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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4부 줄기 - 6장 국민국가의 원형, 오지에서 차세대 주자로: 스칸디나비아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서양사, 4부 줄기 - 6장 국민국가의 원형, 오지에서 차세대 주자로: 스칸디나비아

건방진방랑자 2022. 1. 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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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에서 차세대 주자로: 스칸디나비아

 

 

11~13세기 무렵 독일과 이탈리아가 서유럽 대학의 복학생이라면, 스칸디나비아는 아직 입학하지도 않은 입시 준비생쯤 된다. 아무리 지역적으로 서유럽의 북방에 치우쳐 있다지만 노르만 민족이동이 일어난 지도 벌써 수백 년이 지났는데 어찌 된 일일까?

 

사실 스칸디나비아는 노르만의 이동으로 오히려 피해를 본 셈이었다. 지역 전체가 서유럽 세계로 편입된 게 아니라 일부 사람들만 서유럽과 러시아로 이동해갔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향을 떠난 그들은 고향과 서유럽 선진 문명권을 이어준 게 아니라 아예 타향에서 딴살림을 차려버렸다. 따라서 남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스칸디나비아에 선진 문명의 빛을 끌어들여야 했다.

 

서유럽은 스칸디나비아에 자립이 가능할 만한 넉넉한 밑천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교였다. 노르만의 민족이동이 끝나갈 무렵인 10세기부터 스칸디나비아에도 그리스도교가 들어왔다. 전염성이 강한 종교답게 그리스도교는 토착 종교들을 하나씩 차례로 물리치고 마침내 스칸디나비아 전역에 널리 퍼졌다. 그리스도교가 도입됨으로써 스칸디나비아는 서유럽 대학의 입시 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 정치의 경험이 거의 없는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아직 입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에는 일렀다. 이곳에는 봉건제도 없었고, 영주도, 기사도 없었다. 그 덕분에 십자군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사실은 참여할 의지가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종교 이외에 서유럽 세계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한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온몸으로 현실 정치의 혹독한 경험을 쌓아야 했다.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이 지역의 역사는 극심한 내란과 왕위 쟁탈전으로 얼룩졌다. 가장 먼저 나라의 꼴을 갖춘 것은 서유럽과 조금이라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덴마크였다(이후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의 순서로 스칸디나비아 3국이 성립한다), 10세기 후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덴마크의 왕가는 노르만 이동의 끝물 시기에 잉글랜드로 진출했는데, 이것은 앞서 살펴본 영국 중세사의 도입부에 해당한다(357쪽 참조).

 

 

1016년에 잉글랜드의 왕이 된 크누드는 곧이어 덴마크 왕도 겸했으며, 1028년에는 노르웨이의 왕으로도 추대되었다(그는 유럽 역사상 가장 많은 왕의 명함을 가진 인물이다). 이렇게 해서 스칸디나비아 제국(북해 제국이라고도 한다)이 수립되었다. 잉글랜드, 덴마크, 노르웨이의 세 왕국을 아우른 것이었으므로 제국은 제국이지만, 이름만 그랬을 뿐 실제로는 당대 유럽의 유일한 제국인 비잔티움 제국은커녕 서유럽 일개 왕국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비잔티움 제국에 비해 손색이 없는 것은 왕권이 극도로 불안정하다는 점뿐이었다. 크누드는 법전까지 새로 만들고 세 왕국을 오가면서 중앙집권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지리적으로 분열되어 있고 체계상으로도 제각각이어서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가 죽은 뒤에도 스칸디나비아 제국은 스웨덴 지역까지 아우르며 영토적으로는 크게 확대되었으나 수십 년 동안 극심한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1157년 발데마르 1(valdemar , 재위 1157~1182)가 왕위에 오르면서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으나(이때부터 왕위가 세습되기 시작했으니 그전까지는 아직 왕국의 수준도 못 되었던 셈이다), 오히려 그때부터는 제국이 덴마크(노르웨이 포함)와 스웨덴의 두 나라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퇴행이 아니라 진보였다. 원시 제국이 해체되고 본격적인 왕국의 시대가 된 거니까. 그 와중에도 영토적 팽창은 계속되어,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발트 해 연안의 슬라브인들을 복속시키고 북유럽을 완전히 장악했다.

 

서유럽이 초기 국민국가를 이루어가는 13세기에 스칸디나비아 3국은 서로 경쟁하면서도 공조 체제를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기른 힘을 바탕으로 이들은 14세기부터 서유럽 세계의 일원으로 당당히 참여하게 된다. 특히 19세기 초반까지 덴마크의 지배를 받게 되는 노르웨이에 비해 스웨덴은 일찍부터 독립국을 이루어 근대 유럽을 탄생시킨 17세기의 30년 전쟁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바이킹의 후예 유럽 세계에 가장 늦게 합류한 스칸디나비아인들은 가장 먼저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보인 민족이었다. 일찍이 그린란드를 발견한 것도 그들이었으니 신대륙에 처음 간 유럽인도 엄밀히 말하면 그들이라고 해야 한다. 그림은 16세기 초반 스웨덴의 지도 제작자가 그린 해도다. 해류가 급하거나 암초가 있는 지역을 그는 괴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괴물 주의 표시를 해놓았다.

 

 

인용

목차

한국사 / 동양사

서유럽의 확대: 이베리아의 변화

서유럽의 확대: 영국의 편입

봉건제의 본산: 프랑스

서유럽의 그늘: 독일과 이탈리아

오지에서 차세대 주자로: 스칸디나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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