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화시평과 함께 울고 웃던 1년 4개월
예전에 6박 7일 동안 대구 달성에서 출발하여 낙동강을 따라 서울로 돌아오는 자전거 여행을 했었다. 그 여행을 시작하며 기록을 남겼었다.
처음에 ‘삶이란 하나의 도화지에 자신의 색채로 그림을 그려가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순간순간 그린 그림들이 모이고 쌓여 그게 삶을 만들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계속 얘기했듯이 그런 순간순간의 그림들이 대단할 이유도, 뭔가 엄청난 의미를 지닐 필요도, 남들 보기에 그럴 듯해 보여야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작은 일일지라도 그 순간을 수놓으며 반복적으로 해나갈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전거 여행을 떠나면서 난 그 여행을 ‘도화지에 한 획을 그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누구나 알다시피 한 획을 긋는 것만으론 그림이 완성되지 않는다. 그건 그저 시작에 불과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한 획 한 획이 쌓이면 결국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처럼 페달을 밟는 행위는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래봤자 한 획에 불과한데 뭘 하겠냐?’고 비웃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작은 행위, 별 것 아닐 것 같은 행위가 계속될 때 그 결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만들어낸다. 그저 낙동강에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우릴 한강으로 데려다줬고 서울 집까지 갈 수 있도록 해줬으니 말이다.
거창한 일을 할 필요도, 엄청난 일을 할 필요도 없다.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여 그걸 계속해나갈 수 있으면 그걸로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페달을 밟는 단순한 행위가 대구에서 서울로 우리를 갈 수 있도록 했다.
여러 상황으로 진도가 수이 나가지 않다
소화시평 스터디는 2018년 3월부터 시작되었고 나는 4월 11일부터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 꼭 재학생이 아니더라도 한문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열려 있었기에 나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스터디는 무려 1년 4개월이 지난 2019년 7월 2일에 드디어 끝나게 됐다. 물론 전편(全篇)을 다 본 것은 아니고 상권과 하권에서 선집(選集)된 103편의 원문들(상권 55편 / 하권 48편)을 기본 텍스트로 보기 시작하여 마침내 마무리 짓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한 주에 한 번씩만 하는 스터디이고 교수님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강의식 수업이 아닌 학생들이 하나씩 전담하여 발표를 준비하여 발표하고 교수님은 축자(逐字) 해석이 아닌 내용에 따라 긴밀하게 논리를 전개하는 해석으로 보충해주며 그 의미를 하나하나 곱씹을 수 있도록 하는 이해중심의 수업으로 진행되다 보니 한 번 스터디를 할 때 4~5편 정도 밖에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니 선집을 보는 데도 시간은 무한정 늘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럴지라도 나의 경우는 무려 7년 만에 다시 공부를 하는 터라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는데 스터디를 통해 한시를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음미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스러웠고, 어렵고 지루하기만 했던 한문이 재밌게 것에 행복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시간이 무한정 길어지다 보면 처음의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의지 또한 희미해지게 마련이다. 작년 2학기까지 소화시평 상권 83번까지만 끝낸 상황이었으니 ‘이러다 1년 더 공부해야 소화시평 상권만을 겨우 끝내게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 2018년 4월 11일 처음 스터디를 참여할 때의 모습과 1월 스터디의 모습
순간 순간이 알알이 박히다
그렇게 나의 경우엔 2019학년도 임용고시가 끝났고 바짝 조였던 긴장의 끈도 풀렸다. 그 후에 대학교는 당연히 겨울방학에 들어갔고 소화시평 스터디도 잠정 중단된 상태로 새 학기를 기다리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가 밝았고 임용 1차 결과가 나오던 날에 김형술 교수에게 연락이 왔다. ‘당연히 시험에 대한 결과를 묻기 위해 전화 거신 거겠지’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방학 중임에도 1월부터 소화시평 스터디는 계속 진행되며 매주 한 번이 아닌 화요일과 목요일 두 번씩 하자는 파격적이며 매우 적극적인 계획을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7년 만에 재도전했던 임용시험에 또 다시 낙방하며 실의에 빠져 있던 터라 그 제안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런 식으로 다시 공부를 하다 보면 맘을 다잡기가 수월할 것이며, 한문에 대한 열정도 타오를 테니 말이다.
그래서 1월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스터디 멤버들도 완전히 바뀐 것이다. 그 전엔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1, 2학년 학생들 몇몇이 청강하는 형식이었는데 이때부턴 4학년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스터디가 꾸려졌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한문 실력이 있는 아이들이 중심이 되다 보니 스터디엔 활기가 돌았고 아이들도 빠짐없이 자신이 맡게 된 부분은 발표를 준비해와 진도는 팍팍 나가게 됐다. 소화시평 상권 85번부터 시작했는데 한 달 사이에 하권 49번까지 진도가 나갈 정도로 말이다. 지금 회상해보면 1월은 정말 소화시평 스터디를 준비하고 발표하고 후기를 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그로 인해 한시와 한 달 동안 주구장창 데이트를 하던 매우 빡센(?) 순간이었다. 이런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7월 2일에 소화시평 선집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막상 시작할 땐, 그리고 중간에 스터디의 진도가 느려졌을 땐, 그리고 1월에 그처럼 맹렬하게 스터디를 할 땐 느끼지 못했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마치 자전거여행을 했던 때처럼 페달을 밟던 순간이자 도화지에 한 획을 긋는 순간이라는 걸 알겠더라. 그 순간들이 빼곡히 쌓여 소화시평을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소화시평이 끝난 이 순간에 어찌 감상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 과정을 통해 한문이 더 좋아졌고 한문을 공부하는 재미를 확실히 알게 됐으며 어려워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한시가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게 됐는 걸. 아~ 한문도 좋고 한시도 좋고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정말 좋다^^
▲ 소화시평 상하권 목차
▲ 2019년 7월 2일. 소화시평을 마무리 지을 때 스터디 모습. 방학인데도 공부하는 아이들이 대단해보인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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