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의 결실
대항해시대에 유럽인들은 지구의 끝을 보았다. 물론 지구상 어느 곳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었고, 그 대부분은 나름대로 문명사회를 이루고 있었지만, 적어도 전 세계를 처음으로 하나의 관점에서 인식하게 된 것이 유럽인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요컨대 당시 지구 전체의 모습을 알고 있는 것은 유럽인들뿐이었다(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천하’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천하는 중국이 중심이고 사방이 오랑캐 땅인 ‘우물 안 천하’에 불과했다). 아는 것은 힘이고 지식은 곧 권력이다. 세계의 정체를 먼저 인식한 유럽 문명은 결국 세계의 중심이라는 지위를 획득하고 글로벌 문명을 선도하게 된다. 그 출발점이 바로 대항해시대, 정복의 시대다.
이 시대에 유럽의 경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동쪽 아시아에서는 아라비아 상인들을 물리치고 향료를 직수입할 수 있게 되었고, 서쪽 아메리카에서는 금과 은, 각종 신종 작물들이 쏟아져 들어왔으며, 남쪽 아프리카에서는 건장한 흑인 노예들이 마구잡이로 잡혀왔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종전에 아라비아 상인들이 판매하던 가격의 절반으로 직수입 향료를 서유럽에 판매했으며, 아울러 인도에서 차를 수입해 서유럽 문화에 중요한 한 가지 요소를 추가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그들은 인도는 물론 동남아시아와 일본, 중국에 이르기까지 유럽 문명을 두루 알리는 사절 노릇을 톡톡히 했다(1557년 중국의 명나라 때 해적을 토벌한 대가로 마카오 거주권을 얻은 게 그 한 성과다)【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과 중국에는왔으면서도 한반도에 들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반도에 온 서양인은 17세기의 벨테브레이(박연)와 하멜이 최초인데, 그마저도 둘 다 네덜란드 상인으로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던 중 표류하여 제주도에 상륙한 것이었다. 그 이전은 물론 당시까지도 서양인들은 한반도의 조선을 몰랐으며, 알았다고 해야 중국의 일부로만 여겼다. 조선은 실제로 외교권과 군사권을 중국에 맡기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속국이었다】.
서유럽 경제의 중심지는 급속히 바뀌었다. 지중해 무역의 의존도가 떨어지면서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자치도시의 상인들은 쇠락해 갔다(다음에 보겠지만 그전까지 기세가 좋았던 이탈리아와 플랑드르의 르네상스가 급속히 쇠퇴한 데는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새로운 경제 중심은 단연 이베리아였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서유럽의 후진국에다 ‘이슬람의 멍에’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일약 서유럽 세계의 맹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경제적인 면에서의 맹주에 불과했고, 게다가 그들이 그 지위에 있었던 시기는 정복의 시대뿐이었다. 서유럽 문명을 세계의 중심 문명으로 만드는 데는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그들은 더욱 커진 그 문명을 담아내는 큰 그릇이 되지는 못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문명사적 역할은 중세 이래 전통적인 강국으로 성장한 프랑스와 영국, 독일의 서유럽 세계가 성장하는 데 경제적인 밑거름이 되는 것이었다. 그전에 먼저 서유럽은 ‘중세의 멍에’인 종교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살아남은 이탈리아와 플랑드르의 상인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그들이 새삼스럽게 주목한 것은 시장의 개념이었다. 예전에는 물건이 없어 팔지 못할 지경이었으므로 시장이나 경쟁이라는 개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참패한 뒤 그들은 시장의 관점에서 생산과 판매의 과정을 새로이 바라보게 되었다. 새로운 깨달음의 먼 결과는 자본주의였고, 가까운 결과는 네덜란드(플랑드르)와 영국, 프랑스가 잇달아 세우게 되는 동인도주식회사였다. 이 점에 주목한 애덤 스미스(Adian Smith, 1723~1790)는 훗날 정복의 시대를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대’로 규정했다(경제학의 창시자인 스미스로서는 아무래도 자본주의의 발생, 발전과 관련된 것이 가장 중요했을 테니까).
대항해시대에 서유럽 문명의 힘이 급속도로 팽창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건이 있다. 15세기 중반 비잔티움 제국을 무너뜨리고 동유럽의 패자가 된 오스만 제국은 16세기 초 이집트를 정복해 옛 이슬람 제국의 재현을 꿈꾸었다. 오스만 제국은 곧이어 헝가리를 점령한 뒤 오스트리아의 빈을 위협했으며, 1538년에는 에스파냐와 베네치아, 로마 교황의 연합함대를 지중해에서 무찔렀다. 서유럽 그리스도교권은 몽골의 침략 이래 300년 만에 다시금 존폐의 위기에 몸을 떨었다. 서유럽은 중세를 헤쳐 나올 무렵인 16세기 중반까지도 힘에서 아직 동부 지중해 세계를 앞서지 못했던 것이다.
오스만 제국이 동방 무역의 육로를 이스탄불에서, 해로를 동부 지중해에서 차단하고 독점함으로써 서유럽은 경제 위기에 빠졌다. 당시 동방의 향료가 서유럽의 실수요자에게 왔을 때는 원래 가격의 30배로 치솟았을 정도였다. 이런 시점에서 대서양 항로가 개척된 것은 오스만 제국에 치명타를 가져왔다. 가뜩이나 정정 불안에 시달리던 제국은 무역 부진에 따른 경제난까지 겹치면서 더 이상 서유럽을 물리적으로 위협하지 못했다.
1571년 에스파냐와 베네치아, 로마 교황의 연합함대와 오스만 제국의 함대는 그리스 부근의 해상에서 다시 한 번 맞붙었다. 불과 30년 만의 재대결에서 연합군은 오스만 함대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이 레판토 해전인데, 여기서의 활약으로 에스파냐 함대는 무적함대(Armada)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연합함대가 승리함으로써 오스만 제국의 지중해 장악은 저지되었고, 그리스도교 세력이 지중해 교역의 주도권을 잡았다.
▲ 레판토 해전 신대륙에서 얻은 부는 에스파냐의 군사력을 크게 증강시켰다. 1571년 에스파냐 함대는 오스만 함대를 물리치고 지중해마저 제패하여 무적함대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서양 문명이 이제 물리력에서 세계 최강의 지위에 올랐음을 분명하게 입증했다. 그림은 레판토 해전의 장면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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