 주희(朱熹)의 주자학(朱子學)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흥미롭지 않은가요? 신유학이 태동하던 무렵, 함께 활동했던 형제의 사유가 나중에 서로 다른 두 가지 학문으로 계승되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자, 그럼 정이의 사상을 계승한 주희의 유학사상을 먼저 살펴보도록 할까요?
墨子 | ⇒ | 張載 | ⇒ | 程顥 | ⇒ | 王守仁 |
孟子 | ⇒ | 程頤 | ⇒ | 朱熹 |
인용
'고전 > 대학&학기&중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주희 - 개요 (0) | 2022.03.07 |
---|---|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장재와 정호ㆍ정이 형제 - 더 읽을 것들 (0) | 2022.03.07 |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장재와 정호ㆍ정이 형제 - 본성과 감정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다 (0) | 2022.03.07 |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장재와 정호ㆍ정이 형제 - 24살 젊은 유학자의 답안에 태학 교수가 놀란 까닭 (0) | 2022.03.07 |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장재와 정호ㆍ정이 형제 - 어떤 사태든 내 몸 안의 일처럼 (0) | 2022.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